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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라기 Oct 14. 2021

500권의 책을 썼다고?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 : 강진 #2- 다산초당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공부하며 축적해갔던 사유의 시간만큼은
머리가 아닌 몸에 새겨진다.

                                                        <인생의 밀도> 중에서.



"선생님께서 차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차나무가 많은 산에 작은 집이 하나 있습니다.

 그곳에 선생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선비가 말한 산은 차 나무가 많아 '다산'이라 불리던 곳이었다.

산속에 있던 작은 집은 다산초당(茶山草堂) 이 되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던 정약용은 다산이라 불리게 되었고 이것은 그의 호가되었다.

이곳 다산초당에서 정약용은 백성을 가르치는 관리자가 지켜야 할 가르침에 대해 정리한 [목민심서]를 쓰는데 온 힘을 바치게 된다.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병조참지. 형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다시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처음에는 강진읍 동문 밖 주막과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 집 등에서 8년을 보낸 후

1808년 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해배[解配]되던 1818년 9월까지 10여 년 동안을 다산초당에서 생활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을 하였다.

다산의 위대한 업적이 대부분 이곳 다산초당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선생님, 저는 둔하고 앞뒤가 막혀 있으며 답답한 사람입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가 있다.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는데 민첩한 사람은 소홀한 것이 문제로다.

둘째 : 글 짓는 것이 날래면 글이 들떠 날리는 게 병통이다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친 것이 폐단이다.


대저 둔한데도 들이 파는 사람은 그 구멍이 넓게 되고, 막혔다가 뚫리면 그 흐름이 성대해진다. 답답한 데도 꾸준히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하게 된다. 뚫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네가 어떤 자세로 부지런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을 늙어 죽을 때까지 되새기며 학문의 길을 살아간 이는 다산의 제자 1호 황상이었다. 신분과 환경으로 세상에서 출세를 하지는 못하였지만 그가 쓴 시를 추사 김정희가 감탄하여 직접 황상을 만나러 왔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를 스승으로 모시고 살았던 그의 삶은 그가 쓴 시로써 말해 주고 있는 듯 하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백련사의 명승 아암 혜장 선사를 만나기 위해 오가던 사색의 길이다. 길이는 800m이며 도보로 30분 정도 소요된다. 길주 변에는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어우러져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경사도 완만하여 걷기 코스로 제격이다. 오솔길 중간 지점에는 해월루가 있어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목민심서』 서문에서 정약용은

 “군자가 학문하는 것의 절반은 수신(修身) 하기 위함이요

절반은 목민(), 즉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것인데 요즘 지방 장관이란 자들은 자기의 이익만 추구하는 데 바쁘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곤궁하고 피폐해져 떠돌다가 굶어 죽은 시체가 구렁텅이에 가득하건만 지방 장관 된 자들은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 살찌우고 있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여러 책에서 목민에 관한 사적을 가려 뽑고 직접 듣고 본 여러 가지 폐단과 소견을 적었음을 밝혔다.


다산초당에서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를 비롯한 500여 권에 이르는 책을 저술하게 된다.  

(『목민심서』는 다 써 갈 무렵인 1818년에 유배가 풀려 고향으로 돌아가 완성했고 『흠흠신서』는 그다음 해에 완성했다고 한다)

하루에 다산은 몇 편의 글을 썼던 것일까? 

솔직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지만 일주일에 서너편 쓰는 것도 벅차다. 

매일 쓴다는 것은 너무 큰 부담이라 생각되는 것도 사실이다. 

정약용 선생은 매일 몇편의 글을 쓴 것일까? 

500여 권의 책을 쓸 수 있었던 그의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강진 사의재에 다녀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책을 빌렸다.

반복되는 실수를 하지 않게 배우는 역사. 그의 책을 읽으며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저술활동 등 자신의 이념을 위하여 전 삶을 바친 다산 정약용.

역사이래 최고의 학자이며 사상가요, 시인이고 교육자였다.


한문으로 쓰여 있는 그의 글들을 풀어놓은 책이다. 어렵다. 하나 다산의 글 귀 하나하나에서 느껴진다. 학문에 대한 그의 생각과 깊이를...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데 도움을 주고자 끊임없이 공부했던 그의 마음을...


남쪽으로의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다산을 만날 수 있는 곳. 강진을..

올해가 가기 전 꼭 다시 찾고 싶은 곳은 남해 강진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 자료 : 강진군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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