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문에 이 집을 샀다고요???
처음 집을 살 때의 일입니다.
처음 집을 살 때만큼 설렐 때가 있을까요?
가난하게 시작해서 우여곡절 끝에 처음으로 집을 사러 돌아다니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서는 끊임 없는 걱정이 몰려왔습니다.
이렇게 대출을 많이 받고 집을 사도 될까?
나중에 대출을 못 갚으면 어떻게 하지?
지금이라도 전세를 알아볼까?
매일 매일 새로운 걱정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렇게 걱정을 하다보니, 의외로 집 자체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더군요.
내가 이 동에서 살 것인지 저 동에서 살 것인지가,
앞으로의 나의 발자국 수를 결정하고,
또 출근시간에 걸릴 시간을 결정하고,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덜 위험한지가 결정합니다.
많은 생각을 해야 마땅하지만,
막상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이 모든 요소를 어떻게 고려해야 할지
잘 감이 오지 않더군요.
더군다나 저는 서울에서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었어요.
부동산을 통해서 아파트를 알아보았을 때,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수리가 조금 덜 된 11층 집(층수 기억 가물가물합니다. 대충 저 정도 층이었어요),
그럭저럭 살만한 24층 집,
24층짜리 집이 1-2천만원정도 비쌌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라면 무슨 집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자 여기서 하나의 힌트가 더 들어갑니다.
11층짜리 집에 들어갔을 때,
작은 개가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적이라도 쳐들어온 것처럼 아주 죽을 듯 짖어댔습니다.
우리는 집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24층 집에 갔습니다.
무엇보다 24층 집에서는 '전망'이 끝내줬습니다.
거짓말 좀 보태서 서울시내가 다 보인다고 느껴지더군요.
여러분이라면 어떤 집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는 24층 집을 선택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전망이 없는 좁은 집에서 살았던 서러움을 잊고자,
또 수리된 집으로 들어가서 깔끔하게 새 삶을 시작해보겠다고 생각한 거죠.
11층에 갔을 때 개가 우리를 보고 짖었다는 것도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좀 느낌이 좋지 않았죠.
벌써 5년이 지났네요.
이제 우리 가족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 층이라도 낮은 곳에서 살자"
24층, 아주 전망이 좋지요.
출퇴근 시간에 이 전망 좋은 층에서 집으로 내려가려면
엘레베이터를 타고 가야 합니다.
엘레베이터 한 번 놓치면 최소 5분 넘게 기다리게 되지요.
아!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군요.
제가 음주를 하고 대리운전으로 집 앞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집에 올라가려고 하는데 엘레베이터가 고장이라고 하더군요.
도저히 24층을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저는 그 날 차 조수석에서 잤습니다.
가끔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11층에 갔을 때, 그 개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우리가 '개'라는, 살면서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변수 때문에 선택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가끔 부끄럽습니다.
공부를 오래 했지만,
유의미한 변수와 무의미한 변수를 구분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선택이든 선택을 할 때 이런 점을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것이 내 선택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
나는 사실 전망보다 엘레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중요한 사람이고,
지금 짖는 개는 우리가 이사오면 짖지 못할 녀석이죠.
다시 그 때로 돌아가면 오직 '나'와 우리 가족의 편의성이라는 가치만 놓고
다시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후회가 덜하는 선택을 하기 위해
중요한 선택을 할 때는 '나'로 감각을 집중합니다.
나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있을 수록 나에게 영향을 덜 미치는 것들이죠.
그 개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