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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Jan 13. 2022

쉽게 글 쓰려는 유혹 떨쳐내기

책을 내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9)

지난 이야기는 석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책을 써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뤘다. 오늘은 집필론으로서 책을 쉽게 쓰려는 유혹을 떨쳐내자는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한다. 

https://brunch.co.kr/@skytreesea/136

먼저 <Do it! 파이썬 생활프로그래밍>(김창현, 2020, 이지스퍼블리싱)의 86페이지 보시겠다. 이 책은 지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가 파이썬 프로그래밍 초보들을 위해서 쓴 책이다. 잘 아시는 것처럼, 지리학은 파이썬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 핫한 언어로써 파이썬은 코딩열풍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프로그램 언어이다. 2014년부터 취미로 파이썬을 공부하던 저자는 나중에 2020년 파이썬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긴장하지 마시라, 이 글은 절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한 글이 아니다. 


내가 처음 파이썬을 처음 배울 때, 책을 몇 권 구매했다. 여러 권을 구매했는데, 그 대부분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설치하는 법, print문 다루는 법, 리스트란 무엇인가, 문자열 다루는 법, 튜블, 딕셔너리, def문, 입출력, 클래스 설정 등... 파이썬 문법이 가장 체계적으로 잘 설명되어 있는 책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이 책이다. 사실 파이썬 문법은 이 책 한 권만 봐도 어느 정도 익힐 수 있다. 지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사실 문법 책은 한 권 정도면 충분하다. 

자, 뚝딱뚝딱. 한 권 다 익혔다. 


아하, 이제 리스트가 뭔지도 알겠고, 함수도 뭔지 알겠어. 클래스가 뭔줄 알아? 파이썬에서 클래스가 상속된다고... 하하하하. 자, 그럼 이제 질문 들어갑니다. 

파이썬으로 뭘 할 거임? 

이 질문에서 나는 막혔다. 물론 가볍게 파이썬을 계산기로 활용할 수 있다. 아래와 같이 idle을 띄워놓고 계산이 필요할 때마다 식을 간단히 입력하면 때로는 엑셀보다 편하다. 그러나 파이썬을 계산기로 사용한다는 것은 러닝머신을 빨래걸이로 이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파이썬은 무궁무진한 라이브러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라이브러리로 할 수 있는 것 역시 거의 무한대라고 볼 수 있다. 

파이썬을 계산기로 활용하기도 괜찮다. 

파이썬 책을 꼭 써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게 있었는데, 그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1) 기존 파이썬 책은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충분히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 

2) 진짜 업무나 연구에 파이썬이 쓸모 있다는 것을 증명하여 보여줄 필요가 있다. 


클래스가 뭔지, 슬라이싱이 뭔지, 정규식이 뭔지, 웬만한 파이썬 입문서를 보면 다 나와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도대체 뭘 어떻게 할 건데? 이 부분에 대한 답은, 적어도 내가 파이썬을 배울 당시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다. 


컴퓨터 관련 책을 보면서 또 하나 드는 생각은, 

책에 나온 명령어대로 입력하면 똑같은 결과값이 안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물론 책에 약간의 오타도 있을 수 있다. 내 책 역시 1쇄 이후 약간의 오타가 발견되어 고치기도 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오타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저자가 의도하지 않게 명령어들에 오류가 있었고, 이 오류의 종류는 정말 다양했다. 이러한 오류는 물론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짚어줘야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데, 책들은 모두 무심하게 이런 오류를 넘어갔다. 그리고 책의 광고문구에는 화려한 선전문구가 나온다. 


파이썬은 쉽습니다. 일주일만에도 다 배울수 있어요. 도전하세요. 


나는 아직도 이런 문구를 보면 화가 치밀어오른다. 물론 리스트 하나 만들어 보여주기는 쉽겠지. 자, 쉽다고 한 사람, 너. 


그럼 파이썬으로 신문기사 크롤러(web crawler) 한 번 만들어봐. 


자, 크롤러를 만들려면 도대체 뭐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구글링에 들어가야 한다. 크롤러를 만들려면 BeautifulSoup, requests 등의 모듈을 임포트 할 줄 알아야 하고, 대상 페이지의 HTML 문서의 구조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어야 하며, p, span, div 등 속성에 대한 지식도 조금은 필요하다. 그 뿐이랴, 이것을 그냥 화면에 출력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파일로 출력하려면 입출력도 알아야 하고, 이 과정에서는 인코딩 방식의 차이 때문에 한글은 깨져서 나오거나 오류메시지를 무한대로 발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좀 친절한 선생님이라면, 이렇게 발생할 수 있는 오류에 대해서 책들은 무심히 지나간다. 그리고 돌아서서 외친다. "파이썬 쉬워요!" "4차 산업시대, 코딩은 필수에요!", "문과생도 코딩으로 취직할 수 있어요!" 


