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서 직장생활 생존기 - 12
미국에 온 지는 1년 하고도 5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아마존에 입사한 지는 벌써 5년이 흘렀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을 거쳐서 어느덧 고인물이 되었다. 물론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마존에서 보낸 사람들도 많지만 5년 동안 아마존에 남아있는 사람은 그리 많진 않다.
노란색 사원증. 아마존은 재임기간 5년 단위로 사원증의 색깔을 바꿔준다. 처음에는 파란색에서 시작해서 5년이 지나면 노란색, 10년이 지나면 빨간색, 15년이 지나면 보라색, 20년이 지나면 은색으로 테두리를 바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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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느덧 나도 노란색 사원증을 받는 날이 오게 되었다. 사원증 색깔이 바뀌는 동안 지금 업무를 포함하면 아마존에서는 두 가지 업무를 경험하고 있다. 물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또 다른 업무를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만 지금은 현재의 직무에 만족 중이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생존중인 것 같다. 생존하는 가운데 발전하는 면도 있지만 계속해서 밀려들어오는 새로운 업무를 해내기 위해서는 생존 전략은 필수다. 모든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해야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쉴 틈 없이 돌아가는 느낌이다. 물론 중간중간 바쁘지 않은 날도 있기도 하지만 보통은 최종 납기를 정해놓고 한다기보다는 내가 얼마나 빨리할 수 있냐로 납기가 정해지기 때문에 어쩔 때는 조금 여유롭게 일정을 잡기도 하지만 그 여유롭다고 생각했던 일정이 생각보다 빠듯한 경우가 많다. 그 안에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데 가끔은 버겁기도 하다. 그래도 기대치 이상의 일을 해내지 않고서는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최선을 다한다.
앞으로 아마존을 얼마나 더 다닐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아마존에서 삶이 현재는 만족스럽기 때문에 별 탈 없는 이상 빨간색 사원증을 목표로 계속해서 다니지 않을까 싶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코로나로 본격적인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도 벌써 5개월이 흘렀다. 재택근무가 일상화가 되다 보니 삶의 경계가 조금은 모호해졌다. 일을 하다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앉아서 일을 하다가 집안일을 하다가. 책상에 앉는 순간은 일을 하는 시간이며 책상에 앉지 않는 시간은 대부분 가족과의 시간이다. 그렇다 보니 출퇴근 시간이 정해지지도 않고 그저 내가 시작하고 싶을 때 (보통은 눈이 떠지는 시간인 8시)부터 하루에 목표로 한 일을 모두 끝낼 때까지 일을 하고 있다. 업무 시간이 8시간이 넘는 경우도 많다.
미국의 상황으로 봐서는 내년에도 재택근무가 계속 권장될 것으로 판단된다. 매일 확진자수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긴 했으나 4만 명 이상 꾸준히 나오고 있으니 사람들이 아직까지 사무실로 돌아갈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물론 사무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무실에 가고 싶어 하지만. 언제쯤이면 이 사태가 끝날까? 시애틀의 좋은 날씨를 즐길 수 있는 시간도 어느덧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헛되이 지나가는 1년이 참으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