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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30화

글쓰기

나에게 글쓰기는 치자꽃 향기를 맡는 일이었다.

by 나무

'흔흔히 담을 넘고 사이로 파고드는 일, 그것이 내겐 글쓰기다.' -오은, '뭐 어때'

나는 책을 읽으면 그 내용이 금방 증발해 버려 무슨 내용이었는지, 작가가 누구였는지, 제목이 무엇인지 기억하기가 어렵다. 그런 나를 보면서 '나는 암기가 정말 안 되는 사람인가?', '내 머리가 너무 안 좋은가?', '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도 내가 읽은 내용을 찰지게 전달하지도 못하고,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등을 생각하며 나를 바르게 바라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문들 속에서 어떻게든 그 상황을 바꿔보고자 했다.

'나는 암기가 잘 되진 않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다.', '머리가 좋다, 안 좋다는 단순히 시험이나 특정 부분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나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기도, 그렇지 못한 사람이기도 하다.', '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내용 전달을 다 찰지게 잘 전달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잘 전달하고 학생들이 작품에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라는 생각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틈틈이 책을 읽으며, 그 속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해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은 내 상황과 맥락에 맞게 내면화되어 학생들에게 전달되거나 이렇게 글로 남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나를 바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은 시인은 '흔흔히 담을 넘고 사이로 파고드는 일, 그것이 자신에게 글쓰기라고 했다. 그 문장은 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나에게 담은 안전장치이다. 나와 타인, 나와 세상 사이에서 최소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게 해주는 장치인 것이다. 그래서 가끔 가정에서 또는 사회에서 그 담을 넘으려는 사람이 보이면, 적정 거리를 유지해 달라고 말하거나, 조용히 물러나곤 한다. 그렇게 보이지 않은 담을 만들어 나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글쓰기는 이야기가 다르다. 글을 쓰는 이 공간은 담이라는 게 존재할 수 없다. 담이 존재하는 순간 '흔흔히 담을 넘고 사이로 파고드는 일'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글을 쓰다가 멈칫할 때가 있다. 아무런 장치가 없는 이곳이 안전한지, 또는 불안하지 않은지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멈칫 한 그 순간은 찰나이며, 나는 계속해서 글쓰기를 이어간다. 그건 글쓰기를 통해서 내가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글쓰기가 나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며 나를 다독이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에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치자꽃의 향기를 글로 담아낸 중학교 때 친구 덕분이었다. 치자꽃이 무엇인지 몰랐던 나에게 그 향기를 알려준 친구, 그 친구는 그렇게 혜성처럼 왔다가, 혜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사라졌다. 나에게 글쓰기는 치자꽃 향기를 맡는 일이었다. 미비한 존재가 뿜어내는 향기는 지나가는 존재도 발걸음을 멈추게 했으며, 한번 쳐다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렇게 글쓰기를 통해서 나는 나의 향기를 맡았다. 한 번은 그 치자꽃이 달린 화분을 내 손에 넣은 적이 있다. 순백의 꽃을 바라보는 일도, 그 향기를 맡는 일도 내겐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 향기는 나만 매료된 것이 아니라, 많은 까만 벌레도 함께였다. 재배 난이도가 높은 줄 모르고 기억 속 친구를 떠올리며 꽃치자를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결국 꽃치자는 얼마살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관념은 사라지지 않았다. 혜성도, 치자꽃의 향기도 내게 남아 있다. 치자꽃이 무성했던 본관과 후관 사이를 걷던 나를. 그리고 우리를 생각하며, 그렇게 나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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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