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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28화

'슬픔의 방문' 장일호 에세이

슬픔이 쓸모가 있는 다정한 미래

by 나무

책을 읽히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나 나는 책을 많이 읽지 않고 산다. 그래서 가끔 '양심이 없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나 그 마음을 구석에 몰아놓고 소파와 한 몸이 되어, 핸드폰의 세상으로 쉬운 걸 택하며 시간을 죽이곤 한다. 올해 여름 물꼬방 연수 과제로 '슬픔의 방문' 장일호 에세이를 읽어야 했다. 학기 중에는 학교 행사에 바빠 과제 체크할 힘조차 남기지 않고 무심하게 보내다, 연수 일정이 다가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들어가며'에서부터 나는 문장에 멈춰있었다.

'슬픔의 자리에서 비로소 열리는 가능성'

슬픔이 담고 있는 다양한 경험과 감정이 겹쳐져 문장을 서성였다. 작가는 어떤 슬픔을 가지고 있길래, 책의 제목부터가 '슬픔의 방문'이며, '슬픔의 자리에서 비로소 열리는 가능성'이라는 말로 시작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나의 슬픔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슬픔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어, 슬픔이라고 말하기가 애매하다. 어쩌면 나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슬픔에 앞서 '화'가 먼저 당도하여 나는 슬픔을 느낄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내 삶이 그러니, 작가의 삶이 궁금해졌다.

작가는 '인정받고 싶다'와 '도망가고 싶다'사이에서 나는 자주 사라졌다. 라며, 기자인 직업을 가져서 글 쓰는 마음을 잠깐 비췄다. 그 문장에 나는 인덱스 포스트잇을 표시해 뒀다. 어쩌면 내가 꾸준히는 아니지만 글을 쓰는 행위가 '인정받고 싶다'와 '도망가고 싶다'사이에서 나는 자주 사라졌다.라는 표현으로 설명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서이다. 작가는 자신이 쓰는 글이 작고 사소해서 반짝이는 것으로 가득하길 바랐는데, 그럼 나의 글은 어떻게 되길 바랐는지 생각해 보니, 참 부끄러워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와 달리 나는 나의 글이 크고 엄청나길 바라는 터무니없는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글 쓰는 행위를 미루며, 도망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작가가 나에게 '슬픔이 쓸모가 있는 다정한 미래를 함께 발명하고 싶어요.'라는 문장을 선물해 줬다. 그래서 그 슬픔이 쓸모가 있는 다정한 미래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여름과 겨울 중 어느 계절이 좋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여름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위가 싫어서 차라리 겨울이 더 낫다고 말할 때, 나는 추위와 더위의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밝음과 어둠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름은 해가 길잖아요. 낮이 길어서 좋아요. 어둠이 빨리 오는 것보다, 그래서 더위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무심하게 내 말을 흘러 보내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어둠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온 힘을 다해 그 어둠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며 살았는지를 숨겼다. 내가 틈을 보이면, 내면의 어둠은 나를 잠식할 것 같아, 밝음을 향에 뜀박질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숨을 쉬고 사는 일은 밝음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애씀이 있는 것이다.

젖먹이를 안고 온 긴 머리의 그녀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나의 이모였음은 나중에 내가 좀 더 컸을 때 알았다. 그렇게 왕래가 많았던 것도 아니고 내 나이도 가늠하기 어려운 때의 기억이라 나는 숨죽여 젖을 빨고 있는 아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젖을 빠는 아이가 신기한 건지, 그 아이에게 젖을 내어주는 그녀가 부끄럽지 않은 게 신기한 건지 마음을 알 수 없으나 거기엔 나의 엄마가 없었다. 훗날 이모의 이야기를 통해서 엄마가 앞니 두 개가 부러진 채로 짐을 싸들고 엄마의 여동생에게 갔을 때, 그리고 다시 우리 집으로 여동생과 함께 우리 집에 왔을 때, 나는 왜 내 기억의 장면 속에서 엄마는 없었는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내게 각인된 장면은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장면과 엄마가 짐을 싸들고 나갈 때 아무 잘못 없는 내가 엄마, 아빠에게 용서를 빌었던 장면과 내 잘못으로 엄마가 집을 나갔다며 자책하며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대문 앞에서 기다리는 장면, 그리고 이모가 젖먹이 아기를 안고 아빠에게 무언가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남아있었다. 거기엔 내 엄마가 없었다.

