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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Oct 25. 2020

왜 저를 뽑으셨어요?

이직 후 듣게 된 채용 이유 

어디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지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이직을 한 이후 한 번은 물어보게 됩니다.

"왜 저를 뽑으셨어요?"
사실 이것보다 더 궁금한 건 이 질문이죠? 

"왜 저를 떨어뜨리셨어요?"

사실 전자보다 후자가 더 궁금하긴 해요. 저를 떨어뜨린 많은 회사에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여러 회사에 떨어진 끝에 지금 회사에 오게 되었고, 

아마 여러 회사들이 저에게 헤드헌팅을 했다고 해도 지금 회사를 선택할 만큼

매력적인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저에게 매력적인 회사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지금도 솔직히 잘 이해가 안 가요. 

같은 직무를 두고 뽑은 다른 회사에서 채용소식을 듣지 못하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 채용된 것일까요? 

오늘은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언급하는 회사는 모두 공기업이고, 연구직입니다.

회사 실명은 밝히기 어렵고, 그냥 재미삼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박사 이상 받고 취직하는 연구직에 대한 글은 많지 않은 것 같아서요. 

경력은 좀 시원찮지만, 예전에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관계로, 

자소설에 조금 소질이 있었는지, 

제법 많은 회사에서 면접을 보았습니다. 

면접을 본다는 건 떨리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기대되기도 하는 일이었어요. 

나보다 훨씬 선배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공적인 자리에서 평가를 받게 되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이건 정말 낭만적인 생각이었어요.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았고, 

이상한 것들만 물어보더라고요. 

현직에 있는 지금도 이런 관념적인 질문이 도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념적 질문이었어요. 

한국 민자사업의 미래는 무엇인가? 

해외 민자사업시 공모펀드의 역할은 무엇인가? 

머리를 짜내 대답을 하려면 못할 건 없었지만, 

관련 직무 종사자로서 보기에는 정말 의미없는 관념적 질문들.

아마도 그 분들은 

면접자가 대답을 하지 못할 때까지 질문을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닌가 싶었어요. 

어떤 회사에선 들어가자마자 이러더군요. 


"저희 업무는 아무 것도 모르시죠?"


이렇게 묻는데 어이가 없더군요. 

나중에 면대면으로 만나면 왜 그랬는지 물어보려구요. 

솔직히 이런 말을 하고 싶었어요. 


"저기요. 혹시 내정 있으시면, 그냥 조용히 내보내주세요. 

그렇게 예의 없게 질문해서 서로 기분 상하게 할 필요 있나요?"


제가 받은 건,

"오만한" 질문의 연속이었어요. 

내가 실력이 없어서 떨어진 건지, 

내정자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생긴 것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그리고 같은 업무를 2년차 해오던 사람인데,

최종면접에 가서 "전공이 안 맞는데 잘못 지원을 했다"는 말을 하는 곳도 있더군요. 


저기요.. 전공이 안 맞으면, 

서류에서 떨어뜨리시지 왜 최종에 와서 이러시는 거죠? 


이런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패배자는 변명의 여지가 없죠.

어쨌든 나는 지원자고, 그들은 사람을 고를 권리가 있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내가 면접을 본 기관에서 물어본 질문은 간단했어요.

"*** 업무 해본 적이 있나요?"

"*** 업무 하면서 힘든 점이 무엇인가요?"

"*** 업무에서 새로운 지표를 도입한다면 무엇을 추천하고 싶은가요?"

"*** 업무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A와 B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세요."


어쩌면 내가 가장 잘 질문할 수 있는 질문이고, 

그냥 그 직장에 지원하는 사람이라면 그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을 정도로

평범하고 중요한 질문이었고, 

나는 해당 업무를 2년동안 해본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소신껏 대답할 수 밖에 없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세요."

이 짧은 질문조차 얼마나 소중했던가? 


이 시간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무런 꾸밈도 없었어요.


"제가 여기 저기서 면접 많이 봤는데

이렇게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많이 하게 해준 면접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잘 맞는 기관이라고 생각하고,

기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지금,

나는 사실 낯 뜨거워서 


"제 첫인상이 어떠셨어요?"

"저 면접 잘 봤나요?"


이런 질문을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는데

이제 스멀스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얼마전 부서장님께서 기관장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모인 회식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셨어요.


"이 친구(나)를 외부 교수님들이

굉장히 인상깊게 보셨다. 

마지막 코멘트가 인상적이었고, 

회사에 들어오면 불만이 없을 것이다고 하셨다."


그렇게 중요한 질문만 던져주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해주는 

기관이라면,

진짜 청춘(아직 청춘이라면)을 바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좋지 않은 스펙으로 이직하면서

(신입사원인 나는 우리 부서에서 나이로 3등이다)

내가 다시금 느끼는 결론은 두가지입니다.  


1. 계속 세상을 향해 문을 두드려야 내가 원하는 곳과 가까워진다. 

2. 긍정성을 잃지 말라. 결국 자기와 맞는 곳을 만나게 된다.


내일 모레 회사 그만두고 창업이라도 하고 싶었던,

나의 이직기는 여기에서 일단 끝났습니다. 


그리고 초기라서 힘내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적잖게 칭찬도 들으면서 직장생활 하니, 

정말 나에게 조금 더 맞는 곳으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웃기게도,

지난 2년간 내가 가장 열심히 했던 것은 

운동과 영어 공부였어요.


영어공부와 운동은 이직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어요.

그러나 모든 면에서의 꾸준함을 유지하려고 했던 

시도(trial)이 쌓이고 쌓여서 

부족한 내가 이직을 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싱거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쓰고 보니, 내가 무슨

진짜 엄청난 회사에 취직한 것 마냥 쓴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좋은 곳은 많아요. 

다만, 사회생활을 이것저것 조금씩 해본 나의 입장에서

그나마 내가 잘 일할 수 있는, 

내 전공과 연구경력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직장이라는 점에서 지금 이 순간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건투를 빕니다.


Good luck to all of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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