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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Jan 21. 2018

서양철학과 불교가 믹스커피처럼 녹아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서평

기사단장 죽이기를 겨우 다 읽었다. 

여러 의미에서 대단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학 이후 내가 1200쪽이 넘는 장편소설을 다 읽은 게 처음이 아닌가 싶다. 

처음 유즈와 이혼해서 시골로 내려갈 때까지만 해도 대체 이 소설을 어떻게 끌고 가려나 싶었는데 계속 인물이 나오고, 이야기가 나오고, 그러다가 1200페이지가 훌쩍 넘어갔다. 


나이가 들수록 하루키의 소설은 더 농익어가는 듯. 베드신은 좀 더 부드러워지고 이야기는 구렁이 담넘어가듯 매끄럽다. 

모든 이야기는 이 이야기 안에서 마무리 된다. 

그런데 소설이 주는 교훈은 “인생은 그다지 확실한 게 없다”는 정도가 되실 것 같다. 

분명 비트겐슈타인을 차용한 문장이 있었다. 수리부엉이에게는 비가 오나 비가 오지 않거나 중요치 않다. 정확히 비트겐슈타인님께서 논리철학논고에서 들었던 비유이다. 

아마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닌가 싶다. 

밤만 되면 나타나는 수리부엉이가 바로 해질녘에만 나타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아닐까. 

근데 그 부엉이는 비트겐슈타인의 격언을 읊고 있다. 또 한가지, 마지막 누가 누구의 눈을 잠깐 가려주는 장면이 있는데(스포일까봐 추상적으로 씀) 이 장면은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의 첫 머리에서 나오는 장면과 거의 유사하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 보지 말라는 거다. 

최인호의 “길 없는 길”은 불교 이야기를 쓰기만 했지 녹여내질 못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에는 불교와 서양철학이 커피믹스처럼 잘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제목부터 “이데아”와 “메타포”이니 오죽 했으랴. 

역시 매일 마라톤 뛰면서 체력관리하는 아저씨가 쓰는 소설은 읽을만 하다는 결론. 


“색체가 없는 다자끼 쓰쿠루”를 보면서 이제 하루키도 예측가능한 소설을 쓰는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기사단장 죽이기”는 생각보다 의미와 재미, 문학적 완성도(그게 뭔지 잘 모르지만)가 농익었다는 생각이 물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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