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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Jun 19. 2023

학부생으로 돌아간다면 들을 과목

지리학 박사가 알려주는, 좋은 수업 고르는 방법

처음 내 글을 읽는 분들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반복적으로 설명하자면, 나는 한국 희귀 종족이라 할 수 있는 지리학 박사다. 하지만 늘상 강조하듯 나는 지리덕후는 아니며 오히려 덕이었다면 철학 덕후에 좀 더 가깝다. 지금은 넷플릭스 덕후에 가깝고, 영어, 일본어, 스페인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항상 얘기하지만 나는 외국어를 잘 하지 않는다, 그냥 좋아한다. 


학교 다닐 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수업만 찾아 들었다. 철학도, 불교철학, 인도철학, 한국철학, 언어철학 등 과목을 수강했다. 영어, 중국어도 수강했는데, 흠... 그닥 흥미를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학부생은 정말 좋은 위치다. 왜냐하면 자기 전공과 상관없이 원하는 수업을 다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수업을 들을까? 이런 고민이 들지만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너희 취향이 중요하지, 너의 관심사에 맞게 들어, 라는 말 정도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때문에 별 코칭 없이 수업을 고르다 보면 결국은 "나중에 들을 걸"하고 후회를 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학부생이 들으면 좋을 것 같은 수업을 열거해보고자 한다. 


1. 회계원리 

어느 회사를 가든지, 어떤 직급을 가지게 되든지 여러분은 결국 회계를 만나게 되어 있다. 여러분이 사업을 하든지, 여러분이 일반 서무업무로 취직을 하더라도 언젠가는 예산을 만난다. 수익과 수입, 영업이익과 재고자산회전율, 감가상각, 복리, 분개, 이 중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용어가 있다면 회계원리는 무조건 찾아서 듣는 것이 좋다. 나중에 회사를 가더라도 높은 자리로 올라가면 결국 예산을 놓고 싸우게 되어 있다. 회계학을 안다고 해서 더 예산을 잘 따오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회계를 모르면 백전백패다. 아울러 "재무제표 볼 줄 모르면 주식 하지마라"는 책도 있듯이, 투자를 하더라도 당연히 재무제표는 볼 줄 알아야 한다. 잘 가르친다고 소문난 교수님에게 들으면 된다. 수강신청에 실패했다면, 다음으로 잘 가르치는 교수님에게 들으면 된다. 


2. 방법론(기초통계)

이건 진짜 앞으로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어쩌면 영어보다도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사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영어를 쓸 일이 있는 직장이 많지는 않을텐데 통계는 볼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매출 평균을 구하는 일부터, 설문조사 결과를 해석하는 것까지 모두 통계이다. 물론 고등학교 수학을 제대로 이수했다면 여러분은 확률 통계에 대해 수학적인 지식이 조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지식은 다 써먹을 데가 없다. 여러분은 최소한 평균, 중간값, 분산, 표준편차, 표준오차, 정규분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하고 싶은 사람일수록 숫자를 가지고 장난을 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숫자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비판적으로 숫자를 보는 훈련이 필요한데, 비판적으로 숫자를 볼 수 있는 기본 무기는 통계학이다. 실습 역시 많이 해보면 해볼 수록 좋다. R을 배우는 것을 추천하고 싶은데, R이 조금 어려워 보인다면 파이썬도 좋고 SPSS도 좋다. 자기는 이과 아니라고, 자기는 숫자만 보면 어질어질하다고 핑계 대지 말자. 그냥 방법론(기초통계, 사회과학방법론 등) 수업 하나 듣고 시키는 대로 하자. 그러면 안 한 사람보다 훨씬 낫게 된다. 나중에 사회 나오면 은근히 통계 기초 개념 없는 사람이 많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3. 글쓰기

필자가 학교다닐 때는 인문학 글쓰기라는 수업이 있었다. 물론 사회과학 글쓰기 수업도 있을 것이다. 이 수업은 반드시 찾아서 듣는 것을 추천한다. 결국 여러분이 회사에 가서 할 일은 글 쓰는 것 아니면 말 하는 것이다. 위 글과 같은 맥락에서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제법 많아 보이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드물다. 여기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회사에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문학적으로 글을 잘 쓴다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에 회사에서 좋은 글이란, 

1) 정보전달이 명확하고, 

2) 군더더기가 없고, 

3) 오류가 없는, 

4) 미적으로 아름다운 글이다. 

