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도서관 / 샘 톰슨, <울프스텅>
★ 그래, 사일런스. 사일러스는 ‘사일런스’라는 이름이 오히려 자기한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굳이 말하려 애쓰지 않고 침묵할 수 있으니까. (p.14-15)
★ 늑대들은 슬픔과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여우들에게 배우기 전에는 무엇이 슬픔이고 두려움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 뿐 아니라 느낄 수도 있었다. (...) “우리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슬퍼하고 두려워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발 알려 줘.”(p.54)
★ “사과는 인간들끼리 하는 거야. 늑대한테는 사과해 봐야 아무 소용 없어.” (p.145)
학교에서 말을 잘하지 못하던 '사일런스'는 어느 날 길에서 다리를 다친 늑대 '아이센그림'을 만나게 됩니다. 그를 돕는 과정에서 늑대를 쫓아오는 여우 '레이너드'와 대립하게 된 사일런스는, 잡혀간 새끼 늑대를 구출하기 위한 모험을 떠나게 되는데......
샘 톰슨의 <울프스텅>입니다. 이 작품을 읽게 된 계기는 책 소개에서 레이너드의 말을 인용한 문장이 상당히 인상 깊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의 말을 배움으로써 여우들이 권력을 갖고, 이로 인해 늑대들이 점차 영역을 잃어가게 되었다는 초반부의 배경은 상당히 재밌게 읽었습니다. 나름 신사적인 대응을 한다고 사일런스가 출입을 허락하기 전까지 집 앞에서 대기하는 레이너드, 그리고 말을 배움으로써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과 두려움을 학습한 아이센그림 등등 '이름을 붙임으로써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일종의 언어철학 개념을 상당히 서사에 알기 쉽게 녹아낸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결말에서는 서두에서 제시된 문제의식에 명쾌한 답을 내놓으며, 이를 사일런스의 성장과 연관지은 지점이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제목 <울프스텅>의 의미 또한 '말'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작품에 전반적으로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처음과 끝을 상당히 흥미롭게 구성한 것에 비해 정작 사일런스가 떠나는 모험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진부했습니다. 주요 인물에 해당하는 사일런스, 아이센그림, 레이너드를 제외하면 나머지 인물과 동물들은 서사에서 다른 개체로 대체되더라도 무방한 수준입니다. 유일하게 재미있다고 느낀 부분은 153면에서 토드가 말을 통해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 정도였고, 그 장면을 제외하면 사일런스가 여우들의 터전으로 가는 모험은 패거리 없이 단독으로 가는 것이 오히려 괜찮았을 것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이 작품의 매력은 늑대와 여우, 그리고 인간이 서로 다른 측면에서 '말'에 대해 이야기하고 갈등하는 장면이기에, 밋밋한 등장인물들을 빼고 이들 위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면 결말에서의 반전과 이를 통해 전달되는 주제 의식이 좀 더 명확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언어, 즉 말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의 것만이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오늘 이후로 말은 바로 우리의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 여우들이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할 겁니다. 나는 이렇게 선포하고자 합니다. 독재자들에게 죽음을!” (p.223-224)
상술했듯 이 책은 결말이 상당히 괜찮습니다. 레이너드의 연설은 가히 이 작품의 고점이라고 말할 수 있었고, 말의 중요성의 한편으로 '침묵'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작품 내 반전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한 갑작스러운 성장 없이, 단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사일런스의 현실적인 발전 역시 이 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중반부의 지루한 모험이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 중 하나는 여러 인물, 동물을 등장시키는 일입니다만, 이 책의 경우는 그것을 배제하고 주인공들로만 서사를 구성하여 주제의식을 좀 더 어필했다면 좀 더 인상적인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