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오늘도
나는 사람에 대해 약간 홀릭하는 경향이 있다. 유시민처럼 글쓰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말을 잘 하고 싶어서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팟캐스트로 빠지지 않고 거의 들었다.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듣고 나도 심지어 팟캐스트를 했었다(무려 김영하님이 언급까지 해주셨다. 별로 좋은 뉘앙스는 아니었지만...ㅎ). 김경호의 고음을 따라하고 싶었고, 박효신의 감수성도 따라하고 싶었다. 임재범의 허스키한 보이스와 싸이의 흥도 가지고 싶었다. 결국 연예인 피는 없었는지 실력은 그닥....(쓰다 보니 노래방 가고 싶네).
외국 글쟁이들도 제법 동경한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를 읽고, "이 책은 나도 쓸 수도 있겠는데?"란 생각을 했었다(너무 욕하지 마시라). 이런 류의 문명사와 관련된 책을 몇 권 정독하면 사실 나오는 얘기가 비슷 비슷하다. 어쨌든 이런 책을 읽어둔 덕에, 지난 번 대중 특강 했을 때, 아메리카 대륙에 사람들이 정착하게 된 이야기를 실감나게 할 수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와 문명의 붕괴, 총균쇠(제럴드 다이아몬드) 같은 책은 사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글빨, 그리고 기획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 책이고, 학문과는 좀 다르다. 스티븐 핑커 빈서판(blank plate)과 "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는 류의 책을 세상에 한 권 쯤 남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탐닉했는데, 이 양반처럼 재미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그런데 또 이런 느낌 아시려나? 책을 읽을 수록 외로워진다. 나는 지식이 점점 쌓여가는데, 책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른은 잘 없다. 아주 가끔 30대 여성분들 중 책 이야기를 재밌게 나눈 경우는 있다. 그런데 좀 오래 이야기를 나누기가 그렇다. 나보다 윗 세대의 남성들은 내가 책 이야기 하는 걸 싫어한다. 책 이야기를 하면 자신이 3-40년 전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해서 내가 말을 못하게 막아버린다. ㅎㅎㅎ
외로워질 바에야 책을 읽지 말자고 생각한 지 조금 오래 되었다.
그래서 책을 가급적 안 사려고 하는데, 주변 분들이 좋은 책을 많이 내신다. 그래서 그런 책은 산다. 읽는다. 주변 분들이 좋은 분들이 많아서 그런 분들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제법 독서량이 채워진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책에 쓴 이야기를 기억했다가 꼭 해준다. 신기한 건, 또 그것도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아니 나는, 동경하는 대상을 찾고, 그 동경하는 대상과 닮음으로써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동시에 더 나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서 독서나 글쓰기 등을 한다. 그런 모든 행동들이 나를 아름답게 만든다기 보단, 사회에서 더 괴짜로 만들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요즘 누가 긴 글을 써...?
그냥 많은 사람이 읽지 않아도 쓴다. 그게 나다.
p.s. 이 글은 저자의 페이스북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