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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러캔스 Oct 09. 2019

8화. 나는 그놈에게 화가 나있다.

시애틀에서 직장생활 생존기 - 8

지난 9월에 시애틀에 온 뒤로 거진 6개월 만에 첫 솔루션을 출시하였다. 개발이 끝나고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다음 솔루션 개발을 동시에 진행하느라 바쁘기도 하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기한 내에 솔루션을 출시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첫 솔루션은 팀에서 나름 기대를 갖고 있는 대형 솔루션이었다. 객관적인 기여도를 따져보면, 작년에 솔루션을 출시하려고 만들었던 팀 동료의 기여도가 약 40퍼센트, 솔루션 개발 중에 장기간 휴가와 자신이 애정을 갖고 만든 것에 더 시간을 투자한 후 결국 버그만 잔뜩 심어놓고 다른 부서로 이동한 전 팀 동료의 기여도가 5퍼센트, 결혼으로 장기간 휴가를 갔다 왔지만 그전에 나름 하드 캐리 하며 버그를 심어놓고 갔던 팀 동료의 기여도가 15퍼센트, 그리고 모든 UI와 모든 버그를 고치고 테스트 스크립트까지 만들어서 테스트가 정상적으로 될 수 있도록 한 나의 기여도가 40퍼센트라고 본다 (정말이다).


그래서인지 해당 솔루션에 대해서 나에게 모든 사람들이 연락하고 솔루션 관련 발표가 있을 경우 나에게 말한다. 외국인 노동자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 모든 요청을 수락했더니 요즘 발표 자료를 만드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발표 자료를 만드는 시간은 따로 주지 않으니 알아서 시간 분배를 잘하거나 집에서 야근을 해야 된다.


그런데! 발표를 혼자 하는 줄 알았는데 어떤 놈이랑 같이 하라고 그런다. 그리고 난 그놈에게 굉장히 화가 나있다. 그놈과 발표는 세 개가 있다. 모두 기여도는 적지만 팀 동료와 함께 만든 솔루션에 관한 발표인데 실제로 같이 발표하기로 한 놈은 솔루션에 기여한 바가 없다. 그래서 솔루션 관리를 했던 PM에게 물었다.


질문: 도대체 그놈은 뭐하는 놈이야? 걔가 솔루션에 뭘 기여한 거야?

답변: 걔는 고객들을 많이 만나는 엔지니어고 우리가 만든 솔루션의 산업과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고 있어서 그 계열은 잘 아는 애야.

질문: 그래도 걔가 솔루션에 기여한 게 하나도 없잖아?

답변: 맞아. 그런데 발표하는 것도 다 걔 이름 앞으로 되어있는 거에 우리가 같이 발표하게 되는 거야.


답변에 수긍이 갔다. 하지만 그놈에 대한 화가 가라앉지는 않았다. 발표는 30-60분 발표로 다양하다. 그중에서 그놈의 발표는 5분 동안 간단한 소개를 하는 것이고 나머지 시간은 내가 채워야 한다. 하지만 발표 자료 제출 기한이 다가오는 동안 그놈은 해외 출장만 주야장천 다니시고 있다. 그놈과 같이 발표할 생각이 없는 나는 (결국 같이 하겠지만) 발표 장표에서 그놈의 이름은 제외했다. 왜? 기여한 게 1도 없으니까. 이런 걸 보니 최근에 인터넷상에서 많이 봤던 발표 준비하지 않은 자들의 이름은 발표 자료에서 빼버린다는 글들이 떠오른다.


발표 자료를 리뷰할 때도 그놈이 만든 자료라고는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도대체 만들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말 그대로 숟가락만 얹는 무임승차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차라리 같이 솔루션을 만든 팀 동료와 발표 준비를 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화가 그놈에게 화가 나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발표를 그냥 접어버리고 싶지만 이미 이름이 올라가 있어서 되돌릴 순 없다. 이번 목요일에 다시 발표 자료를 리뷰하는데 그때 그놈이 도대체 어떻게 나오는지 다시 지켜볼 셈이다. 그때도 무임승차 기운이 느껴진다면 다시 한번 내 입장을 정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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