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8)
오늘은 7번째 시간으로 편집에 대 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지금 여러분은 책 계약을 마친 상태이다. 출판 계약 시 필요한 팁들은 다음 글에 있다.
https://brunch.co.kr/@skytreesea/132
10만자 분량의 원고도 썼다. 그리고 그 원고를 스스로 깎고 다듬어 5만자 분량의 제법 그럴듯한 분량의 원고를 만들었다.
https://brunch.co.kr/@skytreesea/133
이미 나는 책을 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을 만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도 있다.
https://brunch.co.kr/@skytreesea/131
자, 제목을 보고 아마 많은 분들이 예측을 하셨을 텐데, 먼저 싱겁게 답을 말하자면, 여러분 원고의 품질을 좌우할 수 있는 사람은 편집자이다. 오늘은 편집자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편집자와 어떻게 협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써보고자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먼저 대학원 학위논문이 나오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석사 학위논문의 경우 지도교수를 포함하여 총 세 명의 심사위원이 학위논문을 심사한다. 세 심사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통과결정을 내리면 논문이 통과된다. 이 때, 준 편집자 역할을 하는 사람은 지도교수이다. 지도교수는 논문의 전체적인 방향성은 물론이거니와 목차까지 긴밀하게 상의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논문은 학생의 것이지 지도교수의 것이 아니므로 학위논문의 저자이자 편집자는 학생이다.
그러나 상업출판은 약간 이야기가 다르다. 모든 책에는 월급받고 일하는 편집자가 붙는다(생각해보니 지도교수 역시 월급받고 일하는 사람이기는 하다). 편집자는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책의 품질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저자와 교류해야만 한다. 오탈자를 본인이 보기도 하고, 책의 방향성이나 부족한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며, 데드라인 압박도 해야 하고, 독자들이 보기에 보다 꼼꼼한 설명을 위해 저자에게 과감하게 '이런 내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나도 들은 이야기이지만, 영미권 출판계에서는 편집자의 권한이 훨씬 강해서, 소설가도 장편소설 쓸 때, 대사나 이야기의 방향 등 세세한 모든 부분에 대해서 편집자의 압력(?)이 들어간다고 한다.
작가는 원고를 쓰지만, 편집자는 책을 완성하는 사람이다. 편집자가 주가 되어서 교열도 맡겨야 하고, 디자인도 맡겨야 하고, 컴퓨터 책의 경우에는 베타테스터도 구해야 한다(혹시 사실관계 오류 있으면 지적 바랍니다). 좀 더 과감하게 말한다면, 작가를 제외하고 책의 성패를 좌우하는 사람은 편집자이다. 같은 원고도 어떤 기획 의도로 어떻게 편집방향을 잡는가, 또 작가로 하여금 어떠한 원고를 주문하는가에 따라서 원고의 내용이 달라진다. 고로 좋은 작가가 되려면 좋은 편집자를 만나야 한다. 좋은 편집자를 만나서 좋은 관계를 만들면 더 좋은 책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총 네 명의 편집자를 만났다. 안 좋은 사례 하나를 얘기하자면, 본인의 생각대로 내 원고를 재단하는 편집자가 있었다. 그 때 나는 어려서 사실 편집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그 사람이 삭제하라고 하면, 삭제했다. 그런데 나중에 그 편집자가 그만 두고 다른 편집자가 와서 "이 원고 어디가 비어 있는 것 같은데요?"라고 얘기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머지 원고를 보여줬더니,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고 했다. 그 때 나는 "편집자에게 내 의도를 정확하고 세세하게 전달해야겠구나, 그렇게 숙고를 거친 다음에 결정을 해야 하는 거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 의견이 잘 교환되고 궁합이 잘 맞으면 결국 책의 품질은 올라간다. 여기서 초보 작가가 주의해야 할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 편집자는 자신의 원고를 대신 손 봐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초보 작가라면 편집자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기대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여기까지 손보면 편집자가 이 다음은 알아서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인드이다. 이런 마인드를 가지면 편집자와 관계는 위태로워질 수 있다.
편집자는 직장인이다. 직장인으로서 많은 일을 하고 있을테고, 작가가 가급적 원고에 대해서 많은 품을 들여주기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정서상, 작가들이 평균적으로 자의식 과잉이 있는 편이어서, 편집자가 직접 원고를 수정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기도 한다. 초보 작가가 편집자의 위치를 잘못 인식하여, 내가 여기까지 썼으니 나머지는 편집자가 알아서 해주슈, 했다가는 큰일난다. 책임(responsibility)란 말이 여기서 나왔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나의 책임.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건, 편집자와 잘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같이 술 마시고, 유흥을 즐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편하게 자신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주고 받을 수 있는 사이라야 한다. 편집자에게 너무 자주 연락해서 쓸데 없는 걸 물어보는 건 금물이다. 편집자를 충분히 존중하면서 편집자의 지혜와 노하우를 충분히 끌어내는 것 역시 작가의 능력이다. 작가는 글을 쓰니까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편집자는 그 대단한 작가들을 마주하면서 결국 책이라는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작가 역시 편집자로부터 배울 게 많다.
책을 낼 때 나는 작가이지만,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 편집자의 역할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보고서를 하나 쓴다고 했을 때 수많은 외부연구원의 원고를 콘트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원고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가 진다. 편집자 입장에서 보면, (좀 과격하게 얘기하면), 작가들은 아기 같은 존재이다. 뭔가 대단한 게 될 수 있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내 욕심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을 가져온다. 나는 도스토에프스키만큼 글을 잘 쓰진 못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은 읽었으니 눈은 높다. 편집자 입장에서 작가가 더 나은 작품을 가져오게 만드는 것, 역시 대단한 도전이다.
좋은 책을 내고 싶으면, 편집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편집자가 껄끄럽고 불편하면, 어쨌든 최선의 결과물은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