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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Dec 19. 2021

<스노볼 2>, 박소영

푸른여우의 냠냠서재 / 탁월한 상상력, 부담스러워진 초여름

추천 지수는 : ★★★ (6/10점)

(* 이 서평은 창비Y클럽 서평단 활동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본능에 악의는 없다. 다만, 악의 없는 본능은 때때로 다른 존재를 위협한다. (p.27)


* “난 너희가 미운 게 아니란다. 내게는 이 세상의 평화와 균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을 뿐이야.” (p.128)


* “쉽지 않은 장면을 보게 될 거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 (p.323)


  고해리 프로젝트가 스노볼 사람들에게 공개된 후, 전초밤 일행들은 스노볼 속에 거주하면서 새로운 드라마 <나, 너, 우리>의 액터로 활동합니다. 여전히 사이가 안 좋은 배새린으로부터 불행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은 초밤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끼기도 하는데요. 어느 날 디렉터 차향은 초밤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필름에 찍혀 있었다는 소식을 몰래 전하게 됩니다.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으려는 사람이 누구일지 찾아나가던 초밤은 스노볼의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되고, 두려움을 무릅쓴 채 거울 엘리베이터로 뛰어들어갑니다.


  '냄비 속에 든 빔프로젝터'만큼 더욱 폭발하는 상상력

   스노볼이라는 세계관의 비밀을 밝히는 이번 권에서는 작가님의 매력적인 상상력이 더욱 빛을 발합니다. 액터가 의무를 위반할 때마다 재난 온도계가 상승하고, 재난 온도계가 100도가 넘으면 재난 추첨을 진행한다는 초반 설정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물론 새로운 인물들과 새로운 장소는 작품의 세계관과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 있어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중후반부에 초밤이 2권의 주 무대인 지하 발전소로 뛰어들어가면서는 앞의 어색함을 잊어버릴 정도로 파격적인 설정들이 줄을 잇습니다. 냄비 속에 빔프로젝터를 담아 숨겨 오는 장면을 비롯해 소재를 엮어나가는 흐름도 굉장히 매력적이고, 때문에 흡입력 있게 책을 읽어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매력적인 소재, 그러나 신파적이고 제멋대로인

  2권에 이르면서 이야기의 규모는 다소 커졌습니다. 전작이 전초밤이라는 주인공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였다면, 이번작에서는 '스노볼'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숨겨진 비밀을 들춰내는 이야기에 해당합니다. 때문에 다양한 인물과 소재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고, 전초밤은 서술자로서 거대한 세계관을 독자에게 전달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초밤의 입으로 전달되는 <스노볼 2>의 플롯은 정돈된 느낌보다는 난폭하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사용되는 소재는 매력적이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인물들은 마치 게임의 NPC처럼 같은 모습만을 반복적으로 보여줍니다. 게다가 <스노볼 2>는 거대한 세계관에 맞서서 등장인물들이 과다해진 탓인지 각자의 인상이 굉장히 옅어졌습니다.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도 무언가를 보여줄 것처럼 행동하지만, 단순한 조력자였거나, 혹은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건지 잘 알 수 없는 악당으로, 그 악당마저 누군가가 쏜 권총으로 작품에서 난폭하게 퇴장당합니다. 유일하게 인상에 남는 인물은 자신을 키워준 부모로부터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는 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초반에 초밤의 정곡을 찌르는 '배새린' 뿐입니다. 문제는 캐릭터들의 인상이 옅어지면서 이들이 전개해나가는 이야기가 더욱 신파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아홉 번의 살인을 저지른 인물,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권총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러한 지나친 설정은, 역설적이게도 인물들의 인상을 더욱 옅게 만듭니다. 더군다나 평면적인 등장인물들은 쿠퍼 라팔리가 죽었을 때 전초밤의 태도처럼 기계적으로 울고 웃습니다. 마치 진짜 지시를 받은 배우처럼 '이때 슬퍼해야지', '이때 기뻐해야지'라고 정해놓은 것만 같은 내면묘사가 이어집니다. 대사는 장르문학의 성격을 반영하여 멋들어졌으나 어딘지 텅 비어 있습니다. 전작에 이어서 답습되는 이러한 특성들은 스노볼 세계관을 통틀어 가장 매력적이어야 할 지하 발전소의 비밀을 신파의 재료로 희생시켜버립니다. 자신의 누명을 벗으려고 직접 발전소에 뛰어든 초밤은 그곳 중앙에 '시체 태우는 우물'에 들어가 쌓여 있는 뼛가루를 헤집기까지 합니다. 발전소에 있는 어린아이는 눈앞에서 몇 백 명이 죽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 왔기까지 합니다. 여기서 벌어지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주조연이었던 인물이 자신을 희생하고 무고한 엑스트라들이 죽어나가지만, 얕은 인물들과 겉멋만 가득한 대사들이 이야기를 작중에서 최면을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다소 우습고 부담스럽게 만듭니다. 특히 발전소의 어린아이이자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하늘'이는 이러한 단점의 집합체로, 작가가 자신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어린아이를 비극에 빠뜨린 후 만능 캐릭터로 만들어버린 탓에, 마치 세뇌된 캐릭터 같은 인상을 줘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작중 악역이 저지른 악행은 물론 처벌받아야 마땅한 거대한 일입니다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메시지 전달을 위해 여러 인물들을 소설 속 장치처럼 활용하는 일은 그 인물에 현실 속 사람들을 대입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그다지 긍정적으로 수용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술술 읽히는 반전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요?

