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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Aug 22. 2020

석사 논문 쓴 사람들에게 절대 해서는 안되는 말

석사논문을 쓴 모든 사람들에게 바칩니다.  

때는 바야흐로 2009년 8월, 딱 11년전이다.

석사논문을 마쳤을 때다.

사람들이 하나 같이 약속이나 한듯 이렇게 말을 했다.

석사논문은 아무도 안 읽어.
석사논문은 지도교수와 너만 읽었어.
석사논문은 라면 받침대로 쓰면 돼.


지금부터 이 말을 왜 하면 안 되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립대 기준으로 석사를 받으려면 학비만 최소한 2000만원 가까이 든다.

좀 심하게 말하면,

남들은 돈을 벌때 2000만원 들여 공부해 얻은 결과물이

이 책 한 권이다.

그런데, 뭐?
라면 받침대로?
지도교수와 너 밖에 안 읽어?

이 말만 들어도 당신이 연구에 ㅇ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단 심사위원이 셋이기 때문에 지도교수 말고 두 명이 더 읽는다.)


석사 학위를 이제 갓 받은 사람들이 당신 앞에서 화내지 않을 수 있지만,

속으로 천불이 날 것이다.

더 화나는 것은,

나름 석박사를 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다.


선배가 그런 말을 해서

"선배,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라고

당시에 말하지 못한 것이 아직도 후회된다.

아오.. 진짜 선배가 뭐라고. 그런 말을 듣고 참았어야 하나.


내 석사논문의 학술지 버젼 논문 제목은  

'국제유가의 변동이 강남의 아파트가격에 미치는 영향'
'''국제유가는 세계경기를 대표하는 거시경제지표이며, 한국경제의 향방을 예측할 때도 사용되는 중요한 변수이다.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링크를 타고 가세요)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이 논문은 우리가 아는 시간 범위 내에서

학기 중에 최초로 "재심사"를 받은 논문이다.

당시 교수님들은 도저히

현재 상태로 내 논문을 통과시키지 못하겠으니,

심사를 학기 중에 다시 하겠다고 결정했다.


예전 글에서 밝힌 바 있듯, 당시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떠난지 얼마 되지 않을 때라서 마음이 참 힘들 때였다.

다른 사람들의 논문은 쉽게 통과되는 것 같은데


내 논문만 재심사였다.

내 논문에 대해서 가장 공격적이었던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각난다. 당시엔 그 분 말씀이 좋게 들리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 하나 다 주옥 같이 맞는 말씀이다.

김군의 논문 제목만 보면, 아마 이 논문이 다 진실로 밝혀진다면, 지금까지 우리 학과에서 나온 논문 중 가장 대단한 논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밝히지 못할 내용을 적어놓아서는 안된다.


결국 이 논문은 치기 어린 녀석이 설 익은 논문을 쓴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우역곡절 끝에 논문을 다 쓰고 나니,

인쇄하자,

선배들이 주루룩 나타나서,

석사논문 아무도 안봐.

이렇게 말하는데,

서운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뒤끝이 있는 사람이다.

그 선배는 그 뒤로 얼굴을 보지 않는다.

다른 선배라고 해서 대단히 얼굴을 보고 살지도 않지만.


면접 때 석사논문에 대해 물어보면 합격이다.

박사를 받아도,

"우리 박사님 어서 오십시오." 하는 곳은 없다.

취직을 하려면 일반 취준생과 똑같이 자소설을 써야 하고,

면접을 봐야 한다.

나이 먹었다고,

비수처럼 꽂히는 질문들에 상처받는 것이 덜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좋은 질문도 가끔 있다.

합격한 면접장에서 꼭 나왔던 질문이 있었다.

이 질문을 질문자가 하면 그 면접은 합격이었다. 바로 이 질문이었다.

 

국제유가와 부동산이 무슨 관계에요? 무슨 방법을 썼어요?


나는 간단히 이야기해준다.

