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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Nov 29. 2015

이 글은 페이스북에 쓴 글의 자기표절입니다.

표절 기준에 관한 소고

표절 문제에 대하여 진지한 글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1) 표절은 윤리적 문제다. 
2) 학력과 학벌만으로 사람 판단하는 사회가 문제다. 
3) 아이디어 원작자는 당연히 밝혀야 한다. 
4) 자기표절도 표절이다.  

표절문제가 나올 때 대부분의 반응이다. 그러나 이 접근법들은 감독하는 입장에서의 글이라고 본다. 표절에 대하여, 감독자의 시선에서 글을 쓰기는 쉽다. 자기가 표절시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 공자왈 맹자왈 하면 됐다. 표절에 대해서 공자왈 맹자왈 하는 글의 대부분, "읽고 나면 대체 뭐하잔 말이지?"라는 물음만 남는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창작자의 입장에서 어디까지 남의 아이디어를 가져와야 그것이 표절이 아닌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것이 논문을 쓸 때, 소설을 쓸 때, 블로그 글을 쓸 때, 혹은 산문을 쓸 때 모두 지켜져야 할까? 예를 들어 시를 쓸 때 영화 람보에서 영감을 얻고, 도덕경의 한 구절을 언급한다면, 각주로 "람보", "도덕경"이라고 달아줘야 할까? 트위터는? 배포자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소스코드는?

자기 글을 표절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학문적 문제라기 보다는 저작권의 문제다. 예를 들어, A라는 잡지에 글을 기고했다가, B에 수정해서 기고한 것이 무슨 문제인가? 본질은 A와 B의 저작권이 충돌된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런 기준은 법적으로 좀 더 명료해질 필요가 있다. 물론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지거나 엄격한 기준으로 보면 이것은 문제임이 맞다.

또 생각해볼 점은, 과연 표절을 어떤 방식으로 규정했을때 존재하는 저작의 몇 %가 진짜 창작품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마 존재하는 석박사학위논문은 물론, 소설, 시, 에세이, 블로그 글, 페북 거의 60% 이상은 소송거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전에 우리가 사용해왔던 저작들은 대부분 불법저작이 될 것이고, 대학과 지식인들은 거의 모두 공범이 된다. 모든 사회가 공범이 되는 규칙이 과연 필요할까? 이런 문제때문에 표절은 아주 드물게 누구를 '단죄'하는 경우에만 사용된다.

표절에 관련해 공자왈 맹자왈 하기보다, 한번 100개 정도의 표절 사례와,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을 어떻게 인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100개의 사례를 놓고,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대략 인용만 하면 표절의 늪은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막상 한 줄이라도 써보면 그 놈의 인용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산더미인 것을 알 수 있다.

표절을 피하려면 안전하게 '공식적' 학술지만 '공식적으로' 인용하면 된다. 이렇게 쉬울 수가!

그런데 표절만 피하고 싶으면 창작가능한 크기도 줄어든다. 고로 표절방지 가이드라인은 창작을 하지 말고 안전한 인용을 가장한 표절만 하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현장에서 넘치는 진짜 정보는 어떻게 인용하고 가공해야 할지 몰라서 쓰기 어렵다. 진짜 진실을 담고 있는, 신문에 보도되지 않고, 누군가 다뤄주지 않는 문제들은 세상에 나와주기 어렵게 된다.

<태백산맥>을 쓸 때 조정래씨는 빨치산 이야기를 쓸 때, 빨치산들을 찾아다니면서 "제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오"라고 하면서 "누군가는 당신의 이야기를 알아야 할 것 아니오"라면서 사정을 했다 한다(이 말도 내가 조정래 강연에서 2001년인가 언젠가 들었던 말인데 정확한 워딩인지 확신은 없다. 그냥 쓴다. 표절인가? 미인용인가?).

그렇다면 <태백산맥>에 나온 이야기는 픽션을 거쳤기 때문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옮겨도 용인되는 것일까? 저작자를 표시해야 한다면, "익명의 빨치산으로부터"라고 썼어야 하는 것일까?

표절은, 
정의부터 실천까지 좀 더 심층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다. 관객석에서 돌팔매질 하는 사람들은 같이 내려와서 표절을 피하면서 같이 글 한번 써보자. 표절을 옹호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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