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서 국어 수업시간은 고등학교와는 또 다르다. 고등학교에선 '어려운 작품을 어떻게 잘 가르칠까,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이해하기 쉬울까'를 고민한다면 중학교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수업을 디자인했다. 내가 그림책 수업에 관심을 가진 건 우연히 연수를 듣게 되었고, 우연히 나머지 국어 수업을 해야 하는 대상 학생이 한국말을 잘하는 러시아 친구와 한국말로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한국 친구를 가르치면서였다. 처음엔 의무감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국어 시험 문제를 풀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자 노력했다. 그러다 아이들도 나도 재미가 없고,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문제풀이의 이론 수업을 버리고 아이들과 그림책 수업을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내 자녀들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작이 그림책이었다. 그렇다면 한국말로 소통하는데 문제가 없지만 글이 많은 작품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친구와 한국말은 잘 알지만 친구들과 소통하기 힘든 친구에게 그림책을 함께 읽어나간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여러 권의 그림책을 같이 읽어 나갔다.
아이들에게 먼저 그림책을 주면 각자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한 명씩 그림책의 1페이지마다 나오는 다양한 그림의 생각이나 느낌, 의도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러시아에서 온 친구는 글을 읽지 않아도 되는 부담감에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친구들과 소통하기 힘들어하며, 자기 이야기를 잘 안 하는 한국 친구는 그림책의 작은 요소들 하나씩 바라보며 자기 생각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그렇구나! 어머나! 그렇게 생각하다니 기발한 걸."
함께 반응하며 생각을 나눴다.
국어 문제를 풀 때는 수업을 자주 빠진 아이들이 그림책을 함께 읽으면서부터는 이 시간이 재미있다며, 즐겁다며,
"선생님 감사합니다." 리고 인사하며 집에 돌아가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우리 셋이서 하는 마지막 그림책 읽기 시간, 나는 '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책을 준비했다.
이 책은 한 소년이 학교 발표 시간에 아무 말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버지가 데리고 간 강가에서아버지가 소년에게 강물을 보며 말을 한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나는 두 아이에게 말했다.
"너희도 소년과 같이 강물처럼 말한단다."
"사람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통을 해. 그게 언어가 아니더라고 해도 눈빛으로 표정으로 행동으로 여러 가지 수단을 가지고 표현해. 똑같은 방식이 아니고, 다른 모습이라고 해서 움츠려들 필요가 없어. 각자 이 소년과 같이 강물처럼 말하면 되는 거야. 오늘 너희는 친구들과 어떤 소통을 했니?"
사실 이 질문은 한국 친구를 위한 질문이었다. 작년 담임 선생님과 올해 담임 선생님을 통해서 안 친구의 정보는 담임 선생님과도 말을 잘 안 하며, 학급에서도 말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러시아 친구는 조잘조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다음 우리는 한국 친구를 바라봤다.
"저는 오늘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그 말의 시작으로 유치원 이후로 친한 친구를 사귀어 보지 못했으며,친구를 어떻게 사귀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말을 안 하고 있는 게 '외롭다'라고 표현했다.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러시아 친구가 말했다.
"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줄게."
그리고 나는 두 친구에게 이 책을 각각 선물하며, 이 그림책처럼 아이들이 성장하길 바라며 앞날을 축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