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관심사들(23.08)
지하철을 타고 가다보면 본의 아니게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뭘 하는지 보일 때가 있다. 일부러 보는 것은 아니다. 요즘 많이 보이는 창은 '주식'이다. 그런데 좀 특이한 것은 한국주식보다 미국주식을 보는 사람이 꽤 있다는 것. 테슬라, 아마존, 애플, 엔비디아 주식가격을 확인하는 사람들을 꽤 본다.
나의 경우에는 예전부터 주식을 하려면 미국주식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토스'를 통해서 미국주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매매 방법은 '양동매매'라는 방법으로 아주 간단한 원리인데, 곱버스 ETF를 양쪽으로 사서, 시장이 오를 것 같으면 롱(long)의 비중을 높였다가 팔고, 시장이 떨어질 것 같으면 숏(short)의 비중을 높였다가 파는 방식이다. 흔히 상승장을 "장이 좋다"고 이야기하고, 하락장을 "장이 안 좋다"고 말하지만, 양동매매를 쓰면 시장이 좋든 나쁘든 돈을 벌 수도 있다.(모두 다 벌 수 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시장이 좋으면 롱이 돈을 벌어다 주고, 시장이 안 좋으면 숏이 돈을 벌어다 준다. 실제로 나스닥은 지난 7월까지 불(Bull)의 장이었다가, 8월에는 약간 침체기였는데, 이 때는 숏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주식 가격이 뚝뚝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숏이 돈을 벌어다 준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8월에 시장에는 여러 악재가 있었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일본의 YCC 정책 이슈 등으로 시장은 다소 주춤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23년 상반기에 미친듯이 올랐던 주식가격은 그 자체로 위험요인인 것처럼 보여졌다. 썸머랠리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역사적으로 7월에 주식장이 안 좋았던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7월은 대체로 올랐다면, 8월은 조정하는 장이었다.
8월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잭슨홀미팅과 엔비디아 실적 발표였다. 엔비디아는 460달러(8/25 기준)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2월말 가격이 230달러 수준이었다. 6개월만에 딱 두배로 오른 것이다. 시장은 엔비디아가 도대체 어떤 실적으로 내놓을지 궁금해했다. 이번 실적발표는 그동안 엔비디아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충분했다. 어닝 서프라이즈가 나온 것이다. 이로써 작년 챗GPT 출시 이후 AI에 의한 반도체 시장이 앞으로도 계속 킾고잉할 것임을 엔비디아가 도장을 쾅쾅 찍어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재밌는 것. 엔비디아 주식이 최근 계속 올랐냐? 그건 아니다. 제법 큰 폭으로 빠지기도 했다. 잭슨홀미팅 전으로는 나스닥이 전체적으로 빠지는 가운데 엔비디아 주식은 크게 오르지 않고 제법 숨을 골랐다. 그리고 지금 가격 수준은 460달러 수준인데, 목요일에는 488달러 수준까지 올라갔었다. 여기서 한가지 교훈은 실적이 잘 나왔다고 해서 주가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 뉴스를 보면 주가는 오를 것 같지만, 사실 시장은 자잘한 이슈를 끊임없이 주가에 반영시키며 등락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고로, 우상향에 대한 믿음은 돈 버는 데 큰 도움은 안 된다.
누군가는 지금부터라도 엔비디아 주식을 사서 모으면 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가격이 5% 10% 우습게 떨어질 때 안 팔고 버틸 수 있을까? 그런 엔비디아라는 친구를 얼마나 잘 알기에 내 돈 10%가 증발했는데도 쭉 믿고 가나? 지금 고점 아닌가? 지금이라도 팔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결국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은 지식보다는 믿음의 영역에 가까운 것 같다. 한 번 믿으면 얼마나 계속 쭉 믿을 수 있는가 가 당신에게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다.
파이썬으로 주식가격 분석을 해보고 있는데 주가간 상관관계를 찾아내는 건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쉽게 주식가격의 법칙을 알아낸다면,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때부자가 됐겠지...? 복잡한 분석 이야기를 늘어놓기는 그렇고, 그냥 내 결론은 주식은 어느 한 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로는 시장을 우호적으로 보려고 하는 습성 때문에 돈을 못 벌기도 한다. 예를 들어, 충분히 시장가격이 올라서 떨어지는 타이밍인데, "그래도 시장은 우상향 하겠지."라는 믿음으로 롱포지션을 잡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인지적 편향(cognitive vias)를 제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네 생각이 틀릴 수 있어!
이런 생각을 항상 하고 살아야 한다.
주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다가 예전에 봤던 '빅쇼트'(2015) 영화를 다시 봤다. 출연진으로만 보면, 크리스찬 베일, 라이언 고슬링, 브래드 피트가 나오고 까메오로는 마고로비와 셀레나 고메즈가 나온다. 엄청난 호화 캐스팅이다.
사실 처음 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무려 박사학위를 금융으로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반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시 보니 영화를 2/3 쯤 이해한 느낌이다.
