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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Aug 18. 2017

집값은 아무나 살정도로 떨어지지 않아요.

8.2. 대책이 지향하는 바와 잘못된 믿음에 관한 이야기들. 

저는 강남 부동산 가격으로 석사논문을 썼고, 민간투자사업으로 박사논문을 썼습니다. 현직 지리학 박사입니다만, 실무적으로 부동산을 여러 번 사고 팔아본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 8.2.대책을 보면서 여기저기 게시판에서 부동산에 관한 견해들을 눈팅하다 보니, 약간은 논의가 정리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 자신의 생각도 정리해볼 겸 몇 가지 단상들을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현재 부동산, 그 중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주택시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실들을 전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주택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입지이다.

아주 당연한 말씀 같지만, 주택은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입지'(location)가 매우 중요합니다. 같은 품질의 아파트라고 하더라도, 강남의 아파트가 강북의 아파트보다 비싼 것이 당연합니다. 입지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먼저 입지를 결정하는 것은 교통인프라와 직주근접성 같은 물리적인 원인도 있고, '이 동네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심리적 요인도 있으며, 여기에 얹어서 여기에 집 하나 사놓으면 오르겠다는 '투자심리'도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긴밀하게 엮여 있으며 어떤 특정한 요인을 추출해내기란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해외 저서를 포함해서 전 세계 거의 모든 부동산 교과서에 보면, 부동산은 '입지'를 가진 상품이라는 말이 꼭 빠지지 않고 나올 정도입니다. 


2) 주택은 자산이다. 고로 주택에서는 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 

'부동산'은 '자산' 중 하나입니다. 자산은 뭐냐? 정의를 찾아봐도 상당히 복잡하게 보이는데, 여기서 자산의 정의는 '향후 수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산은 주식, 채권, 부동산, 파생상품 등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흔히 '주택은 사는 곳이지 투기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접하는데 반은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산은 자본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 결정되기 때문에 가격등락을 완전히 막을 수 없습니다. 주택 가격이 오르면 수익이 발생하고 이것을 양도소득이라고 합니다. 학계에서는 자본이익(capital gain)이라고도 합니다. 주식을 가지면 수익이 날 때 배당을 주기도 합니다. 주택도 임대를 내주면 소득(income)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임대소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경제/경영/부동산에서의 용어사용이 약간씩 다를 수 있습니다. 


공식1) 주택소유로 가질 수 있는 이득 = 자본이익 + (임대) 소득


3) 갭투자는 전세를 전제로 한다. 

아주 기본적인 개념이지만, 소위 '갭투자'는 전세를 끼고 주택을 여러 채를 구입하는 투자(혹은 '투기'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지만, 여기서는 '투자'라고 하겠습니다)를 말합니다. 주택가격 상승의 주범으로 알려져 있는 투자기법입니다. 너무 당연하게도 갭투자의 전제는 '전세'입니다. 예를 들어 4억짜리 주택에 전세가 3억 6천만원이라고 한다면, 주택가격의 10%인 4000만원만 가지고도(세금은 편의상 제외) 주택을 구매할 수 있는 것입니다. 4억이면 이론적으로 10채를 소유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합니다(취득세 등 비용을 계산하면 이것보다는 줄어듭니다). 여기서 주택소유자(편의상 '임대인'이라고 하겠습니다)와 전세세입자의 이해관계가 만나게 됩니다.


* 전세는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목돈을 빌리고 집을 내주는 참 희한한 제도입니다. 불가리아(?) 등 전 세계 어딘가에 전세가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흔하지는 않고, 거칠게 말하자면,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수한 제도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전세가 우리나라 주택의 임대시장에서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월세나 반전세(전세금+일부 월세, 예를 들어 5억짜리 아파트를 3억 5천으로 전세를 살고 있는데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할 때 집주인이 4억으로 올려달라고 함, 임차인은 5000을 만들 수 없으니 차라리 40만원을 월세로 내기로 함, 3억 5천 + 40만원으로 집주인과 합의)는 30%도 되지 않습니다. 


4) 저금리 상황에서 전세는 임차인에게 유리한 제도이다.  

전세가 어느 한 쪽으로만 유리한 제도라면 당연히 전세제도가 존속되지 않겠죠. 그러나 일단 전세 자체로 발생하는 수익을 살펴보면 특히 저금리 상황에서는 전세제도는 임차인에게 유리한 제도입니다. 


임대소득을 기준으로만 생각해본다면 임대인은 임차인으로부터 전세대금을 받고 집을 2년동안 임대해주게 됩니다. 5억짜리 집을 4억에 전세를 내 줬다고 가정합니다. 집 주인은 4억을 받았습니다. 그 돈으로 정기예금을 넣는다면? 모 저축은행을 보니 2년 예금하면 금리가 2.1%이더군요. 4억을 정기예금으로 예금할 경우 연간 이자가 820만원 발생하게 됩니다. 이걸 달로 나눠보면 68만원 정도 됩니다. 5억짜리 집을 임대 주면서 월 임대료 68만원이라니! 정기예금 금리로만 따지면 집주인은 손해보면서 집을 보유하고 있는 셈입니다. 아까 공식으로 돌아가봅니다. 


