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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Jan 17. 2022

데빌과 싸워 이기기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10)

이 시리즈가 10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 글을 쓰다가 나도 출판 못한 원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 방구석에서 잠자고 있던 내 원고를 하나 발견하여 출판사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출판사에게 좋은 작가란 귀한 손님과 같다. 작가란 까다롭고 신경쓰이는 존재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출판사에게 돈을 벌어다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시리즈를 쓰는 궁극적인 이유는 이미 여러 차례 밝혔다시피 '용기를 주기 위해서'이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오늘은 열등감을 이겨내는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써보고자 한다. 

https://brunch.co.kr/@skytreesea/134


이미 이 포스팅에서도 한 번 다룬 바가 있는데, 첫 책, '질러 유라시아'를 낼 때 일단 내 원고는 여러 차례 거절 당했다. 그냥 거절만 하면 괜찮았을 텐데, 거절하고 "이게 글이냐"는 식의 힐난도 받았다.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한 사람도 있었고, 아름답지 못하다고 표현한 사람도 있었다. 당시에 그 사람들에게도 매우 서운한 감정이 생겼으나, 지금은 아무런 감정도 없다. 어쨌든 긴 시간의 탈고와 원고를 정리한 끝에 나는 원고를 완성했고, 책은 나왔다.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어떤 사람들이 내 책을 읽고 좋은 책이라고 리뷰를 남겨주었다. 유명한 책은 아니지만, 어떤 독자가 내 책을 꼼꼼히 읽고, 좋은 리뷰를 남겨주었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자존감이 높아지는 일이다. 

  

이렇게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 보니 세번째 책을 쓸 때는 열등감이 미리 생겼다. 더군다나 세번째 책은 파이썬, 즉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한 책이었다. 내 전공도 아니었고(내 전공이라고 해서 대단히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중에 엄청나게 많은 파이썬 책이 나와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파이썬 책 저자들은 관련 학과를 나왔거나, 최소한 개발자로 근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끊임없이 이런 고민에 시달렸다. 이 책이 세상에 나와야 하나? 


한번은 이런 고민을 하다가 출판사 대표님에게 직접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올 가치가 있을까요? 사람들이 시덥잖은 내용으로 책을 썼다고 비난하면 어떻게 하죠? 

이렇게 말했더니 출판사 대표님이 이렇게 말했다. 


파이썬으로 이런 저런 실습을 해볼 수 있고, 그런 실습을 하게 도와주는 것이 이 책의 역할이라고 하면 되죠. 혹시 더 심화된 내용을 보고 싶으면 다른 책을 보라고 하고요


사실 이 내용 자체가 내가 고민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 순간에는 이 말이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살면서 나도 적잖은 책을 읽었지만, 하나의 책이 모든 것을 만족시켜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파이썬의 교재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점프투파이썬(박응용)이 좋은 책인데, 그 책만으로 파이썬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파이썬의 수많은 라이브러리를 활용하는 방법, 인코딩이 달라서 한글이 깨질 때 대처하는 방법, 크롤링을 하는 방법 등은 점프투파이썬에 나와 있지 않다. 그래서 점프투파이썬을 본 다음에는 독자들은 파이썬에 대한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실습책이고, 내 책은 실습 위주로 해서 파이썬의 기능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말하자면 파이썬의 '워크북'이라는 느낌으로 썼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88997390915

내가 열등감을 이기는 방법은 결국 다른 사람이 하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찾아서 하는 것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자랑한 적이 있지만, 시중에 있는 파이썬 책 중에서 내 책처럼 파이썬 명령어 한 줄 한 줄 설명을 달아놓은 책을 찾아보긴 힘들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약에 독자들이 파이썬 명령어를 따라서 치다가 혹시나 길을 잃은 경우에도 이 명령어가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의 거의 모든 명령어에는 초록색과 같이 설명이 달려있다.

내 원고를 출판사에 소개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세상 모든 물건을 팔거나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맞닥뜨리게 된다.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무엇을 얻을 수 있죠?", "이 책이 다른 책보다 나은 점이 무엇일까요?", "어떤 독자를 타겟팅하고 있죠?"  물론 이런 질문에 대한 준비된 답은 있다. 예를 들어,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파이썬 실습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질문은 다음과 같다. "그럼 시중에 있는 파이썬 워크북 책들과 이 책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여기까지 오면 살아남을 작가가 별로 없다. 나 역시 시중에 있는 파이썬 책은 많이 보았지만, 다른 워크북과 내 책의 차이를 발견할 정도로 부지런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글을 쓸 때는 상상속에 누군가와 계속 싸우면서 쓴다. 그를 데빌이라고 하자. 데빌은 나에게 항상 속삭인다. "이 책은 나올 가치가 없어.", "이미 많은 사람들이 너와 비슷한 책을 썼어." 데빌은 실제 사람의 형상을 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여행기를 낸다고 했을 때, 편집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여행기는 정말 너무 많다는 것이다. 직장 때려치고 여행간 이야기는 진짜 세상에 널리고 널려서 신기할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대학교 때려치고(휴학하고), 여행간 이야기야 뭐 듣기도 전부터 지루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여행기에 쓴 이야기를 똑같이 쓴 사람은 없다. 내 여행기에는 비트겐슈타인 이야기도 나오고, 무슬림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사의 집에서 자원봉사했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똑같은 이야기가 있는 책은 없다. 또 나는 여행기 책에 여행이 지루하다고 썼다. 그런 부분들이 내 원고를 조금은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이었다. 


지금 준비하는 원고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 순간에도 나는 내 책이 나올 필요가 있는지 묻는다. 세상에 정말 나올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시중에 나와있는 책더미에 내 책 하나를 얹는 것은 아닐까? 항상 불안하다. 동시에 나는 이렇게 묻는다. 내 책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인이 뭘까? 뭘 넣어야 내 책이 특별해질 수 있을까? 파이썬 책의 경우에는 김박사의 칼럼과 꼼꼼하게 달아놓은 명령어에 대한 설명이 다른 책과 내 책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책을 쓰려고 다짐한 사람들은 데빌과 싸우고 있을지 모른다. 데빌은 지금 이 순간 이 포스팅에 대해서도 속삭인다. "이 글을 왜 쓰니?", "아마 이 포스팅보다 훨씬 더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글이 많을 걸?" 심지어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원고는 완벽하지 못하다. A라는 사람이 정성을 다해서 글을 썼을 때는 B라는 사람이 정성을 다해서 써서 얻을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같은 글을 써도 느낌이 다르고, 문체가 다르며, 설명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데빌을 친한 친구처럼 가까이 할 필요가 있다. 데빌이 하는 말을 거꾸로 뒤집으면, "좋은 책을 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 다른 책과 다른 어떤 장점이 필요하고, 데빌의 질문에 대답하다보면 당신은 어쩌면 좋은 원고를 써낸 사람이 되어 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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