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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29화

시작

수퍼마리오는 만보를 채우러 나간다.

by 나무

어제 2학기가 시작되었다. 시작은 '처음으로 행하거나 쉬었다가 다시 행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방학을 온전하게 쉬었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학생도, 나도, 그리고 우리 집 아이들도 '잘 모르겠다.'라는 답을 가장 많이 할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질문에 '예'라는 답도 '아니요'라는 답도 어느 한쪽에 치우쳐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바꿔서 했다. 2학기가 시작되었는데, 2학기는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이다. 그래서 나는 시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처음으로 행하거나'

처음으로 행할 때 마음은 설렘과 걱정, 낯선 마음과 함께 한다. 그리고 한편엔 기대감이 따라다닌다. 백지상태에서 새로 그려나가는 것, 마음의 기대치가 한가득인 순간, 뭐든지 잘해보겠다는 마음, 그게 처음의 마음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어제 하루 처음으로 행하는 마음으로 보냈다. 새롭게 만난 학생들에게 우리는 백지상태임을 말했다. 나는 너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너희도 나에 대해 모르는 상황. 그리고 이제 그 백지에 그림을 그려 나가면 된다고, 그 백지에 너희가 그리고 싶은 색으로, 도구로, 무엇이든 상관없다고, 그러니 이제껏 너희에게 덧입혔던 것은 한쪽으로 치우고, 백지에서 이 수업 시간만큼은 새롭게 시작하자고 말했다.


'쉬었다가 다시 행하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만보를 걷기 시작했다. 한 학기 동안 운동을 쉬었다. 운동을 하다 말다 하기를 반복했는데, 다시 행하기로 다짐한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이 계속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걸으면서 나는 '꾸준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 걷기가 꾸준함을 이어가길, 나의 글쓰기가 꾸준함을 이어가길, 내가 준비하는 수업에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꾸준함을 이어가길. 그 마음들이 지치질 않길 바라며, 나의 몸도 마음도 단련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래서 몸으로 행했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빨리 글을 쓰고 나가서 만보를 걸어야지 하는 조급함을 가지고 그렇게 나의 꾸준함을 만들기 위한 '다시 행하다'를 실천하고 있다.


어제 딸아이가 수학 문제를 풀다가 울었다. 1학기 과정이 끝나고, 2학기 과정에서 원의 넓이를 구하면서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다 틀린 문제를 받아 들고 딸아이는 나에게 토하듯이 마음을 내뱉었다.

"하나를 쌓으면, 하나가 무너져 버리는 게 너무 속상해요."


그런 딸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혹시 슈퍼마리오 게임 알아?"


뜬금없는 엄마 말에 딸은 '오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았다. 그리고 뭔지는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딸아이에게 슈퍼마리오를 그려주고 첫 번째 블록을 한 칸, 두 번째 블록을 세 칸, 세 번째 블록은 더 높은 칸을 그려놓고 그림으로 슈퍼마리오 게임을 보여줬다.


"자, 봐 슈퍼마리오가 한 칸을 올라갔어. 얘가 안 떨어지려면 다음 칸으로 점프해야 해. 그리고 다음 칸으로 갔어, 근데 세 번째 칸에서 떨어졌다. 딸아, 슈퍼마리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어?"

"떨어졌어요."

"그럼 떨어진 위치를 잘 봐. 위치는 처음과 같아?"

"아니요.."

"그럼?"

"두 번째랑 세 번째 사이요."

"그럼 슈퍼마리오는 처음보다 나아간 거네?"

"네."

"그럼, 너도 너무 속상해하지 마. 속상한 일이 아니야. 왜냐면, 그 하나를 쌓아서 넘어갔고, 그리고 무너진 건 그만큼 나아간 뒤 무너진 거니깐, 거기서 다시 하면 되는 거야."


나는 딸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1학기 동안 학교 일이 나랑 맞지 않다고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없을까라며 고민하던 나, 브런치 글이 대박 나는 방법은 없을까라고 하면서 매력적이지 못한 나의 글을 탓하며, 글은 꾸준히 쓰지 않는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슈퍼마리오가 되어 꾸준함을 생각하며 만보를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꾸준함을 이어가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 꾸준함이 지속되길 바라며, 슈퍼마리오는 만보를 채우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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