벡터자기회귀 VAR 이라는 시계열 방법을 썼고, 부동산 가격을 추론하는 여러 거시경제 변수 중에서 이자율, 환율, 국제유가 등 변수를 써서 국내 아파트 가격격차를 설명하는 논문을 썼다고.


그러면 면접관들의 반응은,

"저런 미친 놈이 있나?'
"고놈 참 특이한 놈일세."


그리고 이 질문이 면접에 나오면 합격이었다.

이 질문은 그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다가 '석사논문'까지 눈을 돌렸기 때문에 나온 질문이다.

내 석사논문이 잘 썼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석사논문에 그렇게 황당한(본인들이 생각하기에)

주장을 해놨기 때문에 질문하는 것이고 나는 성실하게 논문을 썼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답할 수 있다.


덕분에 내가 거시경제변수들을

VAR 방법론을 써서 시계열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점을 자랑할 수 있다.


지리학과에서 아무도 알려주지도 않는 방법론을 가져와서

저 멀리 경제학 전공하신 분에게 물어물어 프로그램을 구해다가

꾸역꾸역 변수를 입력하고,

수많은 논문을 보면서 해석하는 방법을 익히고,

지대지불곡선을 방정식 풀어서 지대격차가 줄어드는 방식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평생 책을 읽어오신 우리 아버지가

내 논문을 읽다가,

몇 차례 읽기를 시도하다가

도저히 어려워서 반도 못 읽고 포기했다고 한다.

다 한글로 쓰여져 있는데...


그 때 나는 자부심을 느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 때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공부를 열심히 했구나.

지금도 나보고,

"야 너 석사논문 참 잘썼다"라고

칭찬해주는 사람 단 하나도 없지만,

그냥 그 때 나는 열심히 했구나,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시간이 십 몇년 지나도,

어떤 면접관은 그걸 안다는 거다.

이 녀석이 십몇년 전에 "국제유가와 아파트값의 관계"를

시계열적으로 검증했다고 써놓고,

그게 모 대학의 석사논문 장벽을 통과했다는 것이

이 녀석이 얼마나 고군분투해야 가능한지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거다.

지구상 어디엔가 있다.


나는 면접관님을 정확히 누군지 알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 직접 찾아가서,

"그 때 그걸 알아봐주시고, 그렇게 질문해주셔서

참으로 고마웠습니다."라고

말할 생각이다.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하나다.

누가 자랑스럽게 그런 말을 했다고 당당하게 써놓은 것이다.

석사논문 마칠 때 선배들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내가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생각이 났다.


같이 공부하는 처지였던, 지금은 부인이 된 여자친구는 당시

남들은 모르지만 당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라면 받침대로 쓰면 되겠네"라고 말을 했다면,

아마 지금 같이 살지 않았을 것 같다.


속으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은 논문에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 콤플렉스를 저런 방식으로 푸는구나. 못났다."


내 석사논문이 빛을 보지 못한 이유는 딱 하나이다.

그 뒤로 내가 석사논문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사논문을 내가 더 사랑했다면,

VAR 방법론은 더욱 정교해졌을 것이고,

그 뒤로 매번 나오는 국제유가의 비대칭성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전문가가 되었을 것이고,

강남 아파트 가격의 지역격차를 설명하는 이론가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석사 논문을 마치고 난 뒤,

너무 바빴고, 더 이상 석사 논문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만약 내가 석사 논문이 나온 뒤라도 더 애정을 쏟아부었으면,

나중에 국제학술지에도 충분히 실을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공부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석사학위 마친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 된다.

참 대단한 일을 했구나, 어떻게 이렇게 공부를 많이 했니?


당신이 공부 좀 해서, 공부 바닥을 좀 안다 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이거 절대 썩히지 말고 꼭 학술지에 발표하고, 학회 가서 발표해라.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당신이 이 논문을 썼다는 것을 모른다.



석사논문을 쓴 모든 사람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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