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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Nov 11. 2021

<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푸른여우의 냠냠서재 / 불안한 사람들, 불안한 이야기

"나 위험인물 아니에요." 상처받은 은행 강도가 말했다. (p.403)


프레드릭 배크만의 책 중에서 저는 <베어타운>을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지방 도시와 스포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타운 내에서 벌어지는 아찔한 집단주의에 대해서 논하던 그 책에 빠져 하루 만에 두꺼운 페이지를 다 읽어버린 기억이 있습니다. 유머와 냉소를 동시에 잃지 않는 문체가 상당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이번에 나온 <불안한 사람들> 또한 기대가 많았습니다.



웬만한 작품이 아닌 이상 은행강도가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언제나 은행강도는 아주 잔인하게 사람들을 다룹니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은행강도는 원래 그럴 목적이 없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도망친 모델하우스에서 자신이 붙잡은 인질들에게 상당히 쩔쩔맵니다. 심지어 인질들은 말조차도 듣지 않습니다. '그거 진짜 총 아니죠?', '무슨 강도가 그래요?'라고 놀림을 받는 한편 '당신도 강도잖아요! 걱정 말고 좀 더 제대로 해봐요!'라고 아예 강도를 응원하기까지 합니다.



사실상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불안'이라는 키워드를 껴안고 살고 있습니다. 물론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불안은 제각기 다릅니다. 강도를 붙잡고자 하는 경찰은 또다시 인명 피해가 나는 것을 불안해하고, 은행 강도는 자신의 자식들을 되찾지 못할 것을 불안해하고, 인질들도 제각기 인정받지 못하는 불안, 자신의 정체를 들킬 것에 대한 불안 등 다양한 불안을 껴안고 살고 있습니다. 탁월하게 캐릭터를 펼쳐나가는 작가답게 캐릭터 설정 자체도 아주 꼼꼼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캐릭터가 지닌 불안만큼이나 소설의 구조는 다소 불안합니다. 일관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교차로 구성되어 있는 복잡한 소설의 구조는 몇 번이고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내용을 확인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다소 불편합니다. 물론 작품의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와 주제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러한 구성을 선택하는 게 맞겠습니다만, 모든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해당 소설의 구조는 복잡할 따름입니다.



작품의 중반부에서 레나르트의 입을 통해서 본 작품의 진짜 주제인 '사랑'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다양한 문제들을 사랑의 힘으로 결론짓고자 했던 다른 작품들이 많은 탓인지는 몰라도, 복잡한 이야기의 끝자락에서 "그럼 당신은 뭘 믿는데요?"라는 사라의 질문에 대해 레나르트가 "사랑요.(p.341)"라고 답하는 모습을 확인한 순간 우리는 생각보다 감동보다는 의아한 감정을 먼저 느끼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베어타운>에서 작가의 냉철한 관찰이 주제를 확실하게 이끌어준 것과는 달리 <불안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소 불안합니다.



물론 <불안한 사람들>의 가장 큰 장점은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인질극 도중임에도 불구하고 피자를 시켜먹고, 그 와중에 자기가 먹고 싶은 피자를 얘기하며 티격태격하는 인질들의 모습, 당신들은 정말 최악의 인질들이에요, 한탄하는 은행 강도의 모습, 취조실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얼빠진 이야기를 하는 인질들. <불안한 사람들>은 다소 불안한 이야기더라도, 프레드릭 배크만 특유의 유머가 가장 잘 살아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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