여기서 미적으로 아름답다는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열심히 편집해서 보는 사람이 보기 편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글씨 크기를 적당히 키운다든가, 간격을 맞춘다든가.. 하는 것이다. 특히 3)은 극단적으로 중요하다. 1)과 2)를 충족하더라도 3)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글을 잘 쓴다고 할 수 없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글을 잘 쓰려면 글을 써 봐야 된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많은 글을 써봐야 한다. 인문학 글쓰기도 좋고, 사회과학 글쓰기도 좋고, 이공계를 위한 글쓰기도 좋다. 글쓰기 수업은 무조건 들어야 한다. 


4. 영어 

물론 대학교에서 하는 영어 수업에 여러분은 불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싼 등록금 내고 학교 다니면서 영어를 배우려면 또 학원을 다녀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는 이유는 대학교에서 텝스 잘보는 법, 토익 잘 보는 법을 강의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에서 영어 수업은 여러분이 내는 등록금에 포함되어 있다. 필자의 경우에는 '언어교육원'에서 따로 영어수업을 수강하기도 했는데, 여러분이 다녀야 하는 사설학원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만약 학부과정으로 돌아간다면 필자는 4년 내내 영어 수업을 신청해서 들을 것 같다. 일부러 돈내고 영어공부도 하는데, 대학에서 수업시간에 가르쳐주니 얼마나 좋은가? 


5. 서양사

물론 동양사도 들으면 좋다. 서양사에 관심이 있다면 여러분은 당연히 동양사에도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어차피 여러분은 살면서 서양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듣게 될 것이다. 스페인에 이슬람 문화가 남아있는 이유, 영국은 왜 여러 나라로 나눠져 있는지, 프랑스의 국가인 라마르세즈는 왜 그렇게 잔인한지 여러분은 나중에 어딘가에서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때 그 때 나눠서 듣기보다는 한번 줄기를 잡아 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서양사를 대충 한 번 훑으려면 책을 10권 읽어도 모자라다. 대신 수업 하나를 들으면 대충은 감이 올 것이다. 그 감을 가지고 살면 나중에 관심이 생길 때 좀 더 찾아볼 수 있는 실마리를 알 수 있다. 일단 들어놓자. 


6. 프로그래밍: 파이썬

학교에서 파이썬 강좌를 열어준다? 무조건 들어야 한다. 요즘처럼 코딩하기 쉬운 시절은 인류 역사상 없었다. 예전에 미국에 못 가서 영어를 못한다는 말이 핑계는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유튜브가 있어서 말이 안되는 것처럼 지금은 코딩에 관심이 있는데 코딩을 못한다고 하면 그냥 "나는 게으르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코딩을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냥 "책 한 권 사서 따라한다."가 되시겠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수업 하나를 듣는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마찬가지로 그냥 한 학기 수업을 들으면 가장 좋다(가장 기초, 가장 쉬운 수업을 들으면 된다). 그런데 한 학기가 부담스럽다, 그러면 그냥 일주일짜리 수업을 들어도 된다. 대학마다 방법론이니 뭐니 해서 그런 클래스를 많이 열고 있으니 참여신청하면 된다. 



  


이상 지리학 박사가 추천하는 학부생 때 꼭 들어야 하는 수업 6개를 알아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운 좋게 이 글을 읽었다면, 

꼭 이 수업들을 듣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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