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러캔스 Dec 12. 2019

10화. 행사를 가다

시애틀에서 직장생활 생존기 - 10

아마존 웹 서비시즈는 매년 겨울 리인벤트(re:Invent)라는 행사를 개최한다. 그리고 이번이 나에겐 네 번째 라스베가스 방문이자 세 번째 리인벤트 참가였다. 사실 직원으로 행사에 참가할 경우에는 크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한국에서 참가하였을 때는 고객들과 아마존 웹서비스지 서비스팀과의 미팅만을 준비하였다. 미팅이 없는 시간에는 기존에 하던 업무를 계속 진행하였고, 저녁에는 고객들과 저녁을 함께하였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이 모든 것이 예스맨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무려 발표를 맡게 된 것이다. 아마존에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발표를 진행할 경우, 특히나 녹화가 되는 발표를 진행할 경우에는 반드시 내부에서 자격을 획득해야 한다. 교육, 시험, 인터뷰를 통해서 자격을 획득하게 되면은 비로소 만인 앞에서 발표를 진행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이미 그 자격을 획득했었기에 이 발표도 맡게 되었다. 그리고 행사에 가는 김에 행사에 참여한 고객들과 미팅을 진행하라고 한다. 일정표에 날아오는 미팅을 몇 개 받은 후 이건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모든 일정을 막아버렸다. 그래도 4개의 미팅을 막진 못했다. 이번에 소화한 일정은 아래와 같다.


일요일: 발표자료 마무리

월요일: 고객 미팅, 초크 토크 (Chalk Talk), 세션 (Breakout Session)

화요일: 고객 미팅 x 2

수요일: 고객 미팅, 라운지 지원, 세션 (Breakout Session) - 월요일과 동일한 세션, 데모 시연

목요일: 집으로


사실 모든 행사는 금요일에 끝난다. 그래서 금요일까지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내 일정은 수요일에 종료가 되었기 때문에 목요일에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는 물론 기쁜 마음이었지만 행사가 있는 동안은 그렇게 기쁘게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일요일에 발표자료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내가 머물던 벨라지오 호텔에서 베네시안 호텔로 향했다. 라스베가스는 호텔이 신기루와 같아서 가까워 보여도 멀다. 심지어 호텔 입구에서 행사장까지도 거의 10분이 넘게 걸린다. 그래서 벨라지오 호텔에서 베네시안 호텔까지 걸어서 40분이 걸렸다.


이번에 묵었던 벨라지오 호텔.

베네시안 호텔에 도착한 후 발표자료를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호텔에 다시 돌아와서 발표자료를 다시 검토하였다. 일전에 리허설을 두 번 진행하였지만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다시 숙지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다.


월요일, 진짜 행사가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고객 미팅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고객들은 자기들끼리 떠들기 바빴다. 그러다 나에게 간혹 질문을 하였는데,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은 대답을 해줬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고객 담당 영업이 숙제를 잔뜩 안고 갔다. 고객 미팅이 끝난 뒤에는 초크 토크 (Chalk Talk)를 진행하였다. 초크 토크 (Chalk Talk)는 일반 세션과 다르게 고객과 함께 진행한다. 발표자가 준비한 자료를 통해서 10-20분 정도 발표를 하면 발표 주제에 대해서 고객들은 자유롭게 질문을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화이트보드를 사용하여 설명을 할 수 있다. 시간은 한 시간이 주어졌지만 40분 정도에 모두 끝났다. 그 뒤 세션장으로 이동하였다.


세션장 앞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줄 서있었다. 세션장이 줄 서있던 사람들보다 더 컸기 때문에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찼었다. 사실 더 적은 사람들이 올 것이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많았다. 발표가 시작되었다. 발표는 두 파트로 진행되며 앞부분은 영국인 동료가 10분 정도 발표를 하였고, 뒷부분은 내가 35분가량 발표하였다. 발표에 주어진 시간은 60분. 영국인 동료의 발표가 끝난 후 스테이지로 올라섰다. 고객들 앞에서 영어로 진행하는 첫 번째 발표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나름 열심히 하였지만 생각보다 말이 잘 떠오르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단 좀 둘러서 표현한 것이 많았다. 그래도 무사히 발표를 마칠 수 있었다.


화요일, 주어진 일정은 고객 미팅 밖이었다. 첫 번째 고객 미팅장에 도착하였을 때 고객 담당 영업에게 전화가 왔다. 그리고 고객의 급한 일로 인해서 미팅을 취소해야 한다고 했다.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괜찮다고 하고 돌아서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두 번째 고객 미팅에서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굳이 나에게 말도 걸지 않았다. 두 번의 미팅에 들어가서 공통적으로 잊을 수 없는 것은 고객의 표정과 영업의 표정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젊어 보이는 동양인 (그들 입장에서 동양인은 젊어 보인다)이 들어와서 도움을 주겠다고 하니 별로 못 미더워하는 것이 말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표정으로 느껴졌다. 물론 내가 실력이 월등하여 그 편견을 깰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두 번 모두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에 대한 미팅이라 네가 그럼 그렇지라는 인상밖에 주지 못한 것에 약간 아쉬움이 있다.


수요일, 오전에 고객 미팅을 또 진행하였다. 이번에는 그래도 고객 쪽에서만 못 미더워하는 눈치를 받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전하고 왔다. 물론 그들이 만족했는지는 알 수 없다만. 그리고 라운지 지원을 갔다. 라운지에는 같이 발표하는 영국인 동료가 있었다.


동료: "세션 평가 확인해봤어?"

나: "아니, 안 해봤는데. 어디서 볼 수 있어?"

동료: "스피커 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어."


그리고 확인한 후 충격을 받았다. 월요일 발표가 썩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하였는데 영어로 인해서 좋지 않은 피드백이 보였다. 라운지를 지키는 동안 피드백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발표 자료를 다시 확인하고 이번에는 조금 더 매끄럽게 진행해보자고 생각을 하였다.


발표 시간이 되었다. 세션장에 도착하여 발표 자료를 확인하였는데 옛날 자료였다. 최신 자료로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었다. 일찍 도착한 게 다행이었다. 지원 스태프가 발표 자료를 업데이트해주는 동안 더욱 초조해졌다. 다행히 발표 직전에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영국인 동료의 발표가 끝난 후 내 차례가 왔다. 이번에도 영어가 잘 되지 않아서 머뭇거린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월요일보다 훨씬 매끄러웠다. 발표를 마친 후에는 속이 후련하였다. 그리고 평가를 확인하였을 때 월요일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은 것에 만족하였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지막 데모 시연을 하러 갔다. 데모만 시연하면 되었기에 부담이 없었다. 물론 데모의 저주에 빠져서 실제로 데모가 잘 진행되진 않았지만 괜찮았다. 모든 일정이 끝났기에.


라스베가스의 밤은 생각보다 볼만하다.

세 번의 리인벤트 행사 중에서 가장 많은 일정을 소화하였다. 그리고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가듯이 모두 끝난 후에는 홀가분하였다. 하지만 내년에 다시 하라고 하면은 하고 싶지 않다. 뭐, 내년 일은 내년에 생각해보는 것으로. 그래도 느낀 점이 많았고, 나에게 부족한 점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기도 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9화. 예스맨 (Yes M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