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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Dec 26. 2017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거다

허탈한 인간관계에 대한 몇 가지 단상들

이번 글은 철저하게 나를 위한 글이다. 교훈도 없고, 정보도 없다. 또한 계획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 이 글의 목적은 '분석'이다. 사실에 근거한 분석을 토대로 어떤 좋은 '가치판단'이 나온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석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알려준다. 차치하고. 


시작하는 관계는 매력적이다. 사람을 알아가고, 그 사람이 가진 매력을 발견하고, 내가 가진 것들을 보여주고. 그 모든 관계는 만들어질 때 이미 복선을 안고 있다. 매력의 이면은 단점이고, 칭찬의 이면에는 뒷담화, 친함의 이면에는 감정노동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시작하는 관계의 달콤함은 비용을 잊게 만든다. 휴대폰을 바꿀 때 다달이 할부금을 지불해야 하는 고통보다 매끈한 휴대폰의 옆 라인이 먼저 보이는 것처럼. 


'나'라는 인간과 벌써 삼십몇년을 같은 육체 속에서 살다 보니 이제 이 녀석이 관계를 맺는 방식이 어느 정도 보인다. 이 녀석은 뒤를 생각하지 않고 빠져든다. 마치 비용이 없는 것처럼, 내일이 없는 것처럼. 비용청구서가 날아올 때가 되면 이 녀석은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한다. 감정은 체불된다. 아주 그 관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모든 경우, 본질적으로 이 녀석은 관계를 귀찮아 한다. 그리고 관계가 필요할 때는 관계를 찾는다. 


어쩌면 제 멋대로인 '이 녀석'이 남긴 흔적은 부적절한 인간관계들과 이미 끝나버린 관계의 파편들이다. 물론 제도가 맺어준 관계인 경우 그럭저럭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제도의 힘으로 붙들어주지 않았더라면, 그 관계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세상이 너 혼자 울게 될 것이다.'


이 녀석이 가지는 관계의 한가지 특징은 지금 이 녀석이 하는 것처럼 관계를 '분석'한다는 점이다. 그는 필요이상으로 관계를 생각한 나머지, 관계가 주는 이득, 관계가 주는 손실, 관계를 잃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관계과잉은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들을 헤아리고 있다. 다 부질 없는 짓이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신경 끄기의 기술'. 결국 무엇을 선택해서 집중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어쩌면 이 녀석은 '가족'과 '일' 밖에 그 무엇도 이 녀석의 안으로 침범하는 것을 싫어한다. 남의 결혼식에는 갈 수 있지만, 생일파티에 가는 건 귀찮다. 그렇기 때문에 '귀찮음'을 담보로 형성되는 그런 유형의 관계에는 이 녀석은 상당히 부적합하다.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은 본능적으로 계산해서 알아차리고 바로 돌아설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어쩌면 이런 삶도 피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덜 생각할 수 있는 성격이었다면 조금 더 나았을까, 하고 생각하고, 또 그마저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판단해버린다. 


한가지 이 녀석에게 희망적인 사실은 이제서야 본인의 스타일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관계에 너무 섣부르게 다가서고 섣부르게 지친다는 사실을 많은 관계들이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누구보다도 전화해야 할 곳이 많지만, 누구와도 길게 전화할 수 없는 그대에게 필요한 것,

조금이라도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어쩌면 우리는 철저하게 남일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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