  사실 소재만 놓고 보면 이 작품은 오랫동안 명작으로 남을 수 있는 요소들을 많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스노볼의 비밀을 처음 접한 독자들은 전초밤이 그 비밀을 저지하는 행위가 과연 옳은 일일까를 고민할 수 있게 됩니다. 비밀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서 스노볼의 전력 공급이 중단되는 경우를 생각하며 전초밤이 받게 될 비난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상상해보게 됩니다. 이러한 중의적인 요소가 책을 읽을 영어덜트들에게 이야깃거리를 많이 제공한다는 점에서 멋진 영상화가 기대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반전과 흡입력 있는 문장, 매력적인 소재와 반대로 앞서 이야기한 신파적이고 부담스러운 전개와 더불어 작중에서는 선악에 대한 묘사가 다소 편파적입니다. 주인공 전초밤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으며, 사형수를 마지막에 조준 사격하는 바이애슬론 경기에 열광하면서 사형수를 이용한 발전소의 비밀에 대해서는 개인의 판단으로 인권주의적으로만 파헤치려고 합니다. 이 세계관에서 악당은 죽어야 마땅한 것이고, 여론과 등장인물은 작가의 입맛에 맞게만 움직입니다. 또한 1권이 '복제 인간'이라는 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잘 끌고 가면서 자잘한 주제들을 같이 살렸던 것과 달리 2권은 제시하고자 하는 주제가 '환경'인 것처럼 보이다가 불쑥 '미디어'가 튀어나오는 식으로 상당히 번잡합니다. 재밌는 스토리는 마지막까지 독자들을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만, 어디로 이끌어가는지도 방향성을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스토리는 돔 천장에서 바닥으로 휠체어를 타고 내려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스노볼 2>에서 새롭게 제시된 설정과 소재들은, 냄비에 들어 있는 빔프로젝터처럼 참신하고 새로운 것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만약 청소년과 성인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영어덜트 성장 소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좀 더 등장인물들에게 깊이를 부여하면서 작가의 매력적인 상상력이 훼손되지 않는 플롯과 대사를 다시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영상화가 진행된다면 이러한 설정과 세계관을 충분히 살린 매력적인 영상이 나온다면 좋겠습니다. 초여름 밤의 공기처럼 부담스럽지 않고 선선한 작품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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