나의 몸을 나의 몸이라 부르지 못하고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 - 이유진(1)

by 김우진




여성의 몸, 여성 질병에 관한 책 들을 자주 접하게 된 한 해였다.


「생리공감」(김보람)

「말하는 몸 1,2」(박선영, 유지영)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김명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조한진희)

「질병과 함께 춤을」(조한진희 엮)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하미나)


그중에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이유진)는 서점에서 구입할 수 없다고 하여 직접 작가님께 구매한 책이다. 왠지 모르게 더 소중하게 느껴진 건 그래서일까.


글을 읽는 내내 마치 작가님이 운영하시는 살롱드마고 카페에 마주 보고 앉아 조용히, 때로는 열띠게 이야기 나누며 같이 울고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글 곳곳에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있었고 몸으로 인해 마음이, 마음으로 인해 몸이 아팠을 작가님의 삶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떤 질병이든 사람들은 질병을 가진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거나 환자를 탓하는(질병의 개인화) 방식의 관심과 충고를 내비친다. 그러나 난소에 혹이 있다거나, 류머티즘에 걸렸다거나 하는 질병들과 달리 '아토피'라는 질병은 너무나 가시적이고 사회가 요구하는 '美'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작가는 이중고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순정만화 주인공은 불치병에 걸려 더 애잔한 사랑을 남기지만, 현실 속 아토피 환자는 만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작가님의 일화 중 운전 강습을 받던 중 손을 만지던 성추행 강사가 흠칫 놀라며 손을 치웠을 때 '성추행도 하기 싫은 몸이라니 좋아해야 하는 건가? 성추행범도 혐오하는 몸이면 여자로서 안전하게 살 수 있으니 다행하고 기쁜 일인가?'(p.60)라고 생각했다는 내용에서는 슬프고 화가 나서 잠시 숨을 골라야 했다.


문득 남편이 제주도 풀무질에서 사 온 선물이라며 내민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김명희) 읽을 때가 떠올랐다. 신체 각 부위를 페미니즘 시각으로 쓴 짧은 책이었는데, 신체 부위별로 챕터가 나뉘어 있었고 다음은 '피부'편의 일부이다.

뇌나 심장에 비하면 꽤나 단순하고, 생과 사를 가르는 중요한 장기도 아닌 이곳. 그러나 피부는 여성의 몸이 사회와 만나는 최전선이다. 여성의 피부는 하얗고 매끄럽고 촉촉해야 한다. 자연스럽고 과도하지 않은 화장은 필수.……그러나 피부 색깔이 하얀 것은 그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일 뿐, 피붓결과 탄력도 중요하다. 여드름이나 뾰루지, 주름, 각질, 모두 피해야 할 악덕이다. 특히 피부 노화는 절대악에 가깝다. (p.58~59)


'여성의 몸'은 그냥 신체로서의 몸이 아니었다. 털, 눈, 피부, 목소리, 비만, 다리 등 심지어 목숨까지도

모두 '남성의 몸'과는 다르게 취급받았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선에 갇혀 '예쁨'의 기준이 정해져 있는 몸.


누군가는 또 '남성도 외모에 신경 써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라고 목소리 높이겠지만, 차별의 긴 역사와 실제 사회가 요구하는 정도의 차이를 간과할 수는 없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자의 피부'를 갖지 못한 작가는 '고통에 대해 말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고통 자체가 수치스러운 것이라 여겼'(p.148)고, 자기 몸과 자기 자신을 부정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작가는 글을 쓰고 함께 말하며 삶을 버텨냈고 지금도 버티며 자기혐오에서 벗어나길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제 몸의 말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할, 나와 같은 사람에게 말을 걸고자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 책을 내기로 했다.'(p.174)


작가님이 몸의 말을 듣고 쓰고 책으로 출간하신 일이 바로 「질병과 함께 춤을」(조한진희 엮)에서 말한 저항적 질병 서사 작업이었을 것이다.

아픈 몸들은 저항적 질병 서사 작업을 통해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르게 살 수 있는 길에 놓이게 된다. '질병은 삶의 배신이 아님'을 인식하고, 아픈 몸을 '극복'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대신 아픈 몸으로도 꽤 괜찮은 삶을 꿈 꿀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결국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삶이 반쪽이 아닌, 온전하고 고유한 삶임을 인정하는 일이다.(p.263)



이유진 작가님께 꼭 말씀드리고 싶다. 작가님의 말을 기다리는 사람이 바로 여기 있다고. 나뿐만이 아닐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작가님이 건넨 말에 위로받고 버텨내고 있다고.





이제 내 차례다. 나는, 나의 몸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나는,

'나의 몸에 대해 잘 알고 있나?'

'나의 몸을 가꾸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의 몸은 누구의 것인가?'

'나의 몸을 사랑하고 있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함께 울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