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철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지도 벌써 일년 하고도 몇 달이 흘렀다. 사실 그가 살아있을 때에도, 몇 년 정도는 그의 소식을 접하지 않았어도 그럭저럭 살만 했다. 그 안에는 '어딘가에서 열심히 음악을 하고 있겠지', 혹은 '나중에 멋진 작품을 들고 우리를 찾아와 주겠지'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자의 특권이다.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 이상, 우리는 누군가를 살아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어쩔 수 없이 그의 모든 것을 복습하게 되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와 그와의 관계를 계속 다시 생각했다. 신해철을 단 한번도 만난 적도, 심지어 그의 실물을 본 적도 없지만, 그는 책으로, 가사로, 토론으로, 그리고 그의 인생 그 자체로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를 같이 살았던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다.
신해철의 음악 세계를 뭐라고 요약할 수 있을까?
록? 부족하다. 실험적? 어떤 곡은 그렇다. 그러나 신해철 음악 전반에 흐르는 느낌이라고 요약하기는 어렵다. <도시인>에서 그는 누구보다 현대적이었고, TV에 출연하지 않았다 뿐이지 대중적이었다. <노 땐스> 음반에서 볼 수 있듯이, 락이나 메탈에 올인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유작이 되어버린 정규 6집 앨범 <Reboot myself>의 타이틀인 <A.D.D.A>(일명, '아따')에서 보여주듯이, 그의 음악은 다채롭지만, 대중의 취향을 저격하지는 못 하는 쪽이었다.
신해철은 가사다.
신해철의 노래는 가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신해철의 음악은 그 자체로 보았을 때는, 물론 음악적 완성도를 논외로 하고, 대중의 심장을 파고들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았다. 대중의 심장을 파고드는 에너지는 이미 대학가요제의 대상곡인 <그대에게>에서 다 써버렸는지도 모른다. 박진영이 가장 멋 모를 때 만들었던, <날 떠나지마>라는 노래가 대중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것과도 비슷한 이치다. 아티스트는 자아가 생길 수록 대중의 심장과는 멀어지게 된다. 대중은 자신을 위해서 올인하지 않는 아티스트에게는 쉬이 마음을 주지 않는 독특한 존재들이다. 자의식을 가지고 대중과 소통하겠다는 시도는 언제나 반 정도만 가능한 이상이다. 신해철은 물론 후자였다.
철학과를 나온 후광이 있어서인지, 타고난 언어적 감수성 때문인지, 아니면 지독한 노력의 결과인지, 그건 모르겠지만, 당시 신해철의 가사는 독보적이었다. 나름대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전체로 이어놓고 보면 무슨 말인지 잘 알 수 없는 서태지의 가사와는 또 달랐고, 여타 95% 이상을 차지하는 사랑타령 노래들과도 물론 달랐다. 넥스트의 대중적 히트곡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이 <날아라, 병아리>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은 사봤던, 머리가 약간 갈색인 아픈 병아리들, 얼마 못가서 병아리가 죽는 경험, 거기에서 느끼는 독특한 감정들이 <날아라, 병아리> 안에 담겨 있다. 물론 지금 돌아보면 엄청난 문학성을 가진 작품이라거나 한 것은 아니다. 좀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가사의 문학적 완성도라는 관점을 들이댈 수 있다면, 신해철보다는 이적이 조금 더 높다고도 보여진다.
다만 당시 대중들은 뻔한 사랑 가사에 질려 있었다. 신해철의 <도시인>, <날아라 병아리> 등의 노래는 한국 사랑 노래에 질린 대중들의 가려운 속을 긁어주었다. 신해철이 우리 곁을 떠난 이후, 나는 의외로 사람들이 이 곡에 주목하지 않는 것에 주목했다. 아마 신해철과 넥스트의 노래 모두를 포함해서 내가 가장 여러번 재생해서 들은 노래일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로 시작하는 <아버지와 나>
이 노래에 대한 글을 쓰려다가 앞의 수다가 길어졌다. 업무시간이 임박했으므로 본격적인 이야기는 다음에 또 쓰기로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akCAjeOyS5U
아주 오래 전,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내 키가 그보다 커진 것을 발견한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살아나갈 길은
강자가 되는 것뿐이라고 그는 얘기했다.
난, 창공을 나는 새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내 두 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내 날개 밑으로
스치는 바람 사이로 세상을 보리라 맹세했다.
내 남자로서의 생의 시작은 내 턱 밑의 수염이 나면서가 아니라
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 받고, 돈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을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비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그의 모습을 닮아 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두렵다.
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섭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선 안된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에야
이루어질까, 오늘밤 나는 몇 년만에 골목길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