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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라기 Jun 13. 2021

300개 접시로 타이틀 획득하다.



단단히 앞치마를 조여 맨다. 고무장갑을 끼며 마음을 다진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마음속으로 수십 번 되뇌인다. 지난주 호된 신고식을 치렀으니 마음은 편했다.   

  

엄마와 친한 집사님이 교회 주방 담당 봉사자가 되었다. 설거지 인원이 부족하다는 하소연에 엄마는 나를 적극 추천했다. 나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우리 딸이 설거지 잘한다고 마음껏 데려다 쓰라는 말씀을 덧붙였다. 내가 언제 설거지를 잘했단 말인가? 집에서도 오빠에게 밀려 억지로 했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물건이란 말인가? 어떻게 사람을 물건처럼 양도 할 수 있단 말인가? 속으로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난 엄마와 집사님 대화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감방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난 마치 죄수처럼 아무 소리 없이 반지하 칙칙한 주방 복도를 지나 부엌으로 들어가는 좁은 문을 통과했다, 설거지 대야가 앞에 놓였다. 발에는 어두운 회색 족쇄가 무겁게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퐁퐁 짜는 소리는 찰깍하는 감옥 문을 닫는 소리처럼 들렸다. 매주 예배가 끝나고 주방 설거지통 앞에 섰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놓고 가는 접시는 계속 쌓여 갔다. 앞뒤로 쓱쓱 싹싹, 수세미는 쉴 틈 없이 움직였다. 닦아도 닦아도 접시는 줄지 않았다. 깊은 한숨이 올라왔다. 순간 누군가 내게 구원의 손길을 건넸다.     

“힘들지 않니 도와줄까?” 바로 그때,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른 대답이 나의 대답을 가로챘다. “도와주실 필요 없어요. 쟤는 혼자서도 잘해요.” 진정 나의 친엄마인가? 설거지 지옥에 있는 딸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원망의 순간도 잠깐, 어떻게든지 우선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지난주처럼 미련하고 무식하게 닦다가 황금 같은 주말 오후 시간은 없어진다. 똑같은 실수를 또 반복할 수는 없었다. 주방에 보이는 대야를 모두 꺼냈다. 깨끗한 물이 담길 수 있도록 호수를 통에 넣었다. 물이 채워지기 무섭게 바로 옆 대야도 들이밀었다. 있는 대야마다 모두 물을 채웠다. 양말은 흥건하게 젖어 들어갔다. 기분 나쁜 축축함에 몸서리쳐졌지만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시뻘건 고무장갑을 낀 나의 손을 통과한 접시는 깨끗한 물이 담긴 대야로 던져졌다. 그곳에서 다시 옆으로 옆으로 헹궈져 커다란 소쿠리 안에 쌓여 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허리에 통증이 오고 손목에 감각이 없어질 즈음 ‘수고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주방을 급하게 빠져나왔다.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으로 한 줄 빛이 강하게 들어왔다. 천국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었다.     


1년이란 시간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매주 닦아냈던 하얀색 뷔페 접시가 300개가 넘는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이 놀러 다닐 때 난 주방에서 설거지 신공을 발휘했다. 운동선수가 기록을 갈아치우듯 설거지 시간을 단축해나갔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설거지 기계를 사야 할 거 같다는 친구들 소리에 코웃음 쳤다. 4식구 설거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족 모임이 있을 때도, 단체 수련회에서도 난 설거지 당번을 자처했다. 세상 설거지처럼 쉬운 것이 없었다. 결혼 초 설거지가 제일 힘들다는 친구들의 하소연을 들으며, 어느 순간 내가 설거지 달인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년이란 시간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매주 닦아냈던 하얀색 뷔페 접시가 300개가 넘는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이 놀러 다닐 때 난 주방에서 설거지 신공을 발휘했다. 운동선수가 기록을 갈아치우듯 설거지 시간을 단축해나갔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설거지 기계를 사야 할 거 같다는 친구들 소리에 코웃음 쳤다. 4식구 설거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족 모임이 있을 때도, 단체 수련회에서도 난 설거지 당번을 자처했다. 세상 설거지처럼 쉬운 것이 없었다. 결혼 초 설거지가 제일 힘들다는 친구들의 하소연을 들으며, 어느 순간 내가 설거지 달인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공부를 참 잘했다고 한다. 그 시절 외할머니는 공부하는 딸에게 설거지 한번을 시키지 않았다. 집안일과 담을 쌓고 살다 결혼한 엄마에게 설거지는 가장 큰 스트레스가 되었다. 딸인 나에게 설거지 스트레스를 물려주지 않으려고 고등학교 졸업선물로 설거지 달인이라는 타이틀을 선물로 준 것이다. 설거지 달인의 타이들을 선물 받은 사람이 또 있을까? 이상하게 이 타이틀은 내 딸에게도 대물림해주고 싶어 오늘도 딸의 손에 고무장갑을 끼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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