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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Mar 23. 2020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표현은 과연 맞을까?

누구로부터(from what?)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하여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가 아닌 물리적 거리두기(physical distancing)이라고 표현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빠르게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표현이 쓰이는 것 같다. 


둘 중 과연 무엇이 더 맞는 표현일까?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회적으로 고립되라는 의미를 풍기므로 우리는 '물리적으로 떨어지되 사회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물리적 거리두기'가 더 옳은 표현일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이 글에서는 내가 '사회적 거리두기'가 '물리적 거리두기'보다 우리가 취해야 할 조치를 더 잘 설명한다고 주장하고, 그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만,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언어 사용을 다시 바꾸자고 주장함으로써 혼돈을 가중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논의를 함으로써 "사회적 거리두기"와 "물리적 거리두기" 안에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거리에 대한 오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리적 거리라는 표현은 "거리"(distance)에 대한 오해라는 생각이다. 물론 2차적 3차적 의미에서 거리가 심리적/정서적 거리(psychological distance)를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구나 알겠지만, 원래 거리는 말 그대로 두 지점 사이에 공간을 뜻한다.  


거리: 원래 뜻은 물리적 거리다. 물리적 거리는 동어반복(tautology)

거리란 "심리적"이라는 단어를 붙여주지 않는 경우 순수하게 두 물체가 떨어진 정도를 수치화한 것을 의미한다.


영어로 distance의 뜻

 https://dictionary.cambridge.org/ko/%EC%82%AC%EC%A0%84/%EC%98%81%EC%96%B4/distance

distance

the amount of space between two places: 두 장소 사이에 공간

예문)

What's the distance between Madrid and Barcelona?

바로셀로나와 마드리드의 거리가 얼마니?

He travels quite a distance to work every day.

그는 공부하러 매일 멀리 간다. 

Does she live within walking distance of her parents?

그녀는 부모님과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안에 살고 있니? 


(주의)

다만 distance가 동사로 쓰일 경우 '피하다'라는 뜻이 들어있다. 이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이라고 할 때, "사람들을 피하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말하자면, 사람들과 '교류'를 끊으라는 말로 오해될 소지가 생긴다. 그러나 그럴 소지는 적어보이긴 한다.


동사로서 distance의 뜻은 위 사전에 아래와 같이 정의된다. 

If you distance yourself from something, you try to become less involved or connected with it


"사람 간의 심리적 친밀성" 의미는 없다. 

거리(distance)안에는 이미 '물리적'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심리적 거리(psychological distance)라는  개념은 엄밀히 말하면 은유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사람들에게 널리 인지되고 쓰이고 있기 때문에 "너와 나 사이에 거리가 있다"고 하면 "심리적으로 냉랭하게 느낀다"는 것을 의미할 가능성도 없진 않다. 그래서 언어가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논리학의 모든 명제는 동어반복으로 끝난다고까지 주장했던 비트겐슈타인이 살아 돌아왔다면, 아마도 "물리적 거리두기"는 동어반복이라고 주장했을 것이 분명하다. 누군가 '사회적 거리두기'는 은유(metaphor)일 뿐이라고 주장한다면, '물리적 거리두기'는 동어반복이다.


사회: 사람을 뜻한다. 

여기서 "사회"를 또 한번 생각해보자.

예를 들며 영화 인싸이드 아웃(Inside-out)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This is Disgust. 얘는 까칠이에요.
She basically keeps Riley from being poison, physically and socially.  라일리를 해로운 것들로부터 지켜주죠.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당혹스러웠다. 왜냐하면 이것을 한국어로 번역하기가 엄청나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여기서 물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physically and socially)가 어떻게 번역되어 있을지 정말 궁금했다. 직역한다면, "얘는 까칠이에요. 기본적으로 얘는 라일리가 사회적으로 물리적으로 중독되는 것으로부터 라일리를 보호해주죠." 엄청나게 길고 복잡하며, 감히 어른들도 한번에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은 문장이었다. 


다음 번역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번역의 결과는 아래와 같다. 

physically -> 음식

socially -> 사람

인싸이드 아웃의 한 장면

나의 경우, 소셜(social)이라는 단어를 보면 자동으로 '사회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데 그것은 사실 "사회"(society)라는 덩어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여러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여기에 사회계약론을 비롯하여 엄청나게 복잡한 사회철학 논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한다. 이 논의는 어디까지나 언어의 기원과 사용에 대한 (terminology) 논의이기 때문). 


