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냠냠서재 / 영웅, 베프, 그보다 중요한 '내 마음'을
★ "청소 너무 열심히 하면 키 안 큰대. 얼른 나와." (p.92)
★ 친구 사이가 이렇게 힘든 거라면 차라리 지은이도 다미도 없는 곳에서 혼자 지내고 싶었다. 그럼 마음이 편할까? 모르겠다. (p.153)
★ "어떡할 거야? 싸워서 찾아올래, 아니면 그냥 물러날래?" (p.210)
춤을 좋아하는 초등학생 '은하'는 학교에서 인기 많은 '다미'와 친해집니다. 과거에 친한 친구와 멀어지고, 그 친구의 험담으로 외롭게 지내야만 했던 은하는 다미의 의견이라면 무조건 동의할 정도인데요. 그러던 중에 은하는 다미가 싫어하는 '지은'이라는 아이와 같은 모둠에 배정됩니다. 은하는 몇 년 전의 자신과 비슷하게 혼자 지내는 지은이를 멀리 대하려 하지만, 다미의 이간질에도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지은이와 우연히 가까워지면서 점점 생각이 바뀌게 되는데......
<몬스터 차일드>로 탄탄한 필력을 선보이셨던 이재은 작가님의 신작, <마이 가디언>입니다. 이전 작품을 상당히 재밌게 읽었던 탓에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쓰셨을지 기대가 많이 되었는데요. 이번 작품에서는 '친구관계'를 주제로 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은근한 따돌림과 서열 관계를 디테일하게 묘사해 주셨습니다. 흔히 왕따 같은 단어를 들으면 저 같은 경우에는 주먹질과 같은 '직접적인 폭력'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작품의 학생들은 험담을 통해 누군가를 고립시키거나, 인스타를 통해 누군가를 저격하는 등 은밀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최근의 뉴스에서 이와 같은 사례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볼 때, 이 작품은 요즘 시대의 학교 내 인간관계를 상당히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다미에게 종속된 주인공 은하의 심리가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은하는 시작부터 '다미의 말은 나에게는 꼭 따라야 할 법이나 마찬가지(p.17)'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다소 맹목적일 정도의 동경심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맹목적인 동경은 '싫은 내색을 했다가 혹시나 다미가 나를 떠날까 봐(p.23)'라는 언급을 통해 배경이 제시됩니다. 지은이와 친해졌다는 이유로 다미가 자신을 멀리 대하자, 은하는 자신이 잘 먹지도 못하는 매운 마라탕을 다미에게 맞춰주느라 먹게 되고, 게다가 자신이 맡았던 댄스 무대의 센터를 넘겨주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현실적이면서 디테일한 장면들은 그간 학교 폭력을 배경으로 한 미디어에서 보여주던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묘사는 없기에 크게 불쾌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실제로 있을 법한 친구 관계에서의 서열화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예시로, 다미와 지은 중 마음속에서 다미를 택하고자 할 때도, 은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다미'여야 한다'(p.94)고 이야기하고, 다미랑 싸운 일에 대해 스스로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절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 버렸다.'(p.150)라고까지 표현합니다. 이렇게 자잘한 문장에서부터 은하가 다미에게 종속되어 있는 심리가 디테일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다미와 은하 간의 갈등 묘사에만 집중했다면 결과적으로 높은 점수를 매기지는 못했을 겁니다. 물론 이 책은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따돌림'의 현장이 주는 부담을 줄이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합니다. 예시로 작품에서 '지은'이라는 인물은 주제 의식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줌과 동시에, 은하와 지은의 사이를 이간질시키려는 다미에게 "넌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별로구나?"(p.167)라고 일갈하는 등 대등하게 맞서 싸우고 있기에 다미와 은하 사이의 종속 관계에서 독자가 느끼는 부담은 지속적으로 덜어집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남의 시선과 평가를 맹목적으로 따라감으로써 발생하는 불행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준 후, 주인공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고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과정을 그에 걸맞게 통쾌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디테일한 전반부에 비하면 다소 축약되어 있어 조금 아쉬움이 따릅니다만, 오히려 빠른 전개를 통해 은하의 행동이 독자들에게 적절히 통쾌함을 선사해주고 있었으며, 동시에 인간관계에 있어서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은하는 다미와의 관계로 인해 엄마에게 전학을 가고 싶다고까지 이야기하게 됩니다. 만약 작가님이 기존의 현실적인 묘사에만 집중하셨다면, 이후의 전개는 은하의 어머니가 담임선생님과 이야기하여 타의적으로 해결했거나, 아니면 정말로 은하가 전학이나 자퇴를 생각하는 식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작가님이 택한 전개는, 그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은하가 스스로 맞서 싸우는 전개'였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힌트를 얻어 스스로 각성하기를 결심한다는, 실로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품을 법한 이유로 은하가 통쾌하게 자신을 되찾아나가는 모습은 성인 독자인 저로서도 읽으면서 큰 카타르시스를 얻었네요. 