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험난한 대학원 생활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려면 참고할 팁
학부 때 학생들은 거의 연구에 대해서 지도를 받아본 적이 없다가, 대학원에 와서 처음으로 '지도교수'라는 무시무시한 산을 만난다.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역시 지도교수와의 관계이다. 한국에서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는 각별하고, 또 특별하다. 그러나 많은 대학원생들이 지도교수 대하기를 어려워 한다. 지도교수는 당신이 부딪친 처음이자 마지막 장벽이다.
지도교수는 당신이 전공한 분야의 대가이면서, 적어도 그 분야에서 당신이 10년은 더 공부해야 따라갈 수 있을만한 내공을 가지고 있다(물론 일부 지도교수는 실력이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쨌든 이 글은 한국이 최소한 건강한 사회라는 것을 전제로 할 수 밖에 없음을 밝힌다). 게다가 장학금은 물론 당신의 진로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단 한 사람이다. 그러나 시중에 '지도교수를 고르는 법', '지도교수를 설득시키는 법'과 같은 책은 별로 없다. '대학원 생활 잘하는 법'에 관한 책은 있고, '논문 잘 쓰는 법'에 관한 책은 있는데, '지도교수 잘 구워 삶는 법'이란 책은 없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지도교수는 다른 무엇보다도 대학원 생활에서 중요하다. 지도교수는 심지어 대학원 생활이 끝난 이후에도 중요하다. 여러분이 유학을 간다거나, 좋은 자리에 취직을 해야 할 때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이 지도교수의 추천서이다(매번 지도교수만 추천서를 써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 만약 당신이 교수가 되었다면, 지도교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당연히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신이 지금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더 종속적 관계가 유지될 것이다.
그런데 대학원생 중에서 지도교수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지도교수도 사람인데 '어떻게 만나는가'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기술과 똑 같지 않겠느냐고 말하면 더 토론할 가치가 없다. 지금 이 글에서 언급하는 시츄에이션은 당신이 제 시간 안에 그럴듯한 논문을 써내고 졸업하기 위한 글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몇 년이 걸리더라도 나의 길을 가겠다, 고로 당신의 충고는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기서 '뒤로가기'를 눌러도 좋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만족스러운 성과를 가지고 지도교수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싶은 사람에게는 몇 가지 팁 정도는 줄 수 있다. 필자는 길고 지루한 팁을 선호하지 않는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팁들은 논문이라는 것을 쓰는 특수한 상황에서 지도교수를 만나는 방법에 관한 것들이다.
1. 공 들인 한 장의 문서
지도교수는 바쁘다. 너무 긴 문서를 읽어보고 검토할 틈이 없는 경우가 많다. 당신이 연구아이디어를 제출할 계획이라면 한 장의 문서라면 충분하다. 다만 그 한장의 짧은 문서 속에는 당신이 말하고 싶은 핵심이 정확하게 담겨야 한다. 허술한 표현, 비전문적 아이디어, 틀린 맞춤법,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하나라도 있다면 문서로서의 기능은 마이너스이다. 기억해야 한다, 완벽하지 않은 문서는 마이너스이다. 교수님 앞에서 논리정연하게 아이디어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면, 공들인 한장의 문서로 설명하라.
2. 지속적으로 일정을 상기시켜드려라.
아주 간단한 원리 하나. 교수님은 다른 모든 높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지도학생에게 덜 신경쓰기를 원한다. 그 말인 즉, 교수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교수는 덜 신경쓰면서 좋은 논문을 쓴 제자를 가지기를 원한다. 고로 교수의 마음에 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 스스로가 논문 스케쥴에 맞게 행동하고 있으며, 또한 교수가 해야 할 역할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아니, 그걸 할 줄 알면 내가 왜 이 글을 읽겠어?'라고 하실 분도 있다. 그러나 해보면 안다. 자신의 스케쥴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학생은 교수가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3. "어떻게 할까요?"라고 질문하지 말라.
