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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시 수업)

'신분'( 하종오) 詩

by 나무

우리에게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신분은 존재한다.

누군가는 신분을 의식하며, 누군가는 신분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나는 후자이고 싶으나 전자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오늘 수업 시간에 시 한 편을 아이들과 나눴다.


한국 청년 지한석 씨가 하는 몸짓 손짓을 / 미얀마 처녀 파파윈한 씨는 가만히 바라본다


파파윈한 씨는 이주민이고 / 지한석 씨는 정주민이지만

같은 공장 같은 부서에 / 근무하는 노동자여서 / 손발도 맞고 호흡도 맞다


공장의 불문율에는 / 일하고 있는 동안엔

남녀 구별하지 않고 / 불법 체류 합법 체류 구분하지 않고

출신 국가 구분하지 않는다는 걸 / 그도 알고 그녀도 안다

세계의 어떤 법령에도 / 노동하는 인간의 신분을 따질 수 있다고 / 씌어 있진 않을 것이다


한국 청년 지한석 씨가 내는 숨소리에 / 미얀마 처녀 파파윈 씨는 가만히 귀 기울인다


교실 안에 있는 아이들은 신분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후자로 살아간다.

단순하게 '공장'이라는 시어를 보고 자신과 다른 공간의 일이라 여긴다.

단순하게 '불법 체류'는 잘못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또는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냐고 묻는다.

노동 문제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다 개중에는 '구분하지 않아요.', ' 노동하는 인간의 신분은 따지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고등학교 2학년 문학 시간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말한다.


"나는 너희와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신분을 가지고 있어. 너희는 학생이고 나는 선생님이야. 평가를 받는 사람과 평가하는 사람 입장에서 우리는 갑을 관계가 암묵적으로 정해지지."

"그리고 나는 기간제 교사야. 교직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가 학기 중이었어. 아이들은 나를 단순하게 선생님이라고 보지 않고 임용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사람, 실력이 없는 사람, 정교사를 대신해서 온 잠깐 머물다 가는 사람으로 인식했어. 그래서 학생들은 나를 대놓고 무시하거나 설명하기 까다로운 단어들의 뜻을 물어보며 간 보기를 했지. 거기서 나는 '을'이 되고, 그 과정에서 나는 이 시와 다르게 구분되어서 지냈어. 기간제 교사가 나의 전부인양 타인에게도 나에게도 인식되었어. 이 말은 나 역시도 나를 기간제라는 신분에 나를 가둬 실력이 없는 사람, 타인에게 무시당해도 괜찮은 사람, 하찮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거야."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 앉으며 내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하려고 하나 지켜보고 있었다.


" 그래서 나는 그 뒤로 학생들에게 기간제 교사라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 밝히는 것을 꺼려하며 지냈어. 그런데 지금 나는 이 자리에서 너희에게 밝히고 있어. '같은 공장에 같은 부서에서' 같이 너희는 나와 다르지 않아.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내가 너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내면의 힘이 커져서야. 기간제라는 신분은 하나의 옷과 같아. 이 옷이 나의 전부를 대변하지 못해. 옷은 언제든지 바꿔 입을 수 있어. 한국 청년 지한석 씨와 미얀마 처녀 파파윈한 씨가 남녀, 합법과 불법 체류, 출신 국가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은 서로를 하나의 신분이나 한 인간을 도구적 가치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하나의 존재 자체로 본다는 거야."


" 우리는 누구나 신분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그 신분은 상황이나 인식에 따라서 항상 변하지. 나는 너희에게 묻고 싶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회의 잣대나 기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자유로울 수 없다면 자신은 '한국 청년 지한서 씨'인지, '미얀마 처녀 파파윈한 씨'인지, 너희는 이 질문에 쉽게 답하기 어려울 거야. 왜냐하면 우린 한국 청년 지한석씨가 될 때도 있고, 미얀마 처녀 파파윈한씨가 될 때도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이 시에서 시인은 이들을 통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화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하는 거야. 세상이 이 시와 같이 '구별하지 않고', 세계의 어떤 법령에도 노동하는 인간의 신분을 따질 수 있다고 씌어 있진 않을 것이다.'처럼 사회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이야기하는 거야. 그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했을 때 시인은 화자를 통해서 '가만히 바라본다' ', '손발도 맞고 호흡도 맞다', '가만히 귀 기울인다'와 같이 시적 대상이 신분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눈짓, 몸짓, 호흡과 같이 스스로 존재하게 하는 한 인간 자체로 대면해야 한다는 거야. 삶은 이들과 같이 함께 호흡하고 공존하며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거야."


아이들에게 시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나는 처음으로 학생들 앞에서 기간제 교사임을 말했다. 나의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좌절하고 힘들어하며 떳떳하지 못함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시와 같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만이라도 공존하며, 조화롭게, 함께 호흡하며 살기를 바라며 진심으로 다해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신분

#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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