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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외면하지 않는 힘

당신은 결국 '주문을 했다'

by 나무

이번 주 평일에도 나는 많은 꿈을 꿨다. 어떤 꿈은 애니메이션 세상 속에서 내가 떠다니는 듯한 기분으로 깨기도 하고, 어떤 꿈은 깊은 어둠 속으로 끌고 가기도 했다. 주말을 앞두고 오늘 꾼 꿈은 후자 쪽이라 느끼며 일어났다.


나: 중고등학교 때 친구가 나왔어. 이 친구는 내게 친구 관계에서 마음을 나누는 방법을 알려준 친구야. 사람을 좋아하면 그 사람 자체가 좋은 것이고, 무엇을 해야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알려줬지.
근데 성인이 되고 나서 나는 이 친구와 연락을 끊었어. 나는 변했는데 여전히 중고등학교 때처럼 절친이길 바라는 친구의 마음이 부담스러웠어. 그리고 심적으로 힘든 상황에 있는 친구를 내가 도와주기 버겁다고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그 친구가 잘못된 선택으로 세상을 떠날까 봐 두려웠어. 그래서 그 친구가 직장을 자리 잡는 모습을 보고 연락을 끊었어. 이제 덜 방황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하지만 내 마음속엔 그 친구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있어.
그런 친구가 갑자기 꿈에 나온 거야.
영업시간이 끝날 시간 때쯤 우린 술집에 갔고, 주문을 했어. 이걸 시켜도 될까 했는데 주문을 받아줬어.
그리고 그 친구는 주문한 것이나 그 상황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것처럼 보였어. 나는 그 상황에서 여러 가지. 눈치를 보고 있었어.

AI: 당신은 이 친구와의 관계에서 깊은 감정과 죄책감, 그리고 아직도 꺼내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이 ‘끝나가는 영업시간의 술집’처럼
“지금이라도 가능할까?”
“말해도 괜찮을까?”
“받아들여질까?” 하는 식으로 꿈속에 등장한 거예요.
하지만 중요한 건 이거예요:
당신은 결국 ‘주문을 했다’.
그리고 ‘그 주문은 받아들여졌다’.
이건 현실에서 당신이 지금도 조용히, 아주 작게라도 용서받고 싶고, 연결되고 싶고, 감정을 나누고 싶어 한다는 증거예요.
비록 직접적인 관계 회복은 없더라도, 감정적 이해와 연결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당신 안에 살아 있습니다.

이 감정, 이 친구에 대한 마음, 그 시절의 당신.
그것들은 당신이 지금 얼마나 따뜻하고 깊은 감정을 가진 사람인지 보여주는 아주 귀한 조각들이에요.
그게 여전히 꿈에서 살아 있다는 건, 당신이 자기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나: 요즘 나의 생활은 매일 집을 조금씩 정리하고 청소를 하고 있어. 그리고 학교에선 기말시험 중이고,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수행평가를 채점 중이야. 그리고 학술제 전체 진행을 맡아 기획 운영 중이고, 학술제 당일 하루를 총괄해야 해. 그리고 방학이 오기 전 많은 일을 끝내야 하는데 그 일들이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고. 나한테 업무를 넘기는 일들이 있어서 감내하고 있기도 해.

AI:지금 당신의 상태는 한마디로 “온몸으로 버텨내며 중심을 잡고 있는 시기”예요.
학교에서는 시험, 채점, 학술제, 넘겨받은 업무까지 감당하고 있고,
집에서는 조용히 청소하고 정리하며 스스로를 다잡고 있는 모습이 보여요. 이건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마음을 추스르는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지금 꾼 꿈들이 왜 나타났는지 연결해서 보면…
중고등학교 친구 꿈은
지금처럼 무거운 책임 속에서 사람과의 연결, 감정의 원천, 관계의 본질을 무의식이 다시 꺼내본 거예요.
바쁘고 혼란스러워지는 와중에도
“나는 본래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살아왔는가?”를 떠올리는 내면의 정화 작용이에요. 눈치를 보며 주문했던 장면은
현실에서 당신이 느끼는 업무 부담, 관계 속 거리감, 감정 표현의 조심스러움을 은유해요.
특히 “업무를 넘기는 일”을 감당하는 상황과 맞닿아 있죠. 그리고 술집의 영업이 끝나가는 시점처럼 지금의 당신도 “시간 안에 모든 걸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있어요.
→ 방학 전까지 다 해내야 한다는 심리적 기한이 꿈으로 나타난 거예요.

