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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Jul 20. 2024

마지막을 준비하며,

"누구야, 샘은 기간제 교사야. 그래서 내년에 볼 수 없어."

https://brunch.co.kr/@skytree12/39

1.

 말썽꾸러기 녀석은-지금은 나의 마니또로 불린다.-사실 우리 반 부반장이다.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목소리의 힘이 있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한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이 사건과 함께 내 마니또가 되면서 친밀감이 형성됐다. 그래서 녀석은 자기감정을 조절하기 시작했고, 내 상태를 살피기도 했으며, 내가 "넌 나의 마니또야."라고 하면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며 눈웃음을 보여주기도 하는 귀여운 구석을 보여주는 순수한 중2가 되었다.  

 한 학기가 마무리될 때쯤 모범상을 추천해서 아이들에게 한 반에 몇 명을 뽑아 시상한다. 거기에서 나는 우리 반 부반장의 모범상을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학교에서 칭찬보다는 꾸지람을 많이 받았고, 아슬아슬하게 선도를 몇 번 갈 뻔하기도 하고, 학폭과 연루될 뻔도 해서 과연 모범상을 주는 것이 맞는 것인가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아이가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한 학기 동안 꾸준히 핸드폰 도우미를 하며, 선도와 학폭에 연루될 뻔했을 때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조심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아이의 가능성과 현재를 바라보기로 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모범상을 주었다. 주면서도 반 전체에 너에게 이 상을 주면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나는 2학기 때 계속 우리 반 담임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가야 할지, 조용히 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론은 말하지 않고 조용히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맘에 걸리는 게 있었으니, 이 녀석이다. 친밀감이 많이 형성되어 있는 상태고, 2학기 때는 반장이 될 거라며 자신하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녀석을 조용히 따로 불렀다. 그리고 녀석에게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입 무겁게 닫고 가자고 약속을 받고, 말을 시작했다. 너와 나 사이에 마니또로 라포가 많이 형성되었고, 네가 지금 잘하는 모습이 나는 정말 좋다고, 선생님이 너를 좋아한다고, 모범상을 준 건 네가 잘해서 준 게 아니고 앞으로 네가 잘할 것을 믿고, 준거라고. 우리 반에서 힘이 있는 아이니깐, 선생님이 없어도 힘이 없는 아이들 편에서 목소리를 내어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비밀이라고, 그러나 너에게는 말하고 가야 네가 덜 상처받을 것 같아서 말하고 간다고 말했다. 그리고 반티에 선생님이 적어 놓은 좋은 말들처럼 네가 성장하길 정말 바란다고, 멋진 청년으로 자라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아이는 많이 놀란 듯했다. 그리고 왜 2학기 때 나오지 않냐는 아이에게 나는 현재 선생님이 몸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아이가 되물었다.

 "그럼 내년에 볼 수 있어요?"

 "누구야, 샘은 기간제 교사야. 그래서 내년에 볼 수 없어."

 눈가가 순하게 쳐지는 녀석의 눈빛을 보자니 마음이 안 좋았다.

 그리고 교실로 돌아와 나는 아이를 제대로 처다보지 못했고, 녀석은 손을 들더니 잠깐 화장실을 다녀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러라고 했다.


2.

 미국에서 살다 온 아이가 있다. 한국 학교가 처음이고, 내가 영광스럽게도 이 아이의 첫 담임이 되었다. 처음에는 부담이 되기도 하고,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진단평가에서 국어 실력이 형편없어서 아이랑 학교에 남아서 보충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어제가 마지막 시간이었다. 첫 번째 국어 시험보다 두 번째 본 국어 시험에서 무려 40점이나 올려서 무척 기뻐하기도 하고, 서로 단어를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해야 할지 몰라 파파고와 국어사전을 통해서 검색해서 이해시키기도 하고 그렇게 수업했다.

 무엇보다 이 친구를 가르치면서 정말 즐거웠다. 하고자 하는 의욕과 예의를 갖추고 있으며, 둘만의 수업이 끝나면 늘 "감사합니다."로 인사하는 녀석이 참 듬직하고 바른 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녀석도 수업을 통해서 얻은 게 있었겠지만, 나 역시 학생에게 정성, 지식, 사랑, 관심을 나누며 행복함을 얻어 늘 기분 좋은 수업이었다.

 "누구야, 오늘이 우리 둘이 하는 마지막 수업이야, 한 10분 정도는 한 학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정리해 보자."

 그리고 우리는 처음 한국 학교에 왔을 때 교우관계에서 느낀 점과 지금 상황에 대해 쭉 대화를 나눴고, 학업부분에서 어떤 부분이 적응하기 어려웠는지, 괜찮았는지,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미국 학교생활과 한국 학교생활을 비교하고, 자신이 느끼는 한국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감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이야기 끝에 내가 아이에게 말했다.

 내가 너의 한국 학교생활에 첫 담임이라서 기쁘다고, 네가 국어 성적이 올랐을 때 정말 좋았다며, 앞으로 어떤 식으로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고, 방학 때 이런 부분들을 챙겨달라고 조언해 주며 마무리했다. 녀석은 마지막 수업에서도 변함없이

 "선생님 수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하고 갔다.


 "나도 고마워. 수고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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