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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Jan 04. 2020

책읽기는 취향? 독서는 뇌 훈련 기법

남세동 대표의 "책읽기는 취향"이라는 생각에 대한 생각

December 28, 2019 at 5:22 PM
바로 책을 읽는 능력이 지능의 대단히 중요한 지표중에 하나라는 신화요. 책에 대한 신화는 깨지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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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요놈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저는 아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통찰 있는 글을 많이 쓰는 남세동 대표님이 위와 같은 코멘트를 했는데, 며칠동안 머리 속에서 이 생각, 저 생각 하게 만드는 글이었습니다.(비판적인 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인사이트를 공유해주신 남세동 대표님께 먼저 감사 말씀 드립니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독서를 안해도 될까? 


먼저 좀 다른 간단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해보겠습니다. 

"앞으로 좋은 번역기가 나와서 다 동시통역 해준대"(그러니까 영어 공부 할 필요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을 자주 봅니다. 그러라고 하지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영어을 할 줄 아는 능력은 앞으로 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어떠한 경우에도 번역기는 영어능력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고, 영어를 잘 하는 능력은 (번역기가 우리의 말을 대체하지 못한 지금보다도)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회뜨기를 책으로 배울 수 있을까? 

남세동 대표의 말을 축약해보면, "유튜브, 인공지능 등 지식을 얻는 여러 채널이 생길 것이기 때문에 꼭 책으로 지식을 얻을 필요는 없다"는 취지인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 아니 많은 정도로 사실이며, 현재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s_Cv0pHHW4g

예를 들어 "회 뜨는 법"을 글로 배운다고 생각해보세요. 머리를 잡고, 도마에 눕힌 다음에 척추를 끊고, 가시의 방향과 일치하게 칼을 넣어서... (쓰고 보니 엄청 잔인하네요.. 역시 저는 vegan)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보여주기"입니다. 위 동영상을 참고하세요. 

(참고로 징그러운 거 싫어하시는 분은 보지 마세요. 비건인 저는 잠깐 봤다가 마음이 아프네요.)


사실 이게 예전엔 잘 안됐지요? 예를 들면, 회를 잘 뜨는 사람이 글을 잘 쓰고, 그림까지 잘 그려야 회 뜨는 방법을 여러 사람에게 전파할 수 있었겠지요. 지금은 폰 하나면 끝입니다(물론 동영상 편집 기술도 글쓰기 못지 않게 대단하고 또 중요한 기술이긴 하죠).


인공지능과 동영상이 발전하면서 이 "보여주기" 기능은 엄청나게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엄청나게 발전할 것이 분명합니다. 책의 기능은 엄청나게 축소되겠지요. 회 뜨는 것을 동영상 말고 책으로 배우려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동영상을 볼 때, 책을 볼 때 꼭 필요한 것이 이 놈이죠. 감각기관! 눈!

똑똑해지려면 책을 읽어야 할까, 아니면 동영상을 봐야 할까?

외국어와 마찬가지로, 만약에 누군가 "어떻게 하면 똑똑해질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면 "유튜브를 보지 말고 책을 읽으라"고 조언해주겠습니다. 책을 읽는 건 남세동 대표의 말처럼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가 있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기는 있거든요.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요. 


독서: 뇌훈련 도구

좀 지루할 수 있겠지만, 읽기와 쓰기에 대해서 잠깐만 생각해보겠습니다. 비트겐슈타인식으로 말하자면, 세상은 감각의 총체입니다. 데이비드 흄이 말한 것처럼 '감각의 재료들'(sensory data)들로 구성되어 있죠. 나무가 흔들리는 걸 볼 수 있고, 누가 나를 찌르면 아픔을 느낄 수 있으며, 아름다운 음악 선율에 감동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텍스트와는 상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많은 정보, 나아가서 세상의 이야기와 노하우들을 저장(save)할 여러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글'이죠.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쉽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코드화(encoding), 코드해석(decoding)의 과정을 거치게 되죠. 

(감각재료)-(인식-감각기관-뇌)-(텍스트-뇌-손)-(글)-(텍스트-눈-뇌)-(감각재료)

좀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읽기와 쓰기의 본질은 텍스트와 상관 없는 세상의 감각 정보를 텍스트라는 구식 디지털 매체로 저장했다가 다시 "텍스트 독해 능력"을 통해 꺼내오는, 쉽게 말하면 구닥다리 정보 전달의 방법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어느 정도는 "취향(preference)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취향으로 따지면, 아마도 책은 죽었다 깨어나도 동영상을 이기기는 힘들겁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요. 


아까 제 조언 기억하시나요. 요약하자면, "똑똑해지고 싶으면 책을 읽으라"는 건데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의 뇌를 디지털에 맞게 훈련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언어(language)라는 코드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높일 수록 우리는 행간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은 감각재료 안에 그것의 의미를 꽁꽁 숨겨놓거든요. 그리고 사람들은 "본심"을 숨기려는 방어기제도 가지고 있어요. 


본심을 파악하려면 다음과 같은 프로세스를 밟아야 합니다. 누구도 본심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진 않죠. 소통이 이뤄지려면 그 사람이 주는 정보를 통해서 본심을 읽어야 합니다. 글을 보면서 행간을 읽어야 하는 것과 아주 비슷한 이치이지요. 

사람의 본심을 읽는 프로세스는 책 읽기와 닮아있습니다. 


나는 너를 이해하고 있을까? 

