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모에 대한 사랑과 결핍은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없음을 알았고,
연휴 마지막 날 시댁식구가 아침 일찍 방문 후, 방금 돌아가고, 하다만 세탁물을 건조기에 돌리고 흐린 하늘을 보며 소파에 누웠다. 아마 시댁식구가 방문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시간까지 뒹굴거리며 늘어져있었겠지, 그리고 내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걸 아쉬워하며 현실을 부정하거나 일상으로 복귀하지 않는 삶을 꿈꾸며 다른 삶을 욕망하고 있었겠지. 그렇다고 해서 시댁식구가 왔다간 지금 더 생산적이거나 결이 다른 생각을 하진 않는다. 오히려 복잡 미묘한 감정 덩어리와 피곤함이 더해진 생각을 짊어지고 어디로 굴려버릴까 생각하고 있다.
우리 시부모님은 나의 부모님과 다르게 늘 내게 좋은 말을 해주시려고 하며, 격려하고자 한다. 그래서 처음에 나는 내 부모와 다른 시부모님께 굉장히 잘 보이려 하고 잘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내 뜻과 다르게 서운한 감정이 생기고, 사랑받고 싶은 욕심이 생기면서 나는 시댁식구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게 지속되면서 나는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었고 어느 순간 차단하기 이르렀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일방적인 관계는 없다. 그리고 어느 한쪽이 원하는 방향으로 관계가 설정되지도 않는다. 어쩌면 나는 내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남편의 부모에게 원했는지 모른다. 시아버지는 아버지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자상하고, 나의 좋은 점을 봐주시고 표현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이상적인 아버지 상이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나의 아버지와 시아버지가 다르지 않다고 했다. 끝과 끝은 통한다고 결코 다르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걸 내가 깨닫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희생이 당연하고, 자식만 바라본 나의 엄마는 바라는 게 자식이 좋은 걸 먹고, 좋은 걸 많이 경험하고 사는 것. 본인은 구멍 난 옷을 입으면서 자식이며 사위며 손주 새끼들은 좋은 옷을 사주고, 받은 용돈은 배로 돌려주며, 늘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보면 없다고 말하는 분이다. 반면 시어머니는 자식이 주는 걸 감사히 받으시고 좋아하신다. 그리고 누릴 줄 아시는 분이다. 나에게는 그런 두 분을 보며 내 친정엄마가 시어머니처럼 자식이 해주는 걸 받지 않는 게 속상하고, 딸을 생각한다고 하는 행동들이 눈물 나게 해 늘 마음이 안 좋았다. 그리고 나는 시어머니의 행동에서 손주와 자식에 대한 마음은 있으나 며느리는 챙기지 않는다고 여기거나 내가 미우니, 내 자식들도 챙기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런 내가 만든 생각을 바로 잡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마음이 다 같을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오늘 시댁 식구들 속에서 불편한 마음이 잠시 머물렀다. 다 돌아가고 난 후 한숨 자고 일어나 남편에게 나의 불편한 마음을 말했다. 비난이라는 언어가 아니라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을 서술하며, 불편한 마음을 덜고 싶다고 얘기했다.
"어렸을 때 아빠가 외가 식구들을 싫어하고 엄마가 외가와 왕래하는 걸 꺼린 걸 이해 못 했는데 지금은 이해가 가. 내가 지금 그래. "
(무덤덤한 어조)"그래서 왕래를 안 하겠다고?"
(무덤덤한 어조)"그랬다면 이야기를 안 했지. 나는 시부모님만 오시면 다 할 수 있어. 근데 늘 시누네가 함께 와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시누는 결혼한 지 몇 년인데 아직도 부모님 카드를 쓰고, 우리 집 와서는 맨날 책을 가져가?"
(감정이 실리지 않은, 그러나 동생을 잘 안다는 듯이) "걔도 아빠 카드 써도 아빠가 뭐 해달라고 하면 하겠지. 그리고 지도 줄만하니깐 책 달라고 하겠지."
"내가 너랑 결혼하고 처가 식구를 받아들이고, 네가 나랑 결혼하고 시댁 식구를 받아들이고 뭐 그런 거지."
"아니깐 불편한 마음을 얘기하고 터는 거지. 이렇게 나를 날 것으로 드러내는 게 뭐가 좋겠어. 불편한 마음이 잘못된 걸 아니깐 직면하고자 말하는 거지. 근데 이 포인트에선 자기는 T가 나오는 게 아니고. 그랬구나! 가 돼야 하는 거야."
그렇게 우리 대화는 싱겁게 끝났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가 딸에게 사준 운동화를 신어보며-딸의 마지막 어린이날이라고 사준 운동화가 내 발 사이즈와 같아져 놀란 날임- 딸 운동화 같이 신어야겠다며 말하는 나를 어이없다고 말하는 남편의 말을 흘리며, 딸의 새신을 신은 내 발을 바라봤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감사한 마음이 충만해야 하는데 사실 그러지 못하고 늘 챙기는 입장에서 부담스러워하고 불편했다. 그런 마음을 가지는 나 자신이 싫어서 더 불편했다.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자식의 어린이날 챙기는 건 기쁨이나 시부모님의 어버이날 챙기는 건 부담이었다. 사실은 내 부모의 어버이날을 챙기지 않은 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이로소 나는 결혼 초반 내가 가지고 있었던 시부모님에 대한 이상이 깨어졌다. 현실에서 내가 시부모님에게 대하는 마음이 내 부모에 대한 마음과 같지 않음을 깨끗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 부모에 대한 사랑과 결핍은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없음을 알았고, 내 남편이 부모와 동생에 대한 마음이 나와 결코 같지 않고 쓰는 마음 크기가 다름이 당연하다는 것도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며느리의 위치, 딸의 위치도 혼돈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뚱순이 고고"
남편이 공원 한 바퀴 하자고 재촉이다. 이제 그만 나가봐야겠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손주들 생각해 마지막 연휴 달려와 신발이며 옷을 사주신 시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곧 다가올 아빠생신에 같이 산행 약속 잡은 날을 기다리며, 내 부모와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마지막 어린이날 뮤지컬 공연을 보고 즐거워한 딸의 미소에 감사하며, 이제 가벼운 맘으로 공원 한 바퀴를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