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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Dec 12. 2020

당신 입맛이 까다로우세요?

비건에게 이런 말을 하면 실례일까?  

얼마 전 어떤 유튜브에서 영어 학습자가

화상영어를 하면서 이런 예문을 선생님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들은 적 있다.

Are you a picky eater?
당신은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입니까?

상대방은 영국사람이었는데, 당황한 듯 했다.

그 전 이야기하던 맥락과 아무런 관련이 없이 갑자기 이렇게 물어봤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네. 사실은 저는 비건이랍니다. 동물성 식품(animal-based food)를 먹지 않으니 엄청 까다로운 사람인 셈이죠.

비건임을 밝힐 때, 나는 그냥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내가 그런 사실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지 않을 때

누가 나에게 "당신은 입맛이 까다롭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약간 당혹스러울 것 같았다.

상대가 나를 유심히 보면서 내가 무엇을 먹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위 질문자는 영어 초심자였고,

자신이 하는 말이 얼마나 민감한 질문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말이라고 이해한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가 영어 원어민이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무례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도 그런가보다 하는

관용성이 존재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렇다고 상대가 "왜 그런 질문을 저에게 던지시나요?"라고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하여간 나는 싫은 티를 내지 않고 답변을 해주는 영국 선생님이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한국에서

내가 좀 놀라는 일은,

의외로 내가 밝히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내 식성을 대신 말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나랑 가까운 사람일수록, "비건"이라는 단어를 써서 내 식성을 표현한다.

이 분은 비건이시거든요. 그래서 고기나 생선을 안 드세요.

물론 이런 말씀을 하는 분들은 나랑 나름대로 친한 분들이기 때문에

편하게 느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좀 나쁘게 표현하면,

식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를 뺐긴 셈이다.

그리고 갖가지 이야기와 질문들이 쏟아진다.

그 다음 만나는 질문은 이거다.

몸에서 안 받는 겁니까, 아니면 어떤 신념 때문이십니까?

이 질문도 좀 이상하게(weird)하게 느껴진다.

고기를 신체적으로 잘 먹지 못하는 체질인지 궁금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음 질문이다.

신념(?), belief?

내가 이 단어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나?

사람은 신념 때문에 밥을 먹지는 않는다. 배고프니까 먹는다.

아이들이 돈까스를 마늘짱아찌보다 더 잘 먹는 이유는  돈까스가 더 맛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호의 문제다.

내가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이유를 일단 한가지로 정리하기가 조금 애매하다.

나는 여전히 내가 비건을 하는 것에 대해 매일 생각한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닌가? 라는 질문에도 답을 해야 한다.

채식주의자가 아니고 비건이 되었으니, 그에 대한 답도 있어야 한다  

이 이야기들은 '신념'이 아니라 '논리'의 문제이다.

차라리 "어떤 이유 때문에 비건이 되셨어요?"라고 물어봤으면 훨씬 답하기 수월했을 것이다.

그 때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되기 때문이다.

상대가 '신념'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순간, 나는 그 단어를 정정해준다.

"신념이 아니라 생각이 바뀌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신념'이란 단어를 꺼내는 사람들은 주로 많이 배운 사람들이다.

나를 배려해준다는 의미에서 '신념'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고민중이다.

비건을 하면서도, 이런 질문이 항상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과연 진정한 비건은 어디까지인가?

과연 내 비건 생활이 대량 생산을 하는 동물 소비 시스템에 약간의 영향이라도 줄 수 있을까?

나는 채식주의와 다른 사람인가?

굳이 이것까지 먹지 않을 필요는 있을까?

동물을 사육해서 기르는 것과 과수원에서 과일을 기르는 것은 또 얼마나 그렇게 다른가?

식물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가?


배운 사람일 수록 이와 같은 논제에 대해서 너무나 섣불리 자신의 상식을 이야기한다.

그 중에는 물론 틀린 부분이 많다.

나처럼 생활해보지 않으면 알기 힘든 것들이다.

한국에서 고3을 겪어보지 않으면, 미국사람들이 한국 고등학생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달까? .


한 외국인은 우리나라 아이들이 놀라운 점 중 하나가 자기가 싫어하는 반찬도 먹는다는 것이라고 어떤 유튜브에서 말했다  


나는 그가 놀라워하는게 더 놀라웠다. “당연히 먹여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나조차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건을 하는 나 조차도,

편식은 나쁘다는 생각은 결국 다양하게 먹어야 한다는 폭력의 논리 안에 있는 걸 들킨 것 같았다  


나는 먹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상대를 억지로 바꾸려는 노력이 얼마나 헛된지 알게 때문이다.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섣불리 사람을 바꾸려 했다가 되려 인심만 잃는다.

지금 나는 주로 내 건강과 식생활과 내 생각에 관심을 가질 뿐이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기호'와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묻는가 는 여전히 중요하다.

당신은 까다로운 식성을 가졌습니까?
당신이 비건이 된 것은 신념 때문입니까?

보다는

내 주변에선 비건을 보기 힘들어서 당신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혹시 비건이 되신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으세요?

비건을 실천하면서(나는 비건이 된다는 말보다 비건을 실천하다는 표현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의 질문방식을 관찰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 역시 비건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경험해보지 못했을 일들이다.


덕분에 상대의 의사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를 더 잘 느끼게 되고 반성도 하게 된다. 나는 상대도 의지와 선호와 기호가 있다는 걸 가끔 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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