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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24화

집안일을 대하는 자세

공평을 따지며, 희생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by 나무

나는 공평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희생'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나 그게 가정에서 쓰이는 용어라면, 누구 한 사람의 '희생'으로 나머지가 편한 것, 살아가지는 것, 좋은 것. 그건 결코 편한 것도 살아가지는 것도 좋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 엄마는 새벽에 우유 배달을 하기 시작했다. 2층집의 해 들지 않는 1층 구석진 셋방살이를 한 우리 집은 방 두 칸에 작은 부엌이 딸렸다. 큰방에서 식구가 다 자고, 작은 방은 냉골과 같아 창고처럼 쓰인 집이다. 주인집 거실로 통하는 문이 있었던 것 같은 그 집에서 우리는 2년 정도 살았다. 대문을 열어 바로 보이는 좁은 문, 좁은 통로, 우리 집이다. 주인집 앞마당엔 작은 연못과 그 집엔 피아노가 있다. 부와 가난의 개념이 없던 때라 집주인이 이사 간다고 했을 때, 이제 그 집이 우리 집이 되는 줄 알고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2학년이 되면서 우리는 이사를 했다. 우리 집이 생긴 것이다. 부산에 나고 자라, 달동네, 높은 지대에 있는 집은 흔했다. 그 중간쯤 되는 위치의 시멘트 마당이 있는 집, 중간을 넘어 올라가 뒷골목으로 돌아가면 가파른 내리막 길이 나오고 그 내리막 길을 걸어서 좁은 골목을 지나 개구멍 같은 곳을 나가면 초등학교 가는 길이 나왔다. 그리고 중간쯤 되는 위치의 우리 집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24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방직공장 하나가 있다. 엄마는 그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아침반, 오후반, 야간반 3교대로 일하며 그렇게 엄마는 우리가 대학생이 되고 졸업할 때까지 공장에서 일했다. 엄마가 오전반인 날이면 아침을 차려놓고 간 밥상에서 밥을 먹고 학교를 갔으며, 오후반이면 밥솥에서 밥을 꺼내고 국을 데워 먹었다. 그리고 야간반이면 낮에 엄마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지냈다. 내 기억에 엄마가 나에게 집안일을 시킨 적이 없다. 나는 청소, 빨래, 설거지 그 어느 것 하나 한 적이 없다. 그걸 못마땅하게 여긴 아버지는 내게 늘 시켰다. 가시나가, 여자가, 해야 하는 일. 그래서인지 우리 아버지가 집안일을 한 적은 없다. 내 기억에 아버지가 해 준 음식은 엄마랑 아빠가 싸우고 엄마가 집을 나간 날 라면을 끓여줬는데 물조절이 실패해 짜장라면이 되어버린 일반라면을 먹은 게 다이다. 그리고 청소며, 설거지며 집안일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기름보일러로 교체되기 전까지 연탄을 간 것도 엄마요. 집에 무언가 고장이 나면 고치는 일도 다 엄마 일이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회사를 다녀오고, 본인의 건강을 생각해서 약수터에 물 떠 오는 일이 다였다. 나는 그게 부당하며, 남녀차별이라고 생각했다. 한 살 어린 남동생에게는 집안일을 시키지 않는 아버지, 엄마가 없을 때면 나에게는 남동생 밥도 아빠 밥도 차려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치워야 했다. 밥상을 닦는 일이 너무 싫었다. 나에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일이 아닌 나를 하대하고 남녀차별하며 강요로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나는 불공평하다며 하지 않겠다고 아버지에게 대들어 무수히 맞고 자랐다. 맞고 맞다가 집을 쫓겨나 불 꺼진 집 밖을 서성이다 아빠 몰래 집에 들어와 불 꺼진 재래식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이런 걸 알 턱이 없는 엄마는 화장실을 지나쳐 마루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찌할 방도가 없어 훌쩍이며 나를 부정할 때, 화장실 옆 개집에 있던 만복이가 짖어 엄마가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성장 후 엄마에게 물었다. 왜 내게 집안일을 가르치지 않았냐고. 엄마는 엄마가 어린 시절부터 집안일을 해서 굳이 일찍부터 집안일을 하길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그게 너무 속상했다. 내가 엄마가 되어 집안일과 바깥일을 하며 지내니 엄마가 혼자 했을 그 일들이 너무 슬펐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가족구성원으로 해야 할 일을 분담해 가정을 이끌어 갔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집안일을 좋아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바쁜 남편의 바깥일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면 공평을 따지며, 희생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싸우는 나를 마주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슬프다. 집안일을 공평의 기준으로 따질 수 없으며, 누가 더 희생하고 덜 희생하는 걸 따질 수 없는 일을 나는 기를 쓰고 따지며 거기에 마음을 상하고 있다. 이는 집안일의 문제가 아니라 어릴 적 아버지와 나 사이 해결하지 못한 일 때문이라 짐작한다.

며칠 전 아버지 생신을 맞아 부모님을 우리 집에 모셨다. 하룻밤 주무시고, 다음날 함께 보내고 저녁에 가셨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아버지를 직면하는 일이 편하진 않았다. 고마움을 표현할 줄 모르며, 자신 밖에 모르며, 타인을 배려할지 모르는 아버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집에 도착할 때쯤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잘 도착했냐고, 그렇다고 답하는 엄마는 덧붙여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엄마와 통화에서 나는 아버지는 참 안 보면 그런가 보다 하는데 보면 화도 나고, 속이 상한다고. 엄마는 그런 사람인 걸 이제 너도 받아들이라고 한다. 그 말이 참 사무치다. 참 애쓰고 애쓰며 아빠의 흔적이 내 가정에 나오지 않도록 애쓰는데, 그런 아버지를 받아들이려고 무단히 넘기려고 하는데 이걸 다른 가족에게서 무던해져라, 받아들이라고 듣는 건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허들을 넘어야 한다. 그래서 집안일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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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