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fessor is Out 커뮤니티의 글을 읽고
최근 모 교수의 추천으로 The Professor is Out 이라는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여기는 학계를 떠나고자 하는, 혹은 학계를 이미 떠났거나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정보가 있는 곳이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학계를 떠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한국처럼 석박사가 흔한 곳에서는 사실 학계(Academia)라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 다소 모호하게 느껴진다. 학계란, 연구자로서 석박사학위를 마치고 소위 대학교수, 특히 그 중에서도 정년 보장(tenure track)을 따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집단이라 정의하자.
잘 알다시피, 정년보장이 되는 교수 자리는 제한되어 있다. 1년이면 약 10만명의 석박사가 시장으로 쏟아져 나온다. 그 중에서 교수가 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 교수는 커녕, 정규직 연구직으로 들어가는 것 역시 만만찮은 확률이다.
1년 10만명이라는 숫자가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데, 그 중 박사학위 졸업자는 1만6천명이다. 박사학위 졸업자라고 하면 석사 포함하여 최소 5년 대학에 남아서 공부를 했다는 의미라고 이해할 수 있다. 전업 대학원생이라면 보통 석사포함 6-10년의 세월을 대학에 바친다.
이 정도 고생을 해서 뭔가를 이뤄냈으면, 사회에 나가면 "어서 오십시오"해야 할 것 같지만, 박사학위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고(즉 매년 1만명 넘는 박사가 쏟아져 나오고),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는 줄어든다. 게다가 학령인구의 급감으로 현재 있는 교수들도 나중에 어떻게 될 지 모른다. 해고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미국에서는 그냥 20% 교수를 내보내는 일은 드물지 않은 일이라 한다.
하이브레인넷(hibrain.net)에서 석박사를 위한 공채를 보는 것만으로도 석박사 채용이 얼마나 비대칭적인지 알 수 있다. 나의 경우 전공: 지리학으로 선택하여 공채를 검색하면, 티오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7년을 대학원에서 지리학을 공부했는데 세상에는 '지리학 박사'만을 원하는 티오를 내주지 않는다. 가뭄에 콩나듯 한번씩 나오는 대학 교수 공채가 그나마 전부이다. 예를 들어 지리학도, 문화지리, 경제지리, 지역개발 이런 학문 세부분과가 있다면, 예를 들어, 본인이 '문화지리' 전공자라면, 일년에 한 두번이나 나올까 말까 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그 문화지리 전공자 채용에는 전국 모든 대학원의 문화지리 전공자들과 해외 유수 대학에서 문화지리 전공하고 돌아온 박사도 그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한다.
전국에 100명의 문화지리 전공자가 있고, 그 해 2명의 티오가 났다고 생각해보자. 2명은 그간 공부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보상은 받는 셈이다. 그런데 나머지 98명은?
학계 고용시장은 매수자 우위시장(seller market)이다. 고용 매수자가 갑이다. 고용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항상 줄을 서 있고, 고용해줄 사람들은 마음껏 갑질해가면서 사람을 골라서 뽑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역시 해외에서도 학계를 떠나는 것은 많은 사람의 지상과제이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한 때 학문에 대한 열정을 품고 대학원에 들어왔다. 공부하면서 나름대로의 보람도 느꼈을 테고, 또 석박사 학위를 마무리할 수 있을 만큼의 인내심과 성실성을 갖췄다. 학교 다닐 때도, 고용이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주고 받지만, 나중에 실력을 갖추면 취직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닌다. 그러다 보면 주변에 교수가 되는 사람도 하나 둘 씩 보이고, 저 사람처럼 되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대학의 사업단에서 내는 공고 보면, 시키는 일은 어마어마한 과업을 시키는데 계약기간은 올해 3월부터 12월31일까지, 일 잘하면 연장계약 가능하다는 식의 공고가 잘 올라온다. 학위자를 뽑으면서 1년도 안되는 알바생 뽑는 것처럼 소위 '교수'를 뽑는 것이다(주의하자, 소위 '교수'와 진짜 교수는 다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교수는 정년보장과 상관이 없으므로, 말하자면 교수 알바라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교수는 나갔다"(The Professor is Out)는 커뮤니티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만도 하다. 사연을 읽어보면 안타깝다. 다들 10년 가까이 연구실 생활을 하고, 나름대로 학문에 대한 자부심을 갖춘 사람들이 결국 떠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배우는 것이 많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이 직장생활에 자양분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주제를 접했을 때, 그 주제에 대해서 글을 많이 읽고, 충분히 생각하며, 엑셀과 R등을 이용해서 통계처리도 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번역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학위자들은 지도교수의 졸업승인을 받아냈다(we survived the supervisor).
상황은 이렇다. 간단히 요약하면, 10년 공부해도 학계에 발도 붙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내가 비관적이라서가 아니라, 숫자가 증명해준다. 1년에 쏟아지는 박사학위자 1만6천명인데 교수와 정규직 연구원 티오는? 낙타가 바늘구멍 뚫는 그 정규직 연구원과 교수가 되지 못했다 하여 자존심 상할 이유도 없다. 사실 이건 자존심이 아니라 생계와 생존의 문제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학원 내에서는 불편한 진실을 함부로 공론화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당신이 대학원생이라면, 교수님에게 가서 물어보라.
여기에서 공부해서 교수님처럼 정규 교수가 될 확률이 어느 정도나 될까요?
몇가지 입장에 따른 실용적인 팁을 공유하고 이, 약간은 우울해보이지만, 꼭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대학원생이라면, 대학원 공부에 최선을 다하는 이외에 통계와 프로그래밍을 배워서 학계를 떠날 대비를 언제든 해야 한다. 영어점수를 상위권으로 유지해서 내일이라도 기업에 원서를 쓸 수 있어야 한다. 외모도 적당히 가꿔서 면접에 대비해야 한다. 플랜B가 필요하다.
대학원을 마치고 대학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다면, 당연히 학계 밖의 일을 전방위적으로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가장 조건이 좋은 곳으로 간다.
여기서 "존버 전략이 낫지 않나요?"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나도 존버해서 성공한 사람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훨씬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은 존버하다 잊혀졌다. 존버하지 말고, 살 길을 찾아야 한다. 학위자의 자존심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 자립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학계(academia)는 우리 사회를 위해 지식을 생산하는 제도화된 공간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학계 밖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지식들을 생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 로직으로 주식을 매매하는 퀀트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이것은 제도화된 석박사 학위자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프로그램을 짜서 수익성 높은 로직을 만들 수만 있으면 퀀트가 될 수 있다. 수익률이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나은 로직을 짜기 위해서 학교 밖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또 실행한다. 창조적 에너지는 그 일을 절실하게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학계를 떠난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할 이유도 없고, 당신이 가진 창조적 에너지가 고갈될 두려움을 가질 필요도 없다. 세상은 여전히 당신의 창조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