우리는 매일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 같지만, 무엇도 '본심'을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사실 그건 우리가 "해석 능력"을 가지고 찾아가는 수 밖에 없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감각 재료들 밖에 없습니다. 그 감각재료들 가지고 해석해서, 세상을 해석하는 틀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는 일은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행동하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한편으론 무책임한 얘기이지요. "행동" 해서 실패하면 누가 책임지죠? 그 조언을 한 사람이 책임지나요? 


우리에게는 생존을 위해 현명한 뇌가 필요합니다. 뇌를 훈련시키는 방법은 아주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수학 문제 풀기, 책 읽기, 동영상 보기, 악기 연주하기 등이죠. 

뇌를 훈련하고 싶으면 피아노를 연습해라. 
뇌를 훈련하고 싶으면 바디빌딩을 해라.
뇌를 훈련하려면 책을 읽어라.
뇌 훈련에 좋은 놈이죠: 운동 

다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이지요. 

뇌를 훈련하고 싶으면, 동영상을 봐라(?). 

미안하지만, 이 말은 성립하지가 않습니다. 아무 생각을 안하고 동영상을 보는 것을 가능하거든요. 동영상을 보면서 시청자는 그냥 뇌의 스위치를 꺼버릴 수도 있습니다.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칠 때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우리가 피아노를 친다고 했을 때 의미없는 음을 막 치는 것(뇌 스위치를 끄고)을 놓고, "피아노를 친다"고 말하지 않는다면요. 


맞습니다. 남세동 대표가 말한 대로 책 읽기는 그 중 하나의 방법일 뿐입니다. 

재미에 있어서는 동영상보다 떨어지지만, 뇌 훈련을 하는 용도로는 동영상보다 훨씬 낫습니다. 동영상은 문자에 호소하지 않고, 감각에 호소합니다. 동영상이 강력한 이유이지요. 


글은 문자로만 이뤄진 일종의 "컴퓨터 프로그램"입니다. 구식 컴퓨터 프로그램이죠.

 

남세동 대표도 코딩 몇 만줄 해보면 생각하는 게 달라진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던데, 맞습니다. 

글을 읽는 것도 정확히 같은 이치입니다. 


정리하면, 정보습득용으로 책은 구식 매체이지만, 유튜브보다 좋은 뇌 훈련 도구이다. 


주의: 독서를 많이 한다고 그에 비례해서 똑똑해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한 가지 덧 붙이겠습니다. 이 글은 "책을 읽어서 똑똑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책을 많이 읽은 바보가 없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정말 "뇌훈련"을 해서 보다 현명한 경지로 올라갔느냐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똑같이 아령을 들었다고 다 몸짱이 되는 것이 아니듯, 

독서한 시간이 자신의 뇌의 활성도를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책 세대이지만, 영상을 더 많이 봅니다. 아주 정직하게 말해서 요즘은 책을 읽는 것보다 영상을 마주하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내가 영상을 보는 속도보다 넷플릭스가 신작 영상을 만들어내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철저하게 드라마를 텍스트화해가면서 봅니다(공부차 미드만 봅니다). 영상을 본 것 만으로는 기억에 잘 남지도 않고, 그냥 흘러가기 때문이죠. 말 그대로 Let it go죠. 

동영상을 볼 때는 필기장을 띄워놓고 보면 좀 낫지 않을까요?

동영상을 보면서 뇌를 훈련하고 싶다면, 그냥 영상을 보면서 뭔가 자기의 이야기를 끄적여 보는데에서 출발해보라고 권해주고 싶네요. 그냥 영상을 보는 것보다는 뇌 훈련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고안한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면 대사도 더 기억이 잘 나고 극에 훨씬 더 몰입을 하게 되지요. 그냥 동영상을 흘려 보내는 것보다는 훨신 뇌에 도움이 되는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뇌다! It's brain!

아까 번역기 이야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저는 영어공부를 합니다. 아주 대단히 많이 한다고도 볼 수 없고, 영어를 잘 한다고도 볼 수 없지만, 시간 내서 매일 매일 합니다.  

저는 미국 사람이나 영국 사람과 진정한 소통을 하기 위해서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영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영어로 훈련된 뇌를 가지고 싶어서입니다. 소통은 그 다음 이야기이죠. 영어로 훈련된 뇌라면, 나중에 대화를 하더라도 좀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영어와 중국어가 되면 더 좋을 테고, 영어, 중국어, 불어, 일본어가 되면 더 좋겠죠. 


외국어로 여러분의 뇌를 훈련시킬지, 책으로 훈련시킬지, 아니면, 운동이나 피아노 치기로 훈련시킬지 그건 각자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단,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만으로는 뇌훈련이 안될 수 있습니다. 동영상은 재미로는 확실히 책보다 앞선 매체이지만, 뇌훈련 교재로서는 책에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냥을 안해서 육체적 힘이 덜 필요하지만, 체육관에 가서 보디빌딩을 일부러 하는 것과도 비슷하지요. 


재미로서의 독서

참고로, 책읽기에 중독되면, 동영상으로는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신세계가 펼쳐집니다. 재미 면에서도 결코 동영상 못지 않죠. 



어떤 방식이든 오늘도 여러분의 뇌가 성장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만 일하러 갑니다. 

쓸데 없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본 글에서 사용된 이미지는 https://pixabay.com/ 

사이트에 등록된 무료이미지이거나, 개인적으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저작권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For the pictures, I appreciate your image, which is great and insight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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