AAA 채권에 공매도를 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기지 손실이 5%에 그칠 확률이 0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예전엔 모르면서 그냥 봤던 것 같다. 이 영화 하나만 제대로 흡수해도 2008년 금융위기가 왜 왔는지 이해될 것 같은 느낌이다.(물론 내가 다 이해했다는 것은 아니다)
I want to short the housing market. 나는 주택시장에 공매도 치고 싶어요.
크리스챤 베일의 이 대사가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데 사실 여기서 숏(short)은 동사로서 하락에 베팅하다는 뜻이다.
I want to bet against the housing market. 주택시장의 하락에 베팅하고 싶어요.
이렇게 말해도 거의 같은 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공매도'라는 번역을 쓴다. 이 말 자체가 너무 어렵고, 그래서 영화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락에 베팅한다"는 것은 사실 주식, 채권시장에는 너무 흔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원칙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숏(short)이라는 것이 '공매도'라는 정말 특수한 주식 기법인 것처럼 번역되지만, 본질은 간단하다. 주식이 내리면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러면 이 '빅숏'이라는 제목도 금방 이해된다. 이 영화는 하락에 크게 베팅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골드만삭스에 가서 CDS(신용부도스왑 credit default swap) 상품을 만들어서 사는 이야기가 나온다.
I don't work people, but I read numbers. 나는 사람들을 잘 다루지 못해요. 그러나 저는 숫자를 읽습니다.
CDS는 말 그대로 신용이 파산을 하면 돈을 버는 상품이다. 좀 쉽게 말하면, 기업이 파산하면 돈을 벌게끔 만들어놓은 상품이다. 이걸 주택시장에도 적용해서 상품을 만들어서 2008년 금융위기 때 큰 돈을 번 사람들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영화 2/3쯤 지점에 가면 주택가격 금리가 변동금리로 바뀌면서 모기지 손실은 가속화되고 있는데 CDS가격은 그대로이다. 원래대로라면 모기지 손실이 가속화된다는 것은 가격이 떨어질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이므로 CDS 가격은 올라가야 한다. 여기에는 신용평가회사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조롱이 숨어있다. 극 중에서 S&P 담당자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가 등급을 낮춘다고 하면, 바로 길 건너편 무디스에서 신용평가를 받을 거에요." 어쩌면, 신용평가라는 것이 자본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고리, 바로 윤리적인 지점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 역할마저 자본주의 논리에 종속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파산의 결과는 대부분 보통 사람들에게 떠넘겨진다.
나도 한국에서 모기지를 받아봤지만, 한국의 주택담보대출은 건전하기 이를 데 없다. 정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진보 정부에서 온갖 부동산 규제 정책을 만들어 둔 덕(?)분에 한국의 모기지 시장은 상대적으로 '건전'(?)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주택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전세라는 놈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암튼...
한 가지만 얘기 하자면, 예전에 말한 적이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주택시장에 숏치는 방법이 있다. 그건 바로! 그건 바로! 집을 안 사고, 전세로만 사는 것이다. 집 값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한국에서 CDS 살 필요도 없다. 그냥 전세로 살면 된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집을 사는 것보다는 적은 주거비용이 들 테고, 남들이 집값이 떨어져서 고통받을 때 혼자 유유자적하게 미소짓고 있을 수 있다. 전세야 말로, 주택가격 하락에 대해, 일반 서민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베팅이다. 빅숏은 아니지만, 스몰숏 정도는 된다.
https://brunch.co.kr/@skytreesea/14
막스 베버가 갑자기 생각난다.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학교 다닐 때 그냥 윤리책에 나오는 윤리적인 이야기이지 넘어갔지만, 2008년을 떠올리면 막스 베버 통찰력 좀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아까 신용평가사 이야기에서도 잠깐 보았듯이, 자본주의는 일부분 탐욕으로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모든 사람들이 돈 벌겠다고 아웅다웅하는 과정에서 발전한다. 자본시장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높은 수익률을 원하는 것이고, 그보다 위험을 덜 감수하고 싶다면 채권을 사면 된다. 이런 위험한(?) 탐욕의 챗바퀴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서 일정부분 누군가는 '윤리'를 담당해줘야 할 것 같고, 신용평가사는 당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빅숏의 비꼼(sarcasm)은 온당한 것 같다.
좀 꼰대같은 얘기지만,
영민함, 의심, 합리성, 따지기 좋아함,
이런 능력보다는
신뢰, 우둔함, 침착함, 인내심
이런 가치가 돈 버는데 훨씬 유리하다.
수익은 의심보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미국 주식으로 돈 잘 버는 어떤 사람 왈, "테슬라가 떨어졌을 때, 테슬라를 믿었기 때문에 더 살 수 있었어요." 오호라.. 역시 믿음이다.
참고로, 여기 끄적이는 이야기들은 개인적인 감정일 뿐이므로,
절대 투자에 참고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