학교 다닐 때 학생들은 질문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 물론 당연한 권리이다. 비싼 등록금 받았으니 당연히 질문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질문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가르치다보면 간단히 검색만 해도 알 수 있는 내용을 물어보는 학생이 너무 많다.
대학원생이 되어서 아이처럼 "난관에 부딪쳤어요. 해결책을 알려주세요"라고 말한다면, 그 질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교수가 싫어할 이유가 된다. 교수도 어렸을 때는 객관식을 잘 푸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교수님에게 어려움을 호소할 때는 '제가 부딪친 문제는 이것입니다. 이것의 원인은 무엇인데, 제가 생각한 해결 방안은 a,b,c가 있습니다. 어떤 안이 가장 좋겠습니까?' 이렇게 물어봐야 한다. 그러면 교수님은 쉽게 답을 고를 수도 있고, 폼도 난다. 이게 서로서로가 윈윈하는 상생전략이다.
4. 교수들이 침묵하는 학생을 좋아할 것이라는 편견은 버려라.
교수는 말 많은 학생을 상대적으로 더 좋아한다.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교수는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이다. 가르칠 때 반응이 없는 사람은 교수를 힘들게 한다. 조금 지나쳐보이더라도 학생이 말을 많이 하면(너무 많으면 곤란, 특히 술자리에서 눈치없이 말을 많이하면 마이너스), 가르친 보람이 생겨 뿌듯해한다. 지도학생이 말이 없으면 교수는 학생이 뭘 원하는 지 모른다. 교수는 학생을 잡아먹는 호랑이가 아니다. 그러므로 원하는 것이 있으면 정확하게 말하는 습관을 들여라. 그래야 나중에 졸업을 했을 때에도 교수님과 협업할 수 있다.
5. 부당하게 대하는 교수를 다루는 법. 참거나, 안 참거나.
교수는 다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교수에게 당해본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아무래도 대학원도 권력관계가 있고, 또 교수가 학생의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도 하다보니 마찰도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다. 교수가 부당하게 대할 때, 일관적인 답은 없다. 다만 조건문의 해답 정도는 생각해볼 수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기 자신에게 물어본다. "이 교수 밑에서 논문 쓰고 나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yes'라면 무조건 참아라, 'no'라면 하고 싶은대로 행동해라.
대학원 졸업은 논문만 쓰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형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무한 인내를 하다 보면 나중에 어떤 특별한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무조건 졸업하기 위해서 부조리를 참으라는 메시지로 오독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 교수 밑에서 졸업하고 싶다면' 참아야 한다. 어떤 이유로든 "그 교수 밑에서 졸업하지 않아도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하든 자유이다.
6.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한마디: 지도교수는 대학원 생활의 모든 것이다.
심판의 판정을 거스를 수 있는 선수가 없는 것처럼, 지도교수 역시 대학원 생활의 절대적 존재이다. 이 명제에 의심을 하지 않아야만 대학원 생활이 순탄할 수 있다(순탄한 것이 꼭 좋은 것이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아닐 수 있다). 지도교수와 사이가 안 좋다고 해서, 지도교수를 욕하고 다녀봐야 자기만 손해이다. 어쨌든
대학원에 들어왔고, 또 그 지도교수 밑에서 졸업할 생각이라면 지도교수에 대한 모든 정보는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 또 지도교수와 관계가 나쁘면 좋을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지도교수의 마음에 들면 어려운 길도 쉬워지고, 지도교수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쉬운 길도 어려워진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 자신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절대적으로 실력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대학원 스케쥴을 스스로 관리하고, 학사일정에 적절한 성실성을 보여주고, 연구과정에서 교수의 기대치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아무리 깐깐한 지도교수라도 어느 정도는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상 대학원 생활에서 지도교수를 만나는 법에 대한 간단한 글을 마친다.
험난한 대학원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혹시 대학원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다음 글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