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은 아닙니다
요즘 TV 프로그램에서 자존감이 높으면 남이 한 말에 상처 안 받는다는 식의 말을 몇 번 들었다. 뭐 그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 감정은 아니니 돌려주라는.. 식의? 부처님도 예전에 하셨던 말이다.
최근 언짢은 대화를 했던 일이 있었다. 이런 대화의 시작은 나보다 최소 5살 이상 나이 많은 남성이다.
어떤 사람이 나랑 무슨 일을 하는데, 어떤 부분이 맘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나는 결정하는 위치에 있었는데, 그 부분을 3-4번
별다른 근거도 없이,
반복해서(근거가 있었으면 건강한 토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문제 제기를 했다. "이러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결정을 했다고 공표 했는데도 자꾸 그러니 나도 슬슬 감정이 생겼다. 그 분이 그 주제에 대해 특별히 무슨 연구를 해온 것도 아니고, "이런 것까지 해서 문제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 주 논점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며... "벌써 3-4번째 같은 얘기를 드릴 수 밖에 없어서 유감입니다"라고 말했더니, 뜨끔했는지, 본인은 다 나를 위해서 한 말이라며 미안하다고, 이 얘긴 그만 하자고 말했다. 겉으로 보기엔 아주 완벽한 사과처럼 보였다.
그 분은 제법 나이도 있고, 사회적으로 잘 나가시는 분이다. 첨에는 그냥 나에게 사과를 했으니 마음 속으로 넘어가자 생각했는데, 돌이킬수록 무례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1. 나를 위해? 나를 위해서라면 내가 결정한 방침을 충분히 듣고 이해하려고 하는게 먼저였어야 하는데, 그 분은 그냥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2. 죄송합니다. 이 얘기 그만 합시다. 이것도 엄청 무례해 보였다. 만약 내가 좀 기분이 상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면, 나라면 이렇게 물어 봤을 것이다. "혹시 제가 조금 언짢게 해드렸나요? 어떤 부분이 불편하셨는지요?"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 내가 충분히 말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줬어야 했다. "이 얘기 그만합시다."는 뭔가 스스로 잘못한 사람이 보이는 태도는 아닌 것 같았다.
1. 2.를 종합하면, 그 분의 말씀은 잘못했다, 사과한다, 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들렸다. 결국 그 메시지의 핵심은, "난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네가 언짢은 내색을 해서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걸 잘 안다. 그리고 그 사안이든 무슨 사안이든 그 사람과 더 깊이 얘기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문제는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분들, 특히 사회적으로 좀 위치가 있어 보이는 분들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면 상당히 많은 경우, 저런 식으로 결론이 난다는 점이다.
목소리톤은 예의 바르지만 속에는 가시 돋친 게 느껴진다. 나에게 이 정도로 한다면, 나보다 어리거나 약자인 사람에겐 얼마나 더 함부로 대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좀 결이 다른 얘기지만, 살쪘다, 흰머리가 는 것 같다 등등 친해지려고 한다는 미명 아래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어른도 10년 전에 비해서 줄지 않는다.
듣고 기분 나빠할 사람들이 자존감을 키워서 그걸 극복하기 전에, 저런 말을 안 하는 게 먼저다. 말하기 전에 1초라도 생각하면 저런 말 안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게 위로 올라갈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말 실수해도 짚어주는 사람이 없어진다. 고로 더 심해진다. 나는 그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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