공식 2) 전세를 줄 때 주택소유자 이익 = 자본이익 (기대) + (임대) 소득 (포기, 혹은 손해)


임대인은 전세를 줌으로써 '임대소득'을 포기한 대신 자본이익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즉 5억이었던 주택가격이 6억이 되면,'1억-양도소득세'에 해당하는 금액이 수익이 됩니다. 그런데 경험적으로 한국의 주택가격은 IMF 등 매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상승해왔습니다. 그러므로 임대인은 '주택가격 상승'으로 인한 매매차익(arbitrage)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임차인은 덕분에 목돈 4억에 대한 기회비용만 지불하면 됩니다. 좀 무식한 계산이지만, 4억을 새마을금고에 정기예금으로 넣어놨다고 생각하면 한달에 68만원을 월세로 내는 격이지요. 집주인, 즉 임대인인 자본이익을 노리고 집을 보유하고 있는 덕분에 전세임차인은 68만원 기회비용만으로 시가 5억짜리 집에서 거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전세금에는 세금이 붙지 않고, 원금손실도 없습니다. 


5) 전세가 상승은 주택가격 하락에 베팅한 결과물이다. 

집주인들도 전세임차인이 값싸게 거주한다는 것을 모를리 없습니다. 다만, 자본이익이 생길 것을 기대하고 전세를 주는 것이지요. 그것만 전문적으로 노린 투자가 바로 갭투자, 혹은 갭투기 되시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빙고! 집주인, 즉 임대인은 애가 타들어 갑니다. 그러므로 2년이 지나면 전세 세입자에게 전세를 올려달라고 요구하거나, 월세를 추가해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전자가 너무 심하면 소위 말해서 '전세대란'이 발생하게 됩니다. 전세대란은 전세임차인에게 큰 고통입니다. 


공식 3) 주택가격 = 갭투자자의 투자금 + 전세자금

              5억  = 5천만원 + 4억 5천만원


그러나 전세 대란에는 두가지 의미심장한 사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먼저, 전세가 상승은, 오른 만큼 돈을 가지고 임차할 의향이 있는 소비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아까 예로 든 4억짜리 전세에 5000만원을 올려달라고 말했을때, 집주인이 4억 5천에 전세로 들어올 새로운 세입자가 없다면 그렇게 전세를 올려달라고 큰소리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전세가 상승, 혹 전세대란은 거꾸로 말하면 집값이 하락할 것이므로 대기하는 수요가 모여들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집을 살 것인가 전세를 살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들이 집값이 상승한다고 생각하면, 집을 사고, 집값이 하락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전세로 들어갑니다. 즉 일부 전세수요는 집값과 시소관계에 있습니다. 집값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면 매입을 꺼리게 되고, 전세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래 봤자 전세금은 고스란히 자기돈이니까요.




결국 다주택자, 혹은 갭투자자를 잡겠다고 나선 이번 8.2 대책의 결과는 투기과열지구 이외의 경기도 지역의 주택가격 상승, 전세가격 상승 등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때문에 모기지(주택담보대출, 혹 주담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부터 비롯된 세계금융위기는 '가계부채' 자체에서 초래된 문제인 것만은 아닙니다. 부실 주택담보대출로 인해 위기가 왔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주택담보대출을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주담대는 대출상품 중에서도 가장 안전한 상품 중 하나입니다. 주택이라는 실물의 가치가 존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착실하게 주담대를 값아나가는데 평생 일한  소득을 갖다 바치기 때문이죠. 만약 갚지 못하면 담보된 주택은 고스란히 은행의 소유가 됩니다. 


주담대는 안전한 대출이다. 

가계부채가 문제라고 하지만, 그 중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주담대는 대출 중에서 가장 안전한 대출입니다. 그리고 대출은 임차인의 상환능력과 금리 등으로 시장에서 조율해야 할 문제이지 정부에서 캡(LTV 규제)를 씌울 일은 아닙니다. 선진국 대부분에서도 주택담보대출은 90%까지 대출해주는 곳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규제를 전혀 하지 않는 나라도 있습니다(아일랜드, 뉴질랜드). 채무상환능력(affordibility)이 중요하니까요. 가계부채라고 다 같은 가계부채가 아닙니다. 


간단히 요약해봅니다. 


1. 가계부채 잡겠다고 LTV 조건 40%로 강화해서 그 결과로, 전세가 오르면 서민들은 좀 더 살기가 좋아질까요? 저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서울에서는 또 한번에 전세대란이 빚어질 것입니다. 


2. 서울뿐만 아니라 모든 메트로폴리탄의 주택 가격은 비쌉니다. 절대가격으로 보자면, 서울이 결코 집값이 비싼 편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리 주택가격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은 강남에 살고 싶어 합니다. 고로 강남의 아파트가격은 큰 틀에서 '보통 사람들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수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투기꾼의 농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부동산 정책의 발표 역시 '갭투자를 선별해서 투기를 근절하자'는 핀셋만 있지, 그것이 전체 서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려 없이, 혹은 선대인 우석훈 류의 주장만을 믿고 정부에서 섣부르게 정책을 만든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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