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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Jan 09. 2022

석박사를 한 사람이 꼭 책을 써봐야 하는 이유

책을 쓰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8)

지난 시간에 저자와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서 다뤘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책을 출판할 때 편집자의 역할은 생각보다 크며, 또 기대보다 많은 것을 해주지 않을 수도 있으니 관계를 잘 설정하라는 것이었다. 

https://brunch.co.kr/@skytreesea/135

오늘의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석박사학위 취득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2020년 대학원 전체 학위취득자99,185명으로 박사 16,139명, 석사 83,046명으로 추산된다. 1년이면 10만명가까운 대학원 졸업자들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석박사를 받는다. 잘 아시다시피, 이 글을 쓰는 저자 역시 지리학 박사이다. 오늘은 내 이야기 조금을 곁들여 석박사 학위자들이 책을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써보고자 한다. 


나는 2009년에 지리학으로 석사학위를, 2014년 같은 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질러, 유라시아!"를 처음 출판한 것은 그 중간이었던 2011년이고 2번째 책, "된다! 팟캐스트&유튜브 실전활용법"은 2016년, 그리고 "Do it! 파이썬 생활프로그래밍"은 2020년에 썼다. 요약하자면, 박사과정중 한 권, 박사 받은 직후 한권, 그리고 한 참 뒤 한 권을 출판한 것이다.


"질러 유라시아!"로 처음 여행기를 냈을 때, 어떤 선배가 와서 나에게 했던 말은, "첫 책이 여행기라니? 좀 의외다"라고 말했다. 그 속 뜻은, "우리(?)는 학문적(academic) 글을 쓰는 사람인데, 왜 그런 가벼운 에세이를 먼저 세상에 선보였는가?"라는 일종의 비아냥이 담겨 있다고 느껴졌다. 이 글을 통해 그런 생각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은 것은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이 글의 목적과 방향은 누구에게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석박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책을 쓰도록 부추기고 싶은 데에 있다. 


석박사 때 우리는 학문적 글쓰기(academic writing)이라는 것을 배운다. 아니 배웠어야 했다. 대학원 내내 배워야 하는 것이 바로 학문적 글쓰기인데, 이 학문적 글쓰기란 말이 멋있지만, 결국 학문적 글쓰기는 일종의 기술적 글쓰기(technical writing)이다. 즉, 자신의 실험결과를 특수한 전공의 사람들에게 보고하기 위해서 쓰는 글쓰기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감정이나 느낌은 배제해야 하며 과장이나 지나친 수사학도 배제한다. 무미건조하게, 그러나 독창적으로 자신의 사고와 실험결과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학문적 글쓰기의 목적이다. 물론 여기에 여러 자잘한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겠지만. 


대학원에서 쓰는 학위논문은 지도교수와 자신만 읽는다는 속설이 있다. 물론 헛소리다. 최소 심사위원 3명은 자신의 논문을 읽는다. 물론 심사위원이 게을러서 안 읽는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으나, 내 경험으로 보면 심사위원이 학생의 원고를 제대로 안 읽었다가는 심사장에서 오히려 쪽팔림을 당하기 때문에 그런 이유 때문이라도 웬만하면 읽고 들어간다. 학위논문을 포함하여 논문이란 특정한 전공을 한 전문가들끼리 보는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은 생략될 수 있으며, "나이 어린 독자들이 내 실험결과를 어떻게 이해할까?"라는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학위논문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이미 수많은 샘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석박사 학위논문의 목차나 거기에 들어가야 할 문장 역시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서, "이 논문의 목적은 **와 **의 관계를 ***관점에서 설명하여 ****이론에 기여하는데 있다" 이런 식의 문장은 정말 많은 논문에서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학위논문 취득의 목적은 학위취득이다. 그러므로 사실 독자들이 이 논문을 통해서 얼마나 감화되어야 하는가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물론, 아주 드물게, 석박사 학위논문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식의 표현도 접할 때가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석박사 학위논문은 들어간 노력에 비해서 거의 읽혀지지 않고 조용히 시스템 속에 가라앉아있다. 


