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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Jan 03. 2022

이 책은 왜 세상에 나와야 하죠?

책을 내고 싶은 많은 사람들에게(6)

벌써 이 시리즈로 6번째 글을 쓰고 있다.


이 두서 없는 시리즈는 부업(?)으로 책을 세 권 내본 적 있는 필자가 책을 내본 적 없는 초보 작가를 위한 글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글은 '팁'을 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용기'를 주기 위한 글이다. 출판을 하기 위한 팁이라면 블로그나 다른 브런치 글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냥 깔끔하게 위키하우를 보는 방법도 있다. 사족이지만, 좋은 세상이다. 여러분이 뭔가를 하고 싶을 때 이 위키하우를 가면 정말 많은 노하우들을 공짜로 얻을 수 있다. 우리에게 부족한 건 항상 노하우가 아니라 실행력이다.

이미 여러 글에서도 밝혔듯이 이 시리즈는 시간의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지난번에는 '집필론'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편집론'과 '원론'을 한 번 같이 다뤄보고자 한다.

먼저 원론이다. 왜 이 책은 세상에 나와야 하는가? 이 질문은 때론 정말 힘이 빠지는 질문이기도 하며, 여러분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도 수 차례 마주해야 할 질문이다. 자꾸 내 책의 이야기를 꺼내게 되어 독자들에게 죄송하지만, 첫 책인 질러, 유라시아(2011), 가장 최근에 낸 책인 Do it! 파이썬 생활프로그래밍를 쓸 때 이런 고민이 정말 많았다.


<질러, 유라시아>를 쓸 때, 항상 앞선 저자들과 비교해 보면 내 원고는 볼 품이 없었다. 그 전에 나는 글 깨나 쓴다는 생각을 했고, 주변에서도 그런 말을 들었지만, 상업용 출판의 세계는 정말 다른 세계이다. 예를 들어 문예창작과를 나온 기자 출신의 작가 임헌갑이 쓴 '떠나는 자만이 인도를 꿈꿀 수 있다'를 보면 일단 제목부터 포스가 뿜뿜 뿜어져 나오며, 읽어보면 화려한 문장력에 일단 기가 죽는다. 심지어 여행지에서 여자와 잔 이야기도 나온다. 나는 그 정도 수위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용기도 없고, 문장력도 없었다. 원고를 쓰면서도 계속 "왜 나는 임헌갑보다 글을 못 쓰지?"라는 열등감을 느끼면서 글을 썼다. 그럴 때마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세상에 이런 좋은 여행기가 많은데 내 책은 왜 나와야 하는 거지? ㅠㅠ"


첫 책에 비하면 파이썬 책을 쓸 때는 그런 목적의식이 명확했다. 지금은 파이썬 책이 서점에 널려있다. 파이썬 처음 공부하던 7-8년 전에 비해 진짜 많다. 그 많은 파이썬 책 중에서 내 책을 사람들이 사서 보는게 신기할 정도다. 내 책은 출판하고 나서 지금까지 그럭저럭 잘 팔린다. 하지만, 여기에는 좋은 출판사가 있다는 것 이외에도 몇 가지 포인트가 있었고, 오늘은 그 포인트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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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썬을 처음 공부할 때 봤던 책 중 하나가 Head First 시리즈였다. 이 책은 일반 컴퓨터 입문서처럼 a부터 z까지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정말 심플한 몇 가지 예제를 실제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몇 개 안 되는 예제를 실제로 해봄으로써(읽음으로써가 아니라), 확실히 책을 통해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성취감을 얻게 된다. Head first라는 말은, 실행함으로써 머리가 먼저 이해하도록 만드는 책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중간중간 만화와 삽화도 이해를 돕는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책에 대한 생각을 혁명적으로 바꾸게 되었다.


"책이라는 것은 이제 작가가 편안하게 앉아서 독자에게 가르치듯 쓰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진심으로 위해서 독자의 수고를 덜어준다는 느낌으로 써야겠구나."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파이썬 책을 쓸 때는 하나의 명령어라도 독자가 그 의미를 놓칠까봐 한 줄 한 줄 설명을 달아주었다. 이건 전문 프로그래머들에게는 가오가 떨어지는 일일 수 있다. 왜냐하면 파이썬 명령어는 그 자로 영문법과 별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직관적이며, 바로 그런 직관성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 직관적인 언어를 또 다시 번역해준다고?

명령어 한 줄도 독자가 이해 못하지 않게 해준다.

파이썬 책을 사서 공부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저자들은 어느 순간 독자와 멀어져서 혼자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독자는 저자가 써놓은 명령어가 어디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르며, 솔직히 타이핑을 하는 것조차 귀찮다. 그러나 파이썬의 경우 명령어 한 줄만으로도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그 한 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한 줄 한 줄 설명을 달아주게 된다.


좀 길게 돌아왔는데, 다시, "왜 이 책은 세상에 나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누가 던졌을 때, <Do it! 파이썬 생활프로그래밍>의 경우 내 답은 다음과 같다.

아무도 이렇게까지 친절한 책을 나보다 먼저 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이거다. 파이썬을 잘 하는 사람은 정말 많고, 그 중 대부분이 나보다 프로그래밍을 잘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귀찮은 설명을 일일히 달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바로 파이썬 명령어 한 줄 한 줄에 달려 있는 이 설명이 이 책이 세상에 나와야 할 이유였던 것이다.


