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를 위한 채찍질
내 컴퓨터 안에는 아직 태어나지 못한 수많은 원고들이 울부짖고 있다. 그들이 울부짖기 때문에 나는 그 폴더를 열어볼 생각조차 잘 하지 않는다. 열어보는 순간, 그들이 아직 태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There are a lot of scirpts unborn and crying in my computer. As they are crying, I daren't open up the files. I feel sad when I just come up with the idea that I haven't finished them.
다들 마찬가지려나.. 여하간 나는 긴 글을 쓰다가 실패해본 경험이 많다.
Are you like me? By the way, I have a lot of experiences of failure in writing a long script.
긴 글이라고 하면, 직장에서 쓰는 보고서들은 다 빼고, 지금까지 석박사 논문 각 1개씩, 단행본 2권을 썼다.
I also have a successful experience too. I have written two books, two dissertations and some research papers.
사실 기획으로 따지면 5권은 했었던 것 같고.. 그 중 몇 권은 원고지 2-30페이지씩 진도가 나가다가 중단되었다. 4-5페이지씩 쓰다가 바다에 이르지 못하는 강처럼 중간에 사망한 원고도 많다.
I planed to write more than 5 books. Some of them are stopped after writing about 20 pages. Also, there are other tiny little scripts unpublished.
처음부터 누가 이걸 좀 알려줬다면.. 하는 팁이 몇 가지 있다. 긴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아니면 긴 글 쓰기, 혹은 책 쓰기, 혹은 논문 쓰기를 앞두고 있는 분들에게 아마도 필요할 수도 있는 팁을 생각해보았다.
From the experience, I got some tips that I wish someone would have told me before. If you have to write a long scipt, you might as well get them.
가장 중요한 사실,
이건 지금도 원고를 끝내지 못하는 나를 위한 팁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칫 처음부터 긴 글을 쓰려고 한다. 일단 논문 같은 것을 시작하려면 심리적 압박이 장난이 아니다. 특히 석박사 논문라면 한 100페이지는 써야 할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쓰지...? 첫 문장을 10번씩 고민하고 다시 쓰고, 지우고 다시 쓴다. 이렇게 힘을 빼면 오래가기 힘들고, 자칫 잘못하면 늪에 빠진다. 이 때 필요한 생각은 긴 글은 짧은 글의 집합일 뿐이라는 점이다. 만약 여행기라면 에피소드 40개 정도가 모이면 그냥 책이 된다. 그 에피소드 40개가 하나의 주제를 가리켜야 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 에피소드는 나름대로 내적 완결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긴 글을 쓰는 사람일 수록,
"짧은 하나의 글을 잘 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피소드를 하나씩 쌓아나간다. 이미 완성한 글은 당분간 손대지 않는다. 앞으로 나간다. 나간다. 그렇게 지루하게 초고를 쌓아나가야 긴 글이라는 것을 쓸 수 있다.
이것도 너무 중요한 팁이다. 긴 글을 쓸 때일 수록 관성의 힘이 중요하다. 영어공부나, 운동 모든 게 마찬가지이다. 처음엔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몸에 익지 않아 있기 때문에, 평소에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평소 쓰던 글과 다른 글을 쓰면 막힌다. 이 때, 그냥 태연하게 계속 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원고를 더 잘 쓰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정말 단순한 원리로 글 쓰는 근육이 붙어가면서 더 자유자재로 글에 생각을 담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평소에 노래 잘하던 사람도 사람 많은 곳에서 갑자기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긴장하고, 무대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듯,
긴 글을 쓰는 데에도 글 쓰기에 몸의 신경과 근육이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두르지 말고, 정신과 시간을 낭비하지말고, 계속 써야 한다.
