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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27화

여름 방학

나는 너를 기특해할 것이다.

by 나무

오지 않을 것 같은 방학이 왔다.


3월 한 달 동안 내내 후회했다. 일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마음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한다는 건 어렸을 때 크게 혼난 상태에서 밥을 먹어야만 하는 거랑 비슷했다. 밥은 먹기 싫은데,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마음은 상한 상태인데 밥을 먹는 건 스스로에게 굴욕적이라고 생각했다. 한 달 동안 나는 그렇게 학교 생활을 했다. 소화가 되지 않는 음식 앞에서 어떻게든 꼭꼭 씹어 먹겠다고, 다부지게 보내려고 애썼다. 누가 그렇게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3월 말쯤 몸살이 나고야 말았다. 마음은 그렇게 드러냈다. 내가 아무리 아닌 척한다고 해도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듯이 몸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나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느 곳이나 어떤 일을 하든 모든 게 내 맘에 맞는 일도 없거니와 사회생활은 다 그런 거라며, 지금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다독인다고 한들 나는 주기적으로 감정에 휩싸여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곤 했다. 학기말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휘몰아치는 업무로 지쳐갈 때쯤 몸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렸다.


목에 통증이 느껴지며. 마비가 되어가며. 뻗쳐 올라 턱 부분을 감싸듯 마비시켜 버리는. 그 자리에서 나는 목과 턱을 부여잡고.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앉아서 업무를 하고 있었다.


마음은 폭풍이 휘몰아치듯 미칠 것 같은데, 아무렇지 않은 듯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시간이 힘들었다. 그리고 잠잠해진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나는 세상이 무너진 것 마냥 가슴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다. 그런 나를 보는 남편은 괜찮다고 다독였다. 나는 괜찮지 않다고 답했다. 기를 쓰고 애쓰는데, 이렇게 다시 공황이 보란 듯이 폭군처럼 몰려올 수 있는지 왜 나는 남들처럼 받아들이며 살지 못하고 매번 예민한 성격을 완만하게 흘려보내려고 애쓰며 사는지, 그것마저도 통제하며 살아야 하는지, 이 모든 걸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나의 부정적인 생각을 막아보려고 애쓰는 것, 이게 다 지친다며 다 놓아버리고 싶다고 이런 자신이 싫다고 소리쳤다. 그는 비워내라며, 나를 말로 끊임없이 쓰다듬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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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꽃이 예뻐서. 아무렇게나 뻗친 것 같지만 그것마저도 그 형태가 좋아서. 한 달 전쯤 아메리칸 블루를 샀다. 그리고 적당한 위치에 어울릴 만한 바구니 안에 자리를 잡게 하고 내가 자주 다니는 위치에 뒀다. 그냥 그게 그 자리에 있는 게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꽃잎은 우수수 떨어지고, 줄기가 시들기 시작했다. 시드는 그곳을 잘라 내다가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시들어 죽고 말았다. 그 과정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메리칸 블루를 정리하며 나는 뿌리에서 썩은 냄새를 맡았다.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썩었겠다고 짐작을 하며, 말라 가는 아메리칸 블루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물을 주는 일밖에 없었음을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더 아메리칸 블루를 죽게 만들었음을 안다.

한 학기가 끝났다. 나는 꾹꾹 밥을 밀어 넣었다. 시들어가는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곤 물을 주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물만 열심히 부어줬다. 그리고 여름 방학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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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내 눈에 보인 식물 하나, 아스팔트 틈 사이. 차가 주차하는 곳. 그 사이에 핀 이름 모를 잡초를 마주했다.

어렸을 때 잊어지지 않는 엄마의 말 중 하나가 생각났다. 넌 잡초 같다고. 어떤 환경에서든 잘 큰다고. 그 말이 어린 나이에 듣기 싫었다. 잡초 말고, 화초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상황도 싫었다. 왜 나는 온실 속에 자라면 안 되는 건지, 나를 잡초가 살 수 있는 환경에 던져놓은 건지 그 마저도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엄마에게 잡초 사진을 보냈다.

"모질게 산다."

카톡에 답이 왔다. 그 말이 참 모질다고 느끼며, 나는 그 잡초에 대해 생각했다. 많은 환경 중에서도 그곳에 자리 잡음을, 그 틈새에서도 살겠다고 푸름을 보여주는 너를, 매 순간 오가는 차들이 언제 짓누를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제 할 일을 한다는 듯이 피어 있는 너를 마주하며, 나는 너를 기특해하는, 경이롭게 바라보는, 네가 잘 되었음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사진을 찍는 나를 느꼈다. 그리고 알았다.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도, 스스로가 바라보는 마음도 사실은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그랬구나.


방학이다. 방학에는 나에게 모질게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놓을 방', '배울 학'이다. 그렇게 나는 나를 놓을 수 있는 방학이길 바라본다. 꾹꾹 눌러 담아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 속이 썩을 만큼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나 스스로 푸름을 보이며 어떤 자리든 있으면 그만이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이든 나는 너를 기특해할 것이다. 그게 나의 여름 방학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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