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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Dec 19. 2021

<스노볼 1>, 박소영

푸른여우의 냠냠서재 / 금세 녹을지라도, 장렬하게 휘몰아치는

추천 지수는 : ★★★☆ (7/10점)

(* 이 서평은 소설Y클럽 서평단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내가 힘든 건 나 때문이다. 나는 이 일의 밝은 면만 보고 싶어 한다. (p.160)


  영하 40도 이하가 일상인 어느 미래, 초밤의 할머니는 오늘도 고해리 전용 채널을 보고 있습니다. 따뜻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스노볼 속에는 허락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고, 스노볼의 최연소 기상 캐스터 고해리는 신기하게도 주인공인 전초밤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고해리를 비롯해 스노볼에 사는 사람들은 액터로서 삶을 연기하며, 디렉터는 액터의 삶을 리얼리티 드라마로 편집하여 방영합니다. 디렉터로 스노볼에 들어가기를 꿈꾸며 오늘도 발전소 쳇바퀴를 굴리는 초밤은 스노볼에서 살인을 저지른 전 액터 조미류와 스쳐 지나가고, 덩달아 고해리의 디렉터인 차설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듣게 되는데...


  독특한 상상력이 눈보라처럼 휘몰아치는 전개

  재난 상황을 배경으로 한 박소영 작가의 <스노볼 1>입니다. 영어덜트 소설 대상 수상작으로 청소년과 어른 모두를 대상으로 한 이번 작품은 특히나 작가님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에피소드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재난 상황에서 스노볼이라는 유토피아적인 공간이 존재하고, 거기서 사는 액터들은 자신의 삶을 가감 없이 리얼리티 드라마로 바깥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트루먼쇼>의 설정을 적절하게 비틀면서도 식상하지 않게, 나아가 독특한 상상력으로 흡입력 있는 전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중후반부에서 밝혀지는 ‘고해리 프로젝트’의 진실도 정말 뜬금없을 수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분위기와 전체적인 흐름이 무리 없이 소재와 결합하고 있어 마지막까지 작품을 즐기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매력적인 스토리와 그렇지 못한 1인칭 시점의 플롯

  그러나 스토리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제시하는 방식은 다소 매력적이지 못하다고 느낀 것이, 대표적으로 대사, 비유, 그리고 깊이가 다소 부족한 인물들의 내면 묘사에 있었습니다. 우선 이 작품은 전초밤의 시점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전초밤의 개인적인 심리는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처음에 차설을 따라 차에 탑승하고 나서 자신이 TV에서 잘 보던 쿠퍼 라팔리가 차설에 의해 상공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게 됩니다. 이에 전초밤은 잠시 동안 슬퍼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스노볼의 풍경을 보고 곧바로 기뻐합니다. 또 갑작스럽게 죄책감을 느끼는가 하면, 변화할 자신의 삶에 대해서 설렘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러한 급격한 감정 변화는 마치 연기자가 '이 단락에서 기뻐해', '이 단락에서는 슬퍼해'라고 지시를 받고 행동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럽습니다. 나아가 장르문학의 성격을 잇고 있는 대사, 마취제와 진통제로 지나치게 자의적인 비유들이 상술한 매력적인 상상력을 반감시킵니다. 또한 초반부터 설정을 급하게 전달하려다 보니 자아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평범한 전초밤이 무엇이든 알고 있는 듯한 만능 캐릭터로 갑작스럽게 격상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스노볼에 대한 설정을 1인칭의 시점에서 서술하고, '배웠던 지식이 이런 곳에서 쓰이다니'라고 이야기하는 식입니다.


   인상적인 결말까지 힘껏 독자들을 이끌어주는

   하지만 초반의 단점을 딛고 이 작품은 고해리 프로젝트라는 하나의 큰 사건을 중심으로 소재들을 짜임새 있게 결합시켜 인상적인 결말에 도달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독자들을 결말로 이끄는 과정 또한 지루할 틈 없이 끊임없는 반전들과 흡입력 있는 문장들이 이끌어주고 있습니다. 절정에서 결말에 해당하는 마지막 방송 씬에서는 자의적인 비유나 지나친 신파조의 말투도 확 줄어들어 문장을 읽어 내려가며 마치 드라마를 보듯 감정의 변화를 느끼는 일도 가능했습니다.


   극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액터와 디렉터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축인 탓에 '스노볼'이라는 세계 자체가 다소 주변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스노볼 1>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금세 녹아버리는 눈더미처럼 전달하고자 하는 '나'에 대한 메시지는 잘 남지 않는다는 인상을 개인적으로 받았습니다만, 그럼에도 이 소설은 눈보라처럼 장렬하게 휘몰아치는 맛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매력적인 상상력, 매력적인 스토리만큼이나 더욱 정돈된 문장으로 쓰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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