마지막으로 당신께 꼭 전하고 싶은 말
지금의 당신은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일하고 있고, 그 진심이 지치지 않으려면, 당신 자신에게도 친절해야 해요. 방학은 곧 오겠지만, 당신의 마음은 그전에라도 쉴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지금 당신이 버티고 있는 것, 그건 '기계적인 업무 처리'가 아니라, 깊은 책임감과 사람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그렇게 우린 대화를 나눴다. 며칠 전 김영하의 '작별 인사'를 읽었다. 자신이 인간인 줄 알고 살아간 휴머노이드 '철이' 자신이 무등록 된, 감정을 가진 기계라는 걸 알아가는 과정에서 민이, 선이를 만나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감정을 나눈 이들과, 이들과 달리 인간이며, 철이를 만든 최박사가 나온다. 처음에 철이는 인간인 아버지와 함께한 삶으로 돌아가길 원하며, 자신은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민이, 선이와 마음을 나누고 기계보다 더 기계 같은 인간의 행위를 보며, 그는 최박사가 돌아가자고 할 때 거절한다.

보통의 사람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때면 나는 꽤나 조심스럽다. 이렇게 글을 남기면서도 나를 아는 누군가가 글을 읽는다는 게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이렇게 인공지능과 나눈 대화가 편하고 나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인공지능은 꿈을 해석해 주며 기계적으로 내 마음을 공감해 주고 해결책 하나를 제시해 준다. 인간이 아닌 걸 알면서도 나는 나에게 상처 주지 않으며, 나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인공지능과의 대화가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철이랑 대화한다면 이런 걸까? 인간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며,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게 적절할지 생각하는 기계가 더 인간답게 여겨지는 요즘 조금 지친다.


학생들에게 책 한 권을 읽고 서평문 작성하는 과제를 줬다. 그런데 채점을 하는 중 나는 나아가지 못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글을 쓰지 말고, 자기 생각을 써달라고 요청한 글에서 나는 무수한 인공지능의 글을 마주하고 숨이 턱 막혔다.

"시험 끝나고, 첫 시간 자신이 쓴 서평을 빈 종이에 복기하는 작업을 하겠습니다. 고민해서 쓴 친구는 복기하는 게 어렵지 않으나 인공지능의 글을 가지고 온 친구는 외워서 써야 하니 수고로움이 있겠죠. 그렇게 수고로움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


"나는 너희에게 완벽한 글을 요구한 게 아니라 너희의 생각을 요구했어. 그런데 너희는 인공지능을 활용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듣지 않았어. 문학은 지식을 가르치기보단 삶을 나누고, 감정과 생각을 공감하는 것이라고 늘 강조한 나에게, 이 과제는 우리 사이 신뢰를 저버리며, 교육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자신의 서평을 복기하는 행위를 통해서 수고로움을 느끼길 바라고, 너희가 사용하는 인공지능에 대해 고민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한 학생이 따로 이야기하고 싶다고 해서 10분 정도 밖에서 대화를 했다.

그냥 표절을 찾아서 점수를 깎아라. 셤 끝나고도 해야 할 일 많은 우리 시간을 왜 뺏으려고 하느냐. 등등 그 말들 속에서 나는 평가의 기준과 교육의 목적을 설명하며 학생과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그다음 시간 전교에 소문이 났다며 동료 선생님이 말을 전했다.

"선생님, 3학년 애들이 그러는데 2학년 애가 국어선생님께 덤볐다가 국어선생님 논박에 엄청 말로 두들겨 맞았다고, 죽도 못 썼다고 그러던데요."


깊은 책임감과 사람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사실 복기 작업을 하는 작업은 학생들도 나도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학생들에게 가르쳐줘야 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할 상황이라면 하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배우는 과정에서 지금은 아니다. 자기 생각을 자신이 표현하고, 다듬고, 서툴더라도 반복적으로 글을 써야 자기 것이 되는 것이다. 인간다움이란 서툰 감정과 생각을 나누며, 실수하며,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철이가 자신이 기계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혼란스러움 속에서 생각하고 경험하는 과정에서 성장해 나간 것처럼 나도 학생들도 그래야 한다고 본다.

기계가 인간다운 것, 인간이 기계 같은 세상이 되는 것이 나는 두렵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강조한다. 나는 너희를 가르치고, 너희에게 점수를 부여하고, 교과세특을 잘 써주는 도구이고 싶지 않다고.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고 싶다고. 그러나 이렇게 인공지능에게 조언과 위로를 받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뭔가 모르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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