한 여름에 나는 결혼했다. 결혼식 당일 양가 부모님께 폐백을 드렸을 때, 엄마가 나에게 두툼한 봉투를 쥐어주었다. 첫날밤 엄마의 두툼한 봉투에서 꺼낸 난생처음 받아보는 엄마의 편지에서 나는 엄마를 보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에서 엄마가 있었다. 나에게 주었던 어둠이 얼마나 미안했는지 구구절절하게 써져 있는 편지를 읽으며 나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젖먹이의 아기를 쳐다보고 있었던 게 아니라 젖먹이처럼 엄마에게 달라붙어 있고 싶은 나의 마음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엄마는 나를 안아줬다.

나는 여전히 슬픔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나에게 슬픔은 폭력이고, 공포이며, 나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게 괴로워 그 감정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몰랐다. 울음을 터트리면, 그건 시끄러운 일이 되어 버리기에 숨죽여야 했으며, 내가 슬픔을 느끼지기 전에 그의 화를 마주해야 했기에, 나는 그 화에 잠식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슬픔을 느끼기 전에 화로 감정을 덮어버리곤 한다. 그래서 내 삶에서 슬픔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며 지낸다. 그래서 작가가 말하는 '슬픔이 쓸모가 있는 다정한 미래'라는 말이 내겐 선물 같았다. 그녀의 많은 슬픔이 그녀를 밝음으로 이끌고, 타인에게 다정함을 나눠줄 수 있는 마음으로 이끈 것처럼, 나 역시 나의 슬픔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를, 그 슬픔이 쓸모가 있기를, 그 속에서 다정한 미래를 나눌 수 있기를 꿈꿔본다.


'제주는 지천에 무덤이 있다. 반 한가운데, 길가에, 집 옆에. 삶의 자리마다 죽음을 끌어안고 있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늘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나는 그 모습이 몹시 보기 좋았다. 적어도 제주에서 죽음은 추상이 아니었다.'


삶 속에서 문제나 갈등에 직면하면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늘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 어둠을 마주하며, 나는 밝음을 향해 뛰어가곤 했다. 그런데, 그 또한 나는 나의 문제나 갈등, 슬픔, 화와 같은 마음을 직면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렇다는 걸 글을 읽고, 쓰며 깨달았다. 삶의 자리마다 죽음을 끌어안는 것처럼, 나는 나의 삶 속에 문제나 갈등을 끓어 안고 살아가는 존재인 게 당연한 일인데,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한쪽이 고장 난 사람처럼 그런 일에 마주하면 무슨 큰 오점이 있는 것 마냥 나를 증오하고, 나를 부정하며 없앨 생각만 한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내 삶 속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강박과 같으며, 나의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나와 같다. 그런데 작가가 말하는 적어도 제주에서 죽음은 추상이 아니었다는 말이 내 마음에 꼭 박혔다. 어쩌면 나의 죽음, 문제, 갈등, 화는 추상적인 내 기억에 자리 잡아 나를 꼼짝하지 못하게 했던 것 같다. 그게 눈으로 보인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까지 두려워하거나, 불안하지 않고, 지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제는 그 추상적인 기억을 이렇게 구체화시켜 보내줘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슬펐어요. 멈추길 바랐어요.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미웠어요. 떠나는 엄마를 붙잡을 수 없는 내가 무기력했어요. 엄마를 많이 기다렸어요. 보고 싶었어요. 영영 오지 않을까 봐 두려웠어요. 내가 부정당한 것 같아, 내가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 같아 괴로웠어요."


"지금도 내 삶에서 종종 생각해요. 내가 없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내가 문제라고. 그 생각을 멀리 보내는 일은 쉽지 않아요. 내 안에 슬픔을 마주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에요. 간단하게 화를 내면 그만인걸요. 화는 쉽게 표현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화를 내고 나면, 내 마음을 쏟아 버린 것 같아, 불태운 것 같아, 내 에너지를 다 써버린 것 같아 금방 나를 다스릴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나는 내 슬픔을 보지 못해요."


밝음을 향해 뜀박질하지 않아도 괜찮다. 긴 어둠 속에서도 별이 있음을, 별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긴 어둠 끝에 밝음이 온다는 걸 나는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냥 그 자리에 있어도 된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면, 그냥 눈 감으면 그만이다. 너무 애쓰지 마라.


#슬픔의방문

#장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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