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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Nov 08. 2022

파괴되는 야생 속에서
함께 울부짖는

푸른여우의 냠냠서재 / 델리아 오언스&마크 오언스, <칼라하리의 절규>

추천 지수는 ★★★★☆ (9/10점 : 연구원이 글도 이렇게 잘 쓰시면 반칙 아닌가)


   ★ 하지만 하이에나의 사회생활을 연구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p.119)


   ★ 때 묻지 않은 원시의 아프리카가 우리를 다시 품 안에 보듬어주었다. (p.262)


   ★ 포식자의 놀이는 단순히 재미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새끼들의 놀이에는 사냥에 필요한 동작이 다 들어가 있다. (p.352)


   대학에서 만난 델리아와 마크는 수업에서 사라져 가는 야생을 접한 것을 계기로 아프리카로 떠납니다. '늦기 전에 살아 있는 야생을'(p.19) 보고 싶어 마련한 자금과 식량은 열악한 사막 환경에서 다 떨어져 가고, 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그들은 칼라하리의 동물들을 관찰하며 연구를 진행합니다. 예기치 못한 질병, 사나운 동물들에 의해 때로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하는 그들은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은 동물들의 세계를 발견해나가는데요. 그런 한편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파괴되는 칼라하리의 모습에 함께 절규하기도 합니다.


   조용하게, 극적으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작가로 잘 알려진 델리아 오언스와 남편이자 같은 동물 연구자인 마크 오언스가 공동 집필한 논픽션, <칼라하리의 절규>입니다. 원문은 1984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서는 2008년에 <야생 속으로>라는 제목으로 한번 출간된 바 있습니다. 이번에 살림출판사에서 원문에 충실한 번역으로 출간 예정 중에 있는데, 주제 의식을 잘 함축하고 있는 원문의 제목(Cry of the Kalahari)을 가져왔기에 번역의 충실도와 관련하여 기대가 되었습니다.

   두 주인공은 사라져 가는 야생에 대한 애정으로 약 7년 간 아프리카 사막에서 동물들의 생태를 관찰하였으며 그 과정을 본 책에 담아냈습니다. 인적이 하나 없는 사막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상당히 조용한 배경에서 이야기가 전개됨에도 불구하고, 감질맛 나는 문장 덕분인지 마치 잘 만들어진 소설을 읽는 듯하여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잠에서 깨니 텐트 앞에서 사자가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를 피하는 장면이나, 들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트럭으로 불길을 정면돌파하는 장면 등 독자에게 짜릿한 맛을 선사해주는 극적인 장면들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동물 연구를 통해 사람을 이해하게 해주는

   우리가 쉽게 접하기 힘든 아프리카 동물들의 세계, 예시로 블루 프라이드 사자들과 이마에 별 모양이 있는 하이에나의 이야기 등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충분한 지식을 갖춘 저자가 칼라하리라는 공간과 그 공간의 구성원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또 애정을 갖고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독자 또한 책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칼라하리에 자연스럽게 애정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책은 칼라하리 동물들의 삶이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먹이를 먹는 데에 있어서 아들 자칼을 공격하는 아버지 자칼의 모습은, 독립할 능력을 기르기 위해 자녀를 엄하게 대하는 부모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며, 자신이 물어온 먹이를 새끼들에게만 먹이는 동물들의 모습은 부모의 희생을 떠올리게 하여 짠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요컨대 두 저자는 동물을 연구하는 일이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p.119)는 일과 연결되어 있음을 탄탄한 문장을 기반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지극히 인간적인 시선으로

   연구 대상으로서 자연을 바라보는 한편, 애정하는 대상으로서도 자연을 바라보고 싶은 두 주인공의 시선은 상당히 인간적입니다. 이것이 이 책의 매력으로, 자신들이 애정을 가지던 동물이 다른 동물에 의해 살해당할 위기에 놓여 있을 때 그것을 구해야 할지, 아니면 인간이 자연의 섭리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준수할지 갈등하는 부분 등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독자들은 해당 동물들에 자연스럽게 애정을 가진 상황이기 때문에 마치 자신이 서술자가 된 것처럼 함께 갈등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저자들은 울타리나 광산 개발 등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칼라하리의 동물들이 목숨을 잃는 부분에서는 확실하게 분노를 표현합니다. 건기가 지속됨으로써 생명을 잃는 이들의 절규, 다른 동물에게 살해당하면서 내뱉는 절규, 연구가 순조롭지 않아 두 연구자가 내뱉는 절규 등 칼라하리에서 울려 퍼지는 다양한 절규 중에서도 독자들은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죽어가는 칼라하리의 절규에 더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이로써 독자들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간들의 행각에 같이 분노하게 되고, 원문 출간 당시에는 이러한 분노가 실제로 환경 보전을 위한 노력으로 이어진 사례들도 많았다고 하니 본 책이 지닌 가치는 분명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 “알겠지만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거든. 누군가는 칼라하리를 지켜야 하오.” (p.63) 


   이 책을 읽다 보면 기억에 남는 부분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아무도 없는 사막으로 향하는 두 연구자의 열정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들은 자금 마련을 위해 채석장에서 일하기도 하며, 현장에서는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지원금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면서도 야생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꺼뜨리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자연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연구를 진행한 결과 이 책은 1984년 출간 당시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저자의 노력에 의해 많은 야생동물을 죽이고 있던 칼라하리의 울타리가 철거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자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생태계 파괴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대두되고 있는 현재입니다만, 어쩌면 칼라하리를 포함한 전체 생태계를 보전하는 힘은 바로 그러한 애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출간 후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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