또 다시 첫번째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질러 유라시아"는 왜 세상에 나와야 했을까? 사후적으로 이런 싱거운 설명도 할 수 있다. 즉, 한 명의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첫 작품을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는 히트작이 나올 수 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첫 작품이 나와야 했고, 그래서 "질러 유라시아"는 세상에 나와야만 했던 것이다. 한 번 책을 내면, 영원히 '작가' 소리를 들으면서 살 수 있다. 책을 내지 않고,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한 번 작가는 영원한 작가이다.


좀 다른 관점에서, "질러 유라시아"를 세상에 낸 이유 중 하나는 "여행에 대한 판타지를 깨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한비야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세계여행이라는 불을 지른 것은 사실이다. 90년대 학번은 유럽 배낭여행이 유행이었는데, 이런 유행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한비야의 책이었다. 심지어 한류스타 배용준도 여행기를 냈고, 인도여행의 불을 지른 류시화 시인도 여행기 계의 거부라 할 수 있다.


내 여행기의 정서는 "힘없는 대학생이 부족한 예산으로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느끼는 여행의 허무함"? 나는 책에 여행이 지겹다는 말을 꼭 넣고 싶었다. 그래서 실제로 넣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여행에서 내가 가장 많이 뱉은 말이 '지겹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겨운데 갑자기 돌아갈 수도 없었다. 여행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 때 여행기를 보면, 뭔가 "너무 여행을 포장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포장지를 뜯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저기요, 장기 배낭여행은 지루하답니다. 차라리 돈 벌어서 잠깐 놀러가세요.


물론 질러 유라시아에는 지리학과 학부생으로서 느끼는 자연경관에 대한 독특한 감상이라든지(예를 들어 교과서에 나오는 거대한 선상지를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의 감동!), 인문지리학적 감수성(베트남 여행을 다니는 프랑스사람을 통해 느끼는 세계화)이 가끔 묻어나기도 한다. 세상에 대해서 뭔가 멋진 해석을 내놓고 싶지만,당시만 해도 학부생으로 가방끈이 짧아서 지금처럼 설명할 수는 없었던 느낌이 묻어난다. 누군가에겐 그런 허세가 약간은 귀여웠을 테고.... 그리고 그런 내용을 덧붙일 때는 사진과 자료를 첨부해서 독자들이 내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https://brunch.co.kr/@skytreesea/129


첫 책 <질러, 유라시아>를 쓸 때 나는 이 책이 왜 세상에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이 책을 썼다. 그러나 세번째 책인 <Do it! 파이썬 생활프로그래밍>을 쓰기 전에는 "이런 책이 세상에 나와야 한다"는 명확한 목적의식이 있었고, 거기에 맞춰서 집필을 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니까, 나는 글을 잘 쓰니까, 돈을 벌고 싶으니까, 유명해지고 싶으니까, 이런 것은 세상에 책이 나와야 하는 이유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독자가 지금 이 책이 없어서 어떠한 불편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혹은, "이 책이 독자를 어떻게 즐겁게 해줄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물음이다. 그런 점에서 <질러, 유라시아>는 7개월씩이나 장기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여행의 솔직한 감정을 풀어놓자는 것으로 다소 모호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면, 파이썬 책은 "독자들이 놓치지 않고 이 책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하자"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이 목적의 차이에 따라서 판매고 역시 큰 차이가 났다.


판매고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이 리뷰다


책이 잘 팔리면, 익명의 독자들에게 '자발적' 리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그리고 일부러 로그인까지 해서 리뷰를 남기면서 악평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는 댓글을 많이 받았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기쁨이다.


그렇다고 해서, "책의 명확한 목적이 없으면 책을 쓸 수 없다는 말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마 여러분도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여러분이 할 일은, 없는 목적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목적 중에서 하나의 목적에 가중치를 명확하게 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질러, 유라시아>의 경우, 지금의 나라면 지리학과 학생이라는 장점을 십분 살려서 지리학 내용을 깨알 같이 심어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리학 전공자가 바라보는 세상이 이렇구나 라는 점을 분명하게 어필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지겹다는 말을 쓰지 않을 이유도 없었을 것 같다.


"어떤 목적에 집중을 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러다고 해서 다른 자잘한 목적을 완전히 포기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원룸을 잘 꾸미는 방법"에 대한 책을 쓰고 싶고, 원룸을 꾸미기 위해서 값싼 알짜배기 소품을 소개한다고 했을 때, 여러분의 목적이 가성비 높은 제품을 소개한다고 하더라도, 값비싼 아이템에 대한 소개를 하지 않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중요한 것은 포인트가 어디 있느냐이다.


여기서 하나 더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목적이 명확하다면, 그 목적과 편집방향을 일치시켜야 한다.", 목적이 관념이라면, 편집을 실천이다. 여러분의 목적은 편집을 통해서 드러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편집이 꼭 폰트를 맞추고 자간을 조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디자인 단계에서 진짜 편집자들이 어느 정도 해준다.


여기서 말하는 편집이란 방배치처럼 '배치', 즉 책의 아이템(글, 그림, 도표)에 공간적 위치를 부여하는 일이다. 편집론 역시 너무 할 말이 많기 때문에 나중에 다뤄야 할 주제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운만 띄우고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편집은 책이 나와야 하는 목적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어느 덧 6번째 글이 되었네요.

다음에 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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