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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Aug 10. 2024

크로아티아 가는 길(유럽21)

여행 중 만난 소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HOTO BY J.E. 2023.04.18.

 베네치아에서 버스를 타고 크로아티아 수도로 가는 길, 나는 생각지도 못한 풍경을 만났다. 버스 안에서 저곳을 가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을 눈으로 터치하듯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저 숲속과 알프스산맥의 어느 곳에서 '사비나와 프란츠 사이에 난 모든 오솔길'을 생각했다. 서유럽에서 동유럽으로, 그리고 자그레브로 가는 길에 슬로베니아를 거치고, 그 근처 보스니아가 있는 곳으로 가는 중이다. 유럽을 오기 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손에서 놓을 수 없어 밤새 읽고, 다이어리에 필사할 정도로 그 문장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 글의 배경이 되는 동유럽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들떴다.-소설 속 체코를 가는 건 아니지만, 동유럽이라는 자체만으로도 나는 무척 가깝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탈리아를 벗어나 동유럽이 시작되면서부터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서유럽이 화려하고, 곳곳이 문화유적지고, 관광지였다면 동유럽은 소박하고 간소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해 줬다. 소설 속의 인물들 간의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전체주의적 키치 왕국과 등장인물 개인의 키치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그들 사이에서 독자인 나는 숨죽이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여정에서 소설 한 부분을 생각했다.

 내가 사비나와 프란츠 사이에 난 모든 오솔길을 되짚어 본다면, 그들이 작성한 몰이해의 목록은 두터운 사전이 될 것이다.

 

 내가 이 문장을 만났을 때, 얼마나 감탄하고 이해했는지 모른다. 그들 사이에 난 모든 오솔길 그들이 작성한 몰이해의 목록은 비단 그들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20대 때 이 책을 읽고 몰이해의 목록에 넣고 덮었던 책을 40대가 되고 나서 나는 깊이 공감하며, 이해의 목록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20대에 헤아릴 수 없이 서툰 연애에서, 아니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몰이해의 목록을 얼마나 두껍게 작성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40대가 된 내가 그 목록이 얇아졌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렇지도 않다. 그러나 몰이해의 목록이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정도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나는 그렇다. 

 그렇게 하나의 소설이 나에게 다르게 다가온 경험을 줬다. 그래서 내 여정에서 이 소설을 생각하고 소설 속 인물들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목적지를 도착하기 전까지 소설을 생각하며 그 문장을 떠올리며 들뜬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늦은 밤 중에 우리는 크로아티아 수도인 자그레브에 도착했다. 그리고 트램을 타고 숙소 근처인 반 옐라치치 광장에서 내렸다. 그리고 반 옐라치치의 동상을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내일부터는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된다. 우리가 계획한 여행의 3분의 1이 채워지니, 이제 여행이 일상이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며, 나의 일상이 조금 생각 나기 시작했다. 나의 여행은 가벼운데 내 일상은 왜 그렇게 무거우냐는 생각과 함께 반드시 다시 돌아갈 그곳을 생각하며 나는 내일의 여정을 떠올리며, 낯선 숙소에서 잠을 청해본다.

 Muss 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Je, es muss sein! (네, 그래야만 합니다.)  


       

PHOTO BY J.E. 2023.04.18. 자그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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