글은 고치고 줄이는 작업이 반이다. 이 때야 비로소 진정한 고민이 시작된다. 글을 쓰는 일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디지타이징(digitizing)하는 작업이었다고 한다면, 글을 고치는 것은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글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 때 정말 필요한 것만 남기고 버린다. 잘 버리고, 좋은 문장을 남기는 것이 핵심이다. 어떤 소설가가 그랬다. 많이 쓰고, 조금 발표하는 것이 좋은 소설가라고... 아니다. 엄청 많이 쓰고, 많이 발표하는 것이 좋은 소설가다.
고치는 방법은 단순하다. 읽어보고 좀 더 "잘 읽히도록" 고치라는 것이다. 심심하면 소리내어 읽어보기도 하고, 프린트해서도 읽어보고, 멀리서도 읽어보고, 가까이서도 읽어보고, 더 좋은 표현을 찾는다. 독자에게 불필요한 혼돈을 주는 문장을 삭제한다.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 곳이 있는지 살펴본다.
편집자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행운이다.
어폐가 있는 말이지만, 논문에서는 지도교수님이 편집자 비슷한 역할을 해준다(해주어야 한다.. 해주어야 할까?). 그러나 긴 글은 결국 자기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자기가 가장 예리한 눈으로 자신의 원고를 상향시켜야 한다. 나중에 자기가 발견 못한 오타를 발견하고 그 페이지를 찢어버리고 싶은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면 고칠 때만큼은 완벽주의자 근처라도 가야 한다. 완벽주의는 언감생심, 글 쓰는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거 역시 중요한 팁이다. 왜냐하면, 글을 한번 손에서 놓으면 잡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논문만, 혹은 글만 붙잡고 쓴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가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분 낸다고 며칠 놀아버리면, 다시 글을 쓸 때 힘들어진다. 생업에 바빠서 일주일 논문/긴 글을 쳐다보지도 못했다면, 글을 쓰기는 커녕, 기존에 무슨 글을 썼는지 읽는 시간만으로도 하루를 보내야 할지 모른다. 매일 많이 쓰지 않아도 좋다. 자기 글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쭉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글을 손에서 놓는 순간, 당신이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이건 정말 나에게 하는 말이다.
제발 손에서 글을 좀 놓지 마라.
예전에 주말만 되면 강의를 해야 했기 때문에 금요일 밤이 되면, 항상 커피숍에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편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수다를 떨었다. 나는 거기에서 몇시간이고 앉아서 글을 썼다. 아니, 써야만 했다. 다음날 수업을 해야 했으므로..
나는 어떤 특정한 장비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 장비가 있으면 글이 더 잘 써지는 것만 같다. 그래서 요즘에는 그 장비를 노트북과 함께 들고 다닌다. 장비가 좀 커서 가방 안에 잘 안 들어간다. 그래도 가지고 간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비로 써야 글도 더 시원스럽게 만든다.
거꾸로 이럴 수도 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장비를 산다. 예를 들어, 유독 맥으로 글이 잘 써지는 사람은 맥을 구매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처럼 소박하게 키보드가 좋아서 조금 비싼 것으로 사서 가지고 다니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하다 못해, 예쁜 카페를 찾아서 거기에서만 글을 쓰는 것도 방법이다. 하다 못해 초콜렛을 사다놓고, 글을 한시간 쓸 때마다 하나씩 먹는 것도 방법이다.
혹, 이런 경우도 있다.
좋아하는 초콜렛만 먹고, 글은 안 쓴다든가,
키보드로 글을 쓰긴 쓰는데, 긴 글이 아닌 잡글을 쓴다든가(지금이 딱 그런 경우다),
카페에 갔는데, 뭔가 사정이 생겨서 글을 못 쓰는 경우...
그래서 억울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다. 이렇게 어떤 이유로 공친 날이 있으면 다음 날은 어찌어찌 원고가 또 써진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쓰기 환경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의외로 환경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기로 한다.
긴 글을 쓰는 모든 분들께 응원의 말씀을 드린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한 가지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다.
긴 글을 다 쓰고 나면 분명 후련해질 것이다.
긴 글을 쓰지 않았을 때는 절대 느끼지 못하는 기분이다.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수능친 것 같은 그 느낌?
여러분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