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좋아해야겠다.
사서 교사가 없는 학교에서 도서관을 맡았다. 도서관을 운영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책을 좋아한다면 도서관이나 책방에 가는 일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내가 도서관을 처음 간 날을 떠올리자면, 한참 매체에서 책을 읽자고 홍보하고, 기적의 도서관이라고 외치던 그쯤, 아마 그때 우리 동네도 도서관이 생겼던 것 같다. 말이 우리 동네이지, 내가 도서관까지 가려면 걸어서 빠른 걸음으로 30분에서 40분은 걸어야 하는 거리이다. 그 거리를 참 부지런히 다녔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 도서관의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아마도 내가 다닌 학교에 도서관은 교실 한 칸 정도의 공간에 얼마의 책이 보관되어 있던 곳이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아무리 머릿속을 저어도 중고등학교 때 도서관의 기억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없었을 가능성도 높다. '나 때는'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도서관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학교 도서관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정말 많은 장서와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사서 선생님이 상주하는 곳, 아이들의 방앗간과 같은 곳, 아이들에게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온 학교는 사정이 달랐다. 몇 년 동안 장서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곳, 작년 신간 도서는 풀리지 않은 채로, 한 학기 동안 '정리 중'으로 묶여있었다. 아이들은 도서관이 잠겨 있는 시간이 많아 이용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도서관이 업무가 되었을 때 나는 책과 함께한다는 기쁨보다는 막막함과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컸다. 학교는 3월이 되면, 자신의 역량과 그동안 해 온 일과 상관없이, 주어진 업무에 따라서 각자도생으로 업무가 시작이다. 다행히 친한 사서 선생님이 다른 학교에 계셔 나는 3월 한 달 내내 원격으로 도서관 일을 배웠다. 먼저 학교도서관 운영위원회를 결성하고, 1년 간 도서관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계획서를 작성하고, 1, 2학년을 진급하고, 신입생을 학교도서관시스템에 입력하며 일을 하나씩 해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즐거움보다는 걱정과 힘겨움을 끌어안고 살았다. 내일의 일은 내일의 내가 할 거라며, 다독여 가며 그렇게 하나씩 도서관 일을 배웠다. 그러던 중, 사서가 없는 학교에 교육도서관에서 장서점검 업체를 선정해서 학교 도서관 장서점검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매년 신간으로 들어오는 책이 천 권 정도라 치면, 3년 동안 3천 권의 책이 들어와 있고, 폐기된 도서는 한 권도 없었던 것이다. 한 학기 동안 신간 도서가 정리 중으로 있었던 이유도 책을 정리할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기회에 많은 책을 버려야 했다. 그런데 이 책을 내 마음대로 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도서관 운영위원회의 협의회를 거쳐 도서 폐기율을 조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걸 운영위원장이 결정하지 못하면 진행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2, 3주간 설득의 과정을 거쳐, 많은 책을 폐기할 수 있도록 조정하였다.
교육도서관을 통한 장서점검 업체가 학교로 와서 3일간 도서관의 전체 장서를 스캔하고, 버려야 하는 책을 한 곳에 분류해 주었다. 장서점검과 장서에 관해서는 나보다 전문가인 업체 사장님께서 그동안 내가 해결하지 못한 등록되지 않은 책을 어떻게 등록하는지, 라벨지가 불량인 것은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려주셨다.
"선생님 다른 학교 같으면 알려주지 않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이렇게 열심히 하니깐 하나라도 알려주고 싶어서 말해주는 거예요. 다른 학교 관리자 같으면, 책이 아깝다고 못 버리게 하는 데, 선생님 대단하시네, 사서 교사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책을 정리하다니."
"아, 그래서 좀 맘 고생했어요. 교육도서관에 조언 구하고, 관리자 설득하느라... 그런데 누가 이런 걸 알아주나요."
"알아줘야 일하나,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나는 사서 선생님에게 투덜거렸다. 학교는 도서관을 신경 쓰지 않는다,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고 얘기하니 속이 상한다, 왜 도서관은 언제 여는 거냐고 뭐라고 한다. 등등 나는 남들의 이야기를 신경 쓰며 애쓰는 나는 왜 바라봐 주지 않냐고 속상해했다. 그런데 업체 사장님의 말이 내 마음을 콕 찔렀다.
중고등학교 때 도서관을 다니면서 좋았다. 여기 많은 책들을 다 빌려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건 대학교에 가서도 그랬다. 이렇게 많은 책들이 있는데, 내가 읽은 책이 너무 적다는 게 속상했다. 도서관에 상주한다면 이곳에 일하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막연히 동경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일이 나에게 주어졌는데, 나는 그 좋아하는 마음을 잊고,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 쌓여 있는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 사람들의 무언의 시선에서 느끼는 인정 욕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내가 하는 일을 즐기지 못했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그래도 많은 책을 정리하고, 신간 도서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서 기뻤다. 학생들과 교직원들에게 신청 도서를 받고 도서관에 없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골라서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 즐거웠다. 복권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 쓰며, 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책들을 구성하는 일이 행복했다. 그리고 신간 도서 코너가 생겼다고 함께 기뻐한 도서부 친구들이 있었다. 점심시간, 청소 시간에 도서관을 개방하며, 책을 빌리는 친구들에게 자주 놀러 오라고 이야기하는 게 즐거웠다.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함께 찾아봐주는 일도 좋았다. 그러고 보니 도서관을 운영한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나는 좋은 걸 숨기고 있었다. 이제 숨기지 않고 대놓고 좋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