이 부분은 실제로 책을 통해 확인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스스로의 마음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얼핏 보면 뻔한 주제를 현실적이면서도 상당히 독특하게 전달해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비현실적인 존재도 등장하지 않고, 그렇다고 주인공을 위기에서 직접적으로 구해주는 영웅(hero)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위기에 빠진 주인공이 자기 자신을 지키는 수호자(guardian)로 각성할 뿐입니다. '내가 나를 지킨다'는 이 책 주제 의식은 '가디언스'라는 직접적인 명칭을 통해 다소 투박하게 전달되는 지점도 있는 한편, 작품 곳곳에 치밀하게 녹여져 있기도 합니다. 오빠와의 상담에서 오빠가 툭 던진 "몰라. 네 마음대로 해."라는 말에 대해 은하가 "그렇지? 마음대로 해도 되겠지?"(p.102)라고 얘기한 부분은, 각자의 마음을 중시하자는 작품의 주제의식을 가벼우면서도 센스 있게 제시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주제 의식이 결론적으로 '그래도 모두들 친하게 지내야지'라는 식의 우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한 독특합니다. 오히려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에게 억지로 맞추어나가면서 마음을 다치는 일을 지양함으로써, 독자 어린이들이 현실의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얘기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러한 독려는 댄스 학원의 선생님으로 과거에 은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송 쌤'이 '내 입맛에 딱인 과자를 양껏 먹다 보니, 어느새 아무렇지 않더라'(p.226)라는 말을 주인공에게 건네는 장면에서 또한 간접적으로 제시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은하와 지은의 관계가 '베스트 프렌드'도 아니고 '영웅과 구원자'의 관계도 아니라는 점도 독특하면서 탁월합니다. 지은은 은하의 각성에 계기를 주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은하를 구해주지는 않습니다. 또한 둘은 서로 우연히 좋아하는 가수가 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계기로 친해지려 했지만, 알고 보니 그 외에 취향이 대부분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같은 팬클럽' 정도로만 남기로 합니다. 단짝이 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같은 가수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롭지 않다는 점에 만족합니다. 진정한 단짝을 밖에서 찾아나가는 과정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흐름은 독특하면서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요컨대 이 책은 왜곡된 우정을 지양하고, '혼자여도 괜찮으니 마음을 다치지 말라'는 충고를 통해 각자가 스스로의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독려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어린이는 물론이고 인간관계 속에서 고민하는 어른들도 읽어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네가 진짜로 원한다면, 싸워서 가져와." (p.210)
<마이 가디언>이라는 제목과 청량감 넘치는 표지를 보고, 처음에는 위기에 빠진 주인공을 수호천사 같은 비현실적인 존재가 도와주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추측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상술했듯 비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해서 주인공을 구해주는 일은 없으며, 주인공의 각성에 계기를 부여하는 인물은 있으나 직접 구제해 주는 '영웅(hero)'은 없다는 점에서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주인공이 스스로의 수호자(guardian)가 되어 싸우는 이 이야기는,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뿐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뻔하지 않고 재치 있게 전달해 주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족으로, 읽으면서 자꾸 '다미'라는 인물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부모 이야기를 하기를 꺼리는 장면이나 절교 선언을 하며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는 듯한 장면에서, 이 학생이 온전히 악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기보다도 친구라는 개념을 잘못 배운 일개 어린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다미가 기존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부분 또한 지극히 현실적입니다만, 이러한 다미의 잘못된 친구 관념에 대해서도 어떻게 올바르게 인도하면 좋을지 저 같은 성인 독자들은 한번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작가님께서 후속작을 쓰신다면 이런 쪽으로도 한번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들 정도로, 이번 작품은 팬이 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습니다.
( * 이 서평은 이지북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마이 가디언> 사전 서평단의 활동으로 솔직한 감상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