사회적 거리두기: 사회적(사람들과) 거리두기(물리적 거리두기)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이라는 말은 이미 그 안에 정의상으로(by definition) 누구와(social: 사람들과) 무엇을 해야 하는지(distancing: 물리적 거리를 둔다)는 것을 완전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단어를 보면서 "나에게 사람들과 냉랭하게 지내라는 의미야?"(By using the term, social distancing, do you mean that I should avoid people?)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라면, "사회적으로 얼마든지 더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거리를 유지하면 된다"(You can connect with other people as close as possible, but should sustain the distance with people.)라고 말하면 될 것 같다. 


동어반복 이외에 물리적 거리두기(physical distancing)를 사용함으로써 얻게 되는 치명적인 단점은 "무엇과"라는 의미가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말할 때, 별다른 이견이 없다면, 우리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라"고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말을 들으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다(동어반복이란 사실은 빼고 말이다). 무엇과 물리적 거리를 두라는 말인가?  


물리적 거리두기는  '무엇으로부터'(from what)를 숨긴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은 우리에게 '사람들과 거리를 두라'는 것을 일러두지만(사람들을 피해라라고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소지도 있지만), '물리적 거리두기'(physical distancing)은 무엇으로부터(from what?)을 숨긴다. 


그래서 영화 컨테이젼에서 올리스 치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센터장(우리로 말하자면 질병관리본부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But right now, our best defense has been social distancing.
그러나 지금부터 우리의 최선의 방어책은 사회적 거리두기입니다. 

https://getyarn.io/yarn-clip/7b82e1fb-0c86-48b9-8333-85a6e3e5e409#Crm6upM-io.copy


사회적으로 더 연결되어야 한다(connect with more people)

누군가 나에게 "코로나19로부터 우리는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지내는 것이 좋은데, 그것은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과 '물리적 거리두기'(physical distancing) 중 무엇이 더 맞나요?"라고 물어봤다면, 나라면 당연히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 적확하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서 WHO가 우려하는 바는 짐작컨대, 이런 것이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더라도, 우리는 더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는 사회로부터 떨어져 고립되어 지내라(isolate yourself from people)라는 메시지로 읽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한국적 맥락에서 "사회생활"이라고 하면, 대체로 사람들이 모이는 행위(gatherings)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표현이 한국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경우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소통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는 행위를 "사회생활"이라고 잘 일컫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라고 해서 소셜미디어를 그만두는 사람은 없다. 

최근 몇 개 소셜미디어를 다니면서, 한국인들 사이에서 코로나19에 관한 이슈는 작은 문제도 정치화되는 반면,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물리적 고립은 오히려 전 지구적 연대를 강화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 소셜미디어에는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코로나19때문에 심심해요. 이럴 때 뭐해야 해요?", "나는 지금 한국의 친구들을 걱정한다. 그들이 안전했으면 좋겠다", "이제 미국도 휴교에 들어갔다.", "출근을 못한다"는 소식들이 올라오고 있다. 정량적 분석을 해봐야겠지만, 물리적으로 멀어질수록 지구적으로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이 글은 이미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표현을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표현 역시 그 의도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표현이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물리적 거리두기"는 동어반복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으며, 무엇으로부터 물리적 거리두기를 해야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보다 나은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참고: contagious는 사람이 사람에게 옮는다, infectious는 사람과 다른 무엇(동물, 식물 등)에게 옮는다라는 표현으로 구분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필자의 주장을 이중적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언어의 기원을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되었든, 물리적 거리두기가 되었든, 그렇게 지칭되어지는 것을 하는 것이다. 즉, 실천이 중요하다. 

https://www.ctvnews.ca/health/coronavirus/why-health-officials-say-physical-distancing-is-a-better-term-than-social-distancing-1.4863344


무엇이 됐든, '거리두기'를 지켜!

이 글을 보면 사실 '사회적 거리두기'냐 '물리적 거리두기'냐 그런 논쟁을 깊이 있게 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보인다. 문제는 젊은 사람들일수록 자신이 건강하다 생각해서 '거리두기'를 지키지 않는다는데 있다. 아마도 '물리적 거리두기'를 통해서 질병관리본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말이 더 맞다"가 아니라 "제발 좀 거리두기를 지켜라"는 의미일 것 같다. 


2020년 3월 23일 현재, 필자가 사는 아파트 근처에도 확진자가 생겼다는 소식이 이미 나왔을만큼, 전염병의 공포는 진짜로 일상을 덮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다 같이 이 문제를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표현을 쓰자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주장은 이런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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