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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라기 Jul 17. 2021

시어머니가 주신
초록색 돌멩이의 정체




신혼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로 기억한다. 시어머니가 양손에 검은 봉지들을 잔뜩 들고 오셨다. 많은 봉지 중에서 무거워 보이는 커다란 봉지에 유독 시선이 갔다.

“이것부터 냉동실에 집어넣어라”

비닐봉지 안에는 초록색 돌멩이들이 열댓 개 들어 있었다. 묵직했다. 냉동실에 다 집어넣을 때까지도 난 돌멩이들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두고두고 천천히 먹으라는데 도대체 이놈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매생이! 그것도 모르나?” 

‘매생이? 파래같이 생긴 거?’

서울에서 태어나 한강을 바다처럼 보고 자란 나에게 매생이는 참 낯설었다. 친정엄마가 매생이 요리를 하시는 걸 본 기억도 없었다. 어떻게 먹는 것인지도 몰라 당황스러웠다.     


새해 첫날 초록색 떡국이 상에 올라왔다. 매생이 떡국이었다. 초록실 같은 매생이는 그릇 속에서 자신의 머리를 풀어헤친 듯 엉망진창으로 뒤엉켜 있었다. 찐득하고 물컹할 것 같아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떡국은 자고로 뽀얀 고기 육수에 말랑말랑한 떡, 하얗고 노란 마름모꼴 지단이 얹어 있어야 했다. 진한 초록빛을 띠고 있는 매생이 떡국은 정말 아이들 만화에 나오는 괴물 수프처럼 보였다. 그제야 아직도 냉동실에 매생이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이렇게 해 먹어야 하는 거구나.’ 생각은 들었지만 실천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해산물이 가득한 명절 상은 낯설었다. 비단 매생이뿐만이 아니다. 여수가 고향이신 어머님 식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친구들이 가득했다. 해삼, 멍게, 개불. 나머진 정말 모르겠다. 식탁에 바다를 담아 놓은 것 같았다. 나를 제외한 모든 식구는 세상에 이런 맛있는 음식은 있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기뻐했다. 하지만 나는 오랜 시간 끓여진 고기육수의 뽀얀 떡국이 그리웠다. 시댁에서 해산물이 가득 들어간 떡국을 먹고 온 다음 날이면 뽀얀 떡국을 다시 끓여 먹곤 했다.     



대전으로 이사와 코로나가 터지고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보낼 수 없게 되었다. 4 식구만을 위한 명절 상차림 장보기에 나섰다. 뭘 살까 고민하던 나에게 해산물 코너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매생이가 눈에 띄었다. 파래 아니고 매생이가 확실했다. 가늘고 기다란 실 모양이 서로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 씻기도 불편할뿐더러 미끄덩미끄덩 미꾸라지처럼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나가 버리는 이 녀석들이 이제는 정겹게 느껴졌다. 시어머니와 10여 년을 보내며 다양한 매생이 요리를 맛본 덕이었다. 깨끗이 씻은 매생이를 봉지봉지 담아 냉동실에 넣으며 신혼 시절 초록 돌멩이가 생각나 웃음 지었다.     




이제 시장에서 이 녀석을 만나게 되는 날에는 주저 없이 담고 있는 나를 본다. 부침가루 반죽에 매생이를 살짝 풀어 반죽하여 바삭하게 부치면 매생이 전이된다. 넉넉히 부쳐주지 않으면 아이들의 원성을 살 만큼 맛이 좋다. 제철 생굴을 듬뿍 넣어 끓이다가 팔팔 끓어오를 때 매생이를 넣어주면 매생이 국이 된다. 아이들 좋아하는 계란말이 가운데에 매생이를 넣으면 영양간식으로 정말 좋다. 파래처럼 무치면 밥반찬이 되고, 흰 죽에 살짝 풀면 아픈 아이들 입맛을 살리는 영양식이 된다.



매생이를 보면 반갑게 고르고 있는 나를 본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입맛도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았던 겨울철 바닷가 지역에 사는 분들에게 칼슘과 무기질이 풍부한 매생이는 최고의 보양식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저칼로리, 저지방 식품으로 다이어트 제품으로 추천되는 걸 보니 좋긴 좋은가 보다. 올겨울에도 짙은 초록빛의 매생이 친구들이 기다려진다. 냉동실에 초록색 돌멩이들이 쌓여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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