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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Nov 02. 2021

<죽이고 싶은 아이>, 이꽃님

푸른여우의 냠냠서재 / 진실보다 그저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한 우리 이야기

   Fact is simple.


   열일곱 살인 지주연은 둘도 없는 친구 박서은을 벽돌로 가격해 죽였다는 의혹을 받고 재판을 기다립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성공만을 바라보는 변호사, 딸의 인생보다 자기 인생을 더 중요시하는 아버지 등 추잡스러운 어른들은 비열한 면모를 보여주고, 자극적인 기사를 연일 내보내는 언론은 주연이를 완전히 살인자로 몰아갑니다. 그녀의 입에서는 "제가 죽였어요"가 아닌 "제가 죽였대요"라는 말이 고장 난 테이프처럼 반복됩니다. 조사 과정에서 드러나는 여러 목격담과 추측들은 현실을 복잡하게 만드는 듯하지만, 사실 진실은 무척이나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 보다 생생한 아이들로 만들어내는 소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쓰신 이꽃님 작가님의 신작입니다. 사실상 그 책이 워낙 좋았다 보니, 작가님께서 내시는 다음 작품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조금 앞섰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실상, 워낙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이꽃님 작가님이기 때문에 주연이를 범죄자로 설정하지는 않으셨겠지, 했지만 세상에, 결말은 항상 상상을 뛰어넘는 법입니다. 물론 마지막 반전을 일으키는 데에 있어서 소설의 완결을 위한 편의주의적인 인물이 갑작스럽게 등장한다는 면에서 작가님의 기존 소설보다 정교함은 다소 떨어진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간 이꽃님 작가님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생생한 캐릭터성'이 이전보다 더욱 돋보이고 있습니다. 착하게, 또 착하게 살라고 강요받았던 동화책 속 어린이들은 이제는 영악하게 어른들을 궁지로 몰아넣기도 하며, 관계에 익숙하지 않아 친해지고 싶은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누구 하나 이해가 가지 않는 아이들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이들 사이의 오해가 안타깝고, 동시에 그런 아이들을 멋대로 살인자로 몰아가며 정의로운 척하는 어른들이 증오스러워집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독고솜에게 반하면>과 마찬가지로 청소년 캐릭터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진실'을 원하는 척 하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

   무엇보다도 독자들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며 자연스레 주인공인 주연이가 살인범인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기존의 작품들이 그래 왔듯 주인공을 범인으로 설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독자들은 주연이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지니고 작품을 읽게 됩니다. 그러나 주변인들의 진술과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와중에 '정말로 이 아이가 죽인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니게 되며, 독자들은 어떤 것이 진실일지보다는 아이가 처벌을 받기를 바라는 작중 네티즌들의 모습과도 닮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읽게 되었을 때, 제목의 '죽이고 싶은'의 주체가 누구였는지를 깨닫고 섬뜩함을 느끼게 됩니다.


   결말은 작가님의 아이들에 대한 애정 덕분인지 다소 따뜻합니다. 용서받지 못할 인물은 있지만 아이들의 모든 진실을 이해한 독자들은 함부로 등장인물들을 미워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의 미래도 제시되지 않기 때문에 주인공들이 행복하게 인생을 이어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살아가는, 주연이와 서은이를 닮은 아이들의 삶을, 독자인 우리가 따뜻하게 품어주고 싶어 집니다. 의심과 오해로 가득 찬 것이 우리입니다만, 어린이들을 똑같이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것도 또한 우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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