상업용 출판의 길은 "글을 쓴다"는 행위만 같을 뿐, 학위취득보다는 오히려 상품개발과 판매를 닮아있다. 이것은 이 시리즈를 처음 시작하면서 했던 이야기와 닮아있다. 책을 교보문고 판매대에 내놓는다는 것은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진 상품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의미이다. 

https://brunch.co.kr/@skytreesea/129


여기서부터 학위논문 심사때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모든 고민이 시작된다. 내 책이 나옴과 동시에 잊혀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당신이 어떤 분야에 대한 책을 쓰더라도 그 분야의 대가들이 이미 써놓은 책들이 중고서점에 잔뜩 나와있을만큼 대한민국은 이미 책의 홍수이다. 


"나는 꼼수다"라는 팟캐스트로 전국적 스타가 된 4인방 김어준, 주진우, 김용민, 정봉주는 모두 책을 냈다. 그리고 그 책들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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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서는 김어준의 책이 그래도 가장 인기가 좋았는데, 주진우의 책이 오랜 기자생활의 내공이 녹아있어서 그런지 더 기억에 남는다. 최근 하트시그널에 출연하여 화제가 된 천인우 작가 역시 책을 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가 페이스북에서 근무하다가 한국에 벤쳐기업 리더로 화려하게 복귀한 그는 다시 스탠포드 MBA로 유학을 떠났다. 이 정도 되는 스토리가 있는 사람이 적절히 인지도가 남아있을 때 책을 발표한 것이다. 그의 책에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 그 중에서도 공부법과 영어공부법이 자세하게 들어 있다. 한국 학부모들이 딱 좋아할 내용이다. 우리 아이를 어떻게 공부시켜야 하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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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박사 학위논문을 써보고 자기가 글 좀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글을 좀 쓴다"는 건 하얀 종이에 검은 색의 글씨를 입히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학자가 진짜로 학문적 글쓰기를 잘 한다고 인정받으려면 좋은 저널에서 좋은 논문을 발표하면 된다. 그러면 수많은 리뷰어들이 꼼꼼하게 틀린 것을 지적하고 수준이 안되면 저널에 실어주지 않는다. 학위논문 한 번은 어떻게 써낼 수 있어도 저널에 논문을 계속 게재하고 있다면 그가 성실하게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입증된 셈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일반 사람들이 "글을 잘 쓴다"는 통념과는 거리가 멀다. 통념에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글을 쓴다"는 것이다. 고로, 석박사 학위자들이 출판을 해야 하는 첫번째 이유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글을 쓰는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 석박사 학위자는 출판을 해봐야 전문 편집자와 협업을 해볼 수 있다. 사실 이 두번째 이유가 이 글을 쓴 이유이다. 물론 석박사 학위를 받을 때 지도교수라는 존재가 있다. 그러나 지도교수는 어디까지나 '교육'을 하는 사람이지 여러분의 논문을 대신 편집해주거나, 여러분의 논문이 잘 쓰는 것과 나의 성과급이 연결되는 관계는 아니다. 즉, 지도교수는 어느 정도는 교육자이다. 여기에 비하면, 편집자는 저자와 협업하는 관계이다.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출판 성격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편집자와 저자는 어느 누구가 다른 누구를 교육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가 가진 재능을 주고 받아야 하는 역할이다. 저자가 글쓰기 전공이라면, 편집자는 기획과 편집 전공이다. 이 두 전공이 진심으로 협업해서 책을 만들어 낸다. 둘의 목적은 보다 좋은 책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읽히게 하는 데 있다. 물론 지도교수의 지도 역시 많은 것을 알려주지만, 출판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서 저자는 작가로 거듭나게 된다. 


결론: 석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은 책을 써봐야 진정한 작가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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