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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시 수업)

우리 동네 구자명 씨 詩(고정희)

by 나무

학부와 교육대학원을 나와 임용시험을 보다 실패를 계속 경험하고, 주변에서 하나둘씩 합격해서 교직 생활을 시작할 때, 나는 결혼을 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 중학교에 발령받은 남편과 함께 신혼 생활을 시작하고, 임신, 출산의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주부가 되었다. 주부가 되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내 뜻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꿈꾼 미래도, 학생들과 함께 하는 미래도, 내가 원한 것들이나, 일의 순서와 모양새가 달랐을 뿐이다.


기간제 교사는 정교사가 휴직이나 연수, 정직 등으로 직무를 이탈할 경우 해당 업무를 보충하기 위해 임용하는 교원이다.

그래서 나는 학기 중간에 갑자기 휴직한 선생님 대신 기간제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남편은 고등학교에서 담임과 여러 업무를 맡고 있었다. 내가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우리 가정이 맞벌이가정이 되는 것이다. 단순하게 한 문장으로 끝나는 이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자면, 아무 연고 없는 시골에 살고 있었기에, 양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네 식구가 각자도생, 고군분투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남편이 출근길에 첫째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나는 둘째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학교로 출근했다. 당시 학교 출근 시간이 8시 40분까지라 둘째를 1등으로 등원시키고, '초보운전'을 달고 국도를 열심히 달려, 8시 30분쯤 학교에 도착하곤 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초보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나름 애쓰며 생활했던 것 같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두 아이를 각각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이들이 잠든 시간 남편이 집으로 왔다.


일하는 나도 처음, 일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도 처음, 그 처음이 서툴고, 불안하고, 힘들었다. 사실 일을 하면서 집안일을 하고, 육아를 하는 것보다 무엇보다 인정 욕구가 많은 '나'라서 타인 앞에서 실수할까 두렵고 힘들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학생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이 힘들었다.


'자습서 내용 설명하지 마세요.'

'학원에서 다 배운 내용이에요.'

'선생님 수업은 재미없어요.'


새벽 5시 나의 기상 시간, 그 시간에 수업준비를 했다. 하필이면, 학군이 센 학교, 전교에서 공부 잘한다고 하는 학생들이 온다는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그 바람에 나는 아이들에게 평가의 대상이 되었고, 수준 미달의 평가를 받았다. 그 평가를 뒤집기 위해서 나는 새로운 수업 자료를 만들고, 더 많은 양의 공부를 하며,

'두려워하지 말라, 담대하자.'라고 말하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어느 날 문학시간,

내신을 생각하는 친구들은 수업에 집중하며, 정시를 준비하는 친구는 다른 책을 공부하며, 어수선한 그 시간.

아이들에게 '우리 동네 구자명 씨'를 가르쳤다.

" 얘들아, 우리 동네 구자명 씨"를 "우리 동네 김나무 씨"로 읽어볼게.


맞벌이 부부 우리 동네 김나무 씨/ 네 살, 여섯 살 아이를 둔 김나무 씨는 / 어린이집에 아이를 내려놓기 무섭게 감 지 못한 머리를 똥머리로 묶은 채 출근한다. / 00에서 00까지 / 속도 제한에도 아랑곳없이 / 아침 햇살 속에서 정신없이 밟는다 /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 경주마처럼 미친 듯이 달리는 김나무 씨 / 그래 저 십 분은 / 간밤 아이들 밥 먹이고 씻긴 시간이고 / 또 저 십 분은 / 간밤 아픈 아이를 열체크 한 시간이고 / 그래그래 저 십 분은 /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 거야 /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 잠 속에 흔들리는 팬지꽃 아픔 /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 그러나 부엌문이 여닫히는 지붕마다
여자가 받쳐 든 한 식구의 안식이 / 아무도 모르게 / 죽음의 잠을 향하여 /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이렇게 시를 재구성해서 나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읽어내자, 졸고 있던 아이가 잠에서 깨어 나를 바라보고, 무표정인 아이가 웃기 시작하고, 다른 책을 보던 아이가 그 책을 덮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아이들이 내 수업에 집중하고 시 속의 화자를 공감하며, 연민하며, 함께 시를 읽었다.

그래서 '우리 동네 구자명 씨' 시는 나에게 참 고마운 시이다. 아이들이 나를 도구적 가치로 생각하지 않고,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하기 시작했으며 나의 수업에 맘을 열기 시작했다. 나 또한 초보 선생에서 조금 성장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맞벌이 부부 우리 동네 구자명 씨 / 일곱 달 된 아기 엄마 구자명 씨는 / 출근 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 경적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 씨 / 그래 저 십 분은 / 간밤 아기에게 젖 물린 시간이고 / 또 저 십 분은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 든 시간이고 / 그래그래 저 십 분은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 거야 /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잠 속에 흔들리는 팬지꽃 아픔 /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 그러나 부엌문이 여닫히는 지붕마다
여자가 받쳐 든 한 식구의 안식이 / 아무도 모르게 / 죽음의 잠을 향하여 /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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