드는 생각은, 그 따위 문구를 만들어낼 시간에 오류 하나라도 더 설명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크롤러 만들다가 했던 실수, 독자들이 빠질 수 있는 잘못된 길을 하나라도 더 짚어내서 독자들이 덜 혼란을 겪게끔 만드는 것이 저자의 역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테스트, 또 테스트, 그리고 캡쳐 또 캡쳐, 설명 또 설명을 달아야 한다. 억겁의 시간을 거쳐 수많은 설명이 쌓이면, 좀 지저분하거나 필요 없는 설명을 지워낸다. 이렇게 해서 꼭 세상에 나와야 할 필요가 있는 설명만 남겨놓는다. 


예를 들어 정규식(regular expression)을 설명한다고 하면, 좀 복잡해보이지만, 한 줄 한 줄 설명을 넣었다. 내가 그 전에 보았던 많은 책들은 이런 걸 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명령어를 따라가다 보면, "도대체 저자가 왜 이 명령어를 쓴 거지?"라는 걸 잊고 방황하기 일쑤였다. 그런 어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한 줄 한 줄 설명을 붙였다. 이렇게 한 땀 한 땀 쓰다 보니, 정말 파이썬 문법이 영어 문장처럼 해석되는 것이 느껴졌다. 하면서, 나는 독자도 비슷한 느낌을 느끼기를 바랐다. 

한 줄 한 줄 의미와 결과 값을 그대로 서술해 주었습니다. 


어떤 특정한 책을 비판하지는 않겠지만, 책을 받아 들고 가장 허탈할 때가 "이것 밖에 내용이 없어?"라는 것을 느낄 때이다. 물론 책에 글자가 너무 많아서 사람을 압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저자가 최선을 다하지 않고 대충 썼다고 느껴질 때 책에 대한 배신감이 든다. 


사람이 간사해서 책을 쓸 때는 가급적 대충 쓰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고유명사까지는 안 써도 되겠지? 이 정도 쓰면 알아서 사람들이 생각하겠지? 이 정도 말 하면 다 알아먹었겠지? 이런 욕망을 억제하고, 책을 쓸 때는 이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와, 이렇게까지 내가 자세하게 써야 돼?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알려줘야 해?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해야 해? 너무 분량이 많아지는 것을 절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필요 없으면 안 쓰면 되기 때문이다. 몇 마디 안 쓰고 좋은 말을 건지는 것보다 많이 쓰고서 좋은 내용을 건지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편하게 앉아서 타이핑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건 좀 섬뜩한 건데, 글은 유튜브랑 경쟁하고, 넷플릭스와 경쟁해야 한다. 즉, 사람들은 넷플릭스에서 <종이의 집>을 볼 시간을 쪼개서 너님의 글을 읽고 있는 것이다. 그림, 도표, 자잘한 설명, 일러스트 모든 것을 총 동원해서 "이게 유튜브보다 나아요!", "이게 넷플릭스보다 재밌어요!"를 외쳐야 한다. 그래봤자 독자는 5분도 집중하지 못하고 다시 스마트폰을 만질 것이다. 


글을 잘 쓰려면, 글만 쓰면 안된다. 도형으로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일러스트를 넣어서 자신의 설명을 읽도록 만들고(직접 그릴 수 없다면 부탁하고), 참고자료를 캡쳐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이 주장하는 바를 조금이라도 더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참고문헌을 꼼꼼하게 달아서 당신의 아이디어가 어디 허공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주인이 있는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편안하게 앉아서 자신의 머릿 속에 있는 몇가지 생각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글쓰기는 끝나지 않는다. 


컴퓨터와 내가 하나가 될 정도로, 쓰고, 또 쓰고, 그리고 또 그리고, 고치고, 또 고치고를 반복해야 한다. 그 작업을 더 하면 할수록 원고가 좋아진다. 



결론: 편안하게 앉아서 글 쓰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좋은 글을 쓰려면 쓰고 또 쓰고, 그리고 또 그